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1일 충북 한화큐셀 진천공장을 방문해 생산라인을 시찰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이날 "한화큐셀을 업어드리고 싶다"고 칭찬했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문재인 대통령이 업어주겠다고 했던 기업이 미국으로 업혀갔다.

국내 대표적인 태양광 업체 한화큐셀코리아는 내년까지 미국 조지아주에 미국에서 가장 큰 태양광모듈 공장을 짓기로 최근 계약을 마쳤다. 2016년과 작년 미국 태양광모듈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한 한화큐셀에게 미국은 최대 고객이다. 최대 고객을 좇아 공장 짓는 게 무슨 대수냐 할 수 있지만, 그간 한화큐셀의 대미 수출 기지는 대한민국의 충북 진천 공장이었다. 김승연 한화 회장은 “애초 공장 후보지를 제조원가가 낮은 말레이시아에서 진천으로 변경한 건 국내 고용 증대와 태양광 산업 육성이라는 사명감 때문”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올 들어 미국이 수입 태양광 제품에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관세를 부과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첫해 30%를 시작으로 4년간 지속될 관세를 사명감만으로 버틸 재간이 없었다. 한화큐셀은 미국 공장이 “장차 개척할 미국과 중남미 시장 대비용”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실은 관세를 물지 않아도 되는 미국 내 생산을 택한 셈이란 점 역시 부인하지 않는다.

지난 2월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대기업 방문지로 진천 공장을 찾아 “업어주고 싶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한화큐셀은 정부의 근로시간 단축 정책에 맞춰 3조3교대 주 56시간이던 공장 근무제를 4조3교대 42시간으로 바꾸고 모자란 인력 500명을 신규 채용했다. 이 과정에서 1,500명 기존 직원들은 근무시간을 따라 줄어드는 임금을 감수하기로 했다. 대신 회사는 직원들의 임금을 90%까지는 보전해 주기로 약속했다. 문 대통령은 당시 “우리 일자리 정책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를 보여줬다. 특히 국내에서 세계적 기업을 발전시킨 데 존경과 감사 인사를 드리고 싶다”며 극찬했다. 하지만 모국의 대통령이 업어주려 했던 기업은 그렇게 미국이 힘으로 업어가고 말았다. 덩달아 국내에 생길 수 있었던 새 공장의 500여 일자리도 미국 조지아주가 챙겨 갔다.

한화큐셀만이 아니다. 유정용 강관을 주로 수출하는 중견 철강업체 넥스틸은 한국 생산라인 일부를 미국 휴스턴으로 이전하며 200여명을 현지에서 고용했다. 미국의 철강 관세 압박 때문이다. 세아제강은 이미 2016년 미국 현지에 공장을 인수했고 휴스틸도 장차 미국 내 생산시설을 구축할 방침이라고 한다.

역시 세이프가드 관세를 맞은 세탁기 업체들도 미국에서 공장을 돌리고 있다. 삼성전자는 올 1월부터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세탁기를 생산 중이다. LG전자는 하반기 가동을 목표로 테네시주에 가전공장을 건설하고 있다. 요즘처럼 미국과 중국이 서로 관세 장벽을 높이며 으르렁댄다면 불똥은 두 나라 밖으로도 튈 수 있다. 앞으로 미국뿐 아니라 중국으로 업혀갈 기업도 늘어날 지 모를 일이다.

조만간 북한 시장이 열릴 거란 기대감이 적지 않다. 많은 기업들이 번호표나 받아 놓은 듯 신시장이 열리길 기다리는 눈치다. 하지만 한화큐셀 등의 사례는 만만치 않은 현실을 일깨운다. 북한 시장이 매력적이라면 미국, 중국 정부가 가만히 놔둘 리 만무하다. 이미 중국과의 사드 갈등, 트럼프의 아메리카 퍼스트 선언 등을 보며 겪었듯 그들에겐 휘두를 무기가 무궁무진하다. ‘우린 한 핏줄이니까’ 하며 기다리다간 안방에 차려진 밥상도 고스란히 뺏길 수 있다.

경제단체 고위 인사에게 최근 사석에서 대북사업 전망을 물은 적이 있다. 그는 “북한 시장이 열리더라도 한동안은 북한 정권이 개발 과정을 관장하게 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업 분배 과정에 최소한 ‘정치적인 고려’라도 있어야 그나마 우리 기업들이 챙길 몫이 있을 거란 의미에서다.

의지만으론 이미 자리잡은 국내 일자리도 지키지 못하는 세상에 살고 있다. 북한처럼 백지 상태의 시장에선 누가 붓을 움켜쥐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 있다. 우리 정부와 기업들이 그만한 계산과 대비를 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김용식 산업부 차장 jawohl@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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