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접했던 모든 문화예술 중 가장 끔찍한 것이 있다. 지구상의 소설 중 가장 문제작을 꼽으라면 무조건 수위에 드는 작품이다. 출판되는 나라마다 금서의 경계를 넘나들기에 그 나라 문화 개방성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기도 한다. D.A.F 사드의 ‘소돔 120일’이다.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지만 실제 본문을 끝까지 읽은 사람은 찾아보기 힘든 책, 누구나 언급은 하고 있지만 실제로 읽으면 그 언급을 피해버리고야 마는 책이다. 심지어 233년 전인 1785년 작품이다.

한마디로 인류 욕망의 선구적 작품이다. ‘소돔 120일’에는 지금도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변태적인 욕망이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다. 그의 이름은, 몰이해라는 비판이 있지만, 훗날 가학성을 의미하는 사디즘(Sadism)으로 명명된다. 시대를 앞서간 ‘변태’로 기억되고 있지만 이 시대에 읽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아마 인간 존엄이 완벽히 소멸된 아노미가 오지 않는 한 ‘소돔 120일’이 한 문장이라도 실현되는 시대는 앞으로도 오지 않을 것이다.

대학생 때 이 책을 처음 만났다. 텍스트만으로도 가슴이 불쾌하게 뛰었고, 한동안 기분이 이상했다. 이 활자에 빠져들자 내가 살고 있는 세상과 현실이 전부 역겨워졌다. 그것은 터무니 없는 욕망에 대한 욕지기이자 거부반응이었다. 이 책에선 성적인 장면이 넉넉히 천 번쯤 나오지만, 보통 사람이 생각하는 성애 장면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보통의 성관계를 의도적으로 무시한다. 대신 주인공들은 상상하기 힘든 것에서 극도의 성적 흥분을 느낀다. 사회 지도층이자 극악무도한 네 명의 탕아들은 각자 딸과 부인과 어머니를 살해하거나 강간했으며, 서로의 딸을 교환해서 결혼했다. 이들은 사람들을 외딴 성에 감금하고 120일간 각종 방법으로 성적 욕망을 채우고, 결국 고문해서 대부분을 죽인다. 콧물, 귀지, 고름, 방귀 등은 전부 더할 나위 없는 성적인 대상물이고, 대소변은 거의 핵심이며, 마지막에는 신체 고문과 음독, 절단, 시체 모독이 주가 된다. 각종 유희를 즐기던 주인공 넷이 마지막으로 사람들을 학살하자 내게서 무엇인가 빠져나간 기분이 들었다.

여기서 사드가 인류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이 책은 이러한 성적 욕망을 체계화해서 적나라하게 기술한 인류의 거의 첫 책이기 때문이다. 일단 우리에게 잔상으로 남는 것은 울렁거리는 동요다. 기본적으로 소수의 욕망을 위해 모든 것이 희생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인권의 측면에서 접근하면 당연히 이 책은 거의 최악의 시선을 보여준다. 주인공은 비단 여성을 넘어 남녀노소와 불구, 장애인, 임산부, 시체까지도 능욕한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인간의 상태는 전부 들끓는 욕망의 대상이 된다. 남성은 성기 크기로 분류되고, 여성은 성처녀 아니면 창녀로 이분된다. 힘이 약한 존재라면 무조건 짓밟히며, 순결을 잃어버린 여성은 입에 담을 수도 없는 불결한 것이다.

이 인권적 접근이 어불성설임에도 지적하는 이유는, 이 금지된 원초적 욕망의 시초는 지극히 일변도로 남성의 시선을 띄고 있다는 점이다. 이 책에서 여성은 욕망을 가진 존재가 아니라 거의 무생물 정도로 취급된다. 이토록 금기를 처음으로 깨는 최초의 욕망은 결국은 남성의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자기보다 약한 것이라면 모두 짓밟고 쟁취하고 범하고 싶은 욕망. 인간의 존엄을 더 많이 범하고 살육하는 욕망. 나는 남성임에도 이 욕망들이 두렵다. 작중 주인공은 희생자를 모아놓고 이렇게 선언한다. “우리의 욕망이 당신들의 유일한 법이 되어야 한다.” 내 욕망으로 남의 욕망마저 지배하는 시선은 태초부터 남성의 전유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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