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헉슬리는 우생학 신봉자에서 배척론자로 선회한 대표적 과학자였다.

우생학의 뿌리는 무척 깊다. 플라톤은 ‘국가’(BC 374년)에서 “가장 훌륭한 남자는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해야 하며,(···) 고칠 수 없는 정신병에 걸린 자와 천성적으로 부패한 자는 죽여야 한다”고 썼다.

근대 우생학은 19세기 영국의 인류ㆍ통계학자 프랜시스 골턴(Francis Galtonㆍ1822~1911)을 거치며 부활했다. 그는 다윈의 진화론과 통계학에 근거해 인간 개선을 위한 우생학의 명분과 방법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우생학은 나치 홀로코스트 이전까지, 유럽과 미국 등에서 과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특별한 견제나 도전을 받지 않고 성장했다. 노예제도와 인종 갈등, 빈부 차에 따른 사회적 비용 등이 우생학에 대한 의심을 가로막은 배경이 됐다.

줄리안 헉슬리(Julian Huxleyㆍ1887.6.22~ 1975.2.14)는 영국 왕립유전학회 회장을 지내고 기사 작위를 받은 저명한 생물학자다. 그는 다윈 진화론의 맹렬한 옹호자였고, 유네스코(유엔과학문화기구) 창설을 주도해 초대 회장을 맡은 박애주의자였다. 할아버지가 ‘불가지론(agnosticism)’이란 말을 처음 쓴 생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이고, 아버지는 작가 레너드 헉슬리이다. ‘멋진 신세계’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가 그의 동생이고, 노벨상을 탄 생물학자 앤드루 헉슬리는 그의 이복 동생이다.

줄리안 헉슬리도 사회적으로 저급한 계층은 유전적으로 열등한 존재라며 도태를 옹호했다. 그는 “농작물과 가축을 기르면서 생식질(germ-plasm)을 관리하는 것은 지혜로서 모두가 긍정하면서, 왜 그 개념을 인간 사회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나”라는 요지의 글을 썼다.

하지만 유전자 못지않게 사회적 환경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입증되면서 그는 달라졌다. 섭취하는 음식의 질과 양, 보건과 휴식, 교육의 질과 기회 등 개체와 인종의 사회적 우열을 평가하는 데 감안해야 할 요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걸 인정한 거였다. 1933년 집권한 나치의 ‘강제불임법’ 등을 지켜보면서 그는 인종(race)이란 표현 대신 ‘민족그룹(ethnic group)’이란 말로 바꿔 쓰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유네스코 의장이 된 뒤 ‘인종 문제’를 두고 그는 몽골리안, 니그로, 코카시안의 세 인종은 있지만, “가톨릭 프로테스탄트 무슬림 유대인은 인종이 아니다”라고도 했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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