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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권위의 탄생과 소멸

입력
2018.06.17 10:40
수정
2018.06.17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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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운영원리의 핵심은 권위(authority)의 위임과 위임된 권위의 행사에 대한 평가이다. 주권자로서 국민은 정당에 대한 지지와 선거에서 투표권의 행사를 통해 공동체의 가치를 결정하는 권한을 대리인으로서 정치인에게 위임한다. 정치인으로서 대통령과 국회의원에게는 그렇게 위임받은 권한으로서 행정권과 입법권이 부여된다. 위임된 범위 내의 권한 행사가 언제나 같은 수준의 존중과 실효성을 갖는 것은 아니다. 권한을 행사하는 주체와 권한 행사의 방식에 적정한 권위가 부여되지 않으면 그 권한의 행사는 사회적으로 충분히 존중받기가 어렵다.

선거와 정치과정을 통해 위임의 절차를 거치는 다른 권력과는 달리 사법권은 민주주의 과정을 통한 권위의 위임 절차 없이 “사법권은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 속한다”라는 헌법상의 선언에 따라 곧바로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에게 부여된다. 법관은 재판권의 행사를 통해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과정의 결과를 번복할 수 있는 권한을 행사한다. 그러한 권한의 실효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권위의 원천은 민주주의를 포함한 정치과정이 가지고 있는 실패의 가능성에 대비한 헌법적 결단이다.

정기적인 선거와 상시적인 정치활동을 통해 권위의 원천을 계속 만들어가는 입법부, 행정부와는 달리 사법부는 자신의 권한행사의 권위를 신속하고 적정한 재판이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하게 다하는 것으로밖에는 유지할 수 없다. 다른 공무원들의 경우와는 달리 법관에게 특별히 더 엄격한 직업윤리가 요구되고, 당사자들과 동료 법관들 사이의 상시적인 평판 시스템을 통해 조직의 염결성(廉潔性)이 유지되도록 할 필요가 절실한 이유이다.

국민들이 분쟁의 최종 해결자로서 사법부에 대해 가지는 기대에 비하면 대한민국에서 법관으로 임용되는 과정은 그 기대에 부응할 만큼 충분히 엄격하거나 치밀하지 못한 면이 있었다. 과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시절에는 법관에게 기대되는 더 나은 덕성이나 현명함보다는 수험적으로 요구되는 평가에서 높은 성적을 획득하면 자연스럽게 판사로 임관이 되는 시스템이었다. 과거 공동체의 주된 가치배분 결정이 사법부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았고, 제한된 시간 내에 폭증하는 일반 민ㆍ형사 사건을 처리해야 하는 사법환경 속에서는 그와 같이 정량적인 평가기준에 따라 선발된 판사들이 사법관료주의 규칙을 따르면서 사법권을 행사하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또한 그와 같은 시스템을 효율적으로 유지하고 관리하기 위해서는 재판업무에 전념하는 법관들과는 별도로 사법행정을 담당하는 부서의 역할이 중요하기도 하였다. 특히 사법부에 전유하게 부여된 재판에 관한 권한에도 불구하고 법원의 예산과 조직에 관한 권한이 권력분립의 원리에 따라 다른 기관에 부여되어 있음으로 인해 사법부 구성원 중 누군가는 의회, 그리고 행정부와 긴밀하게 소통할 필요가 있기도 하였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다기해지고 구성원들의 정치적 선호가 매우 다양해진 지금의 대한민국에서는 사법부의 그와 같은 작동원리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게 되었다. 사법부에 부여된 권한으로서 재판권이 적정하게 행사되는데 꼭 필요한 권위의 많은 부분이 손상되었다. 대립당사자 중 어느 한쪽은 패소할 수밖에 없는 재판이라는 절차의 속성상 그러한 권위의 손상은 사회적으로도 큰 비용으로 다가오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기일수록 더욱 신경써야 하는 점은 정치권력 지형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사법부가 최종적인 법선언자로서 역할을 행사하도록 설계한 헌법정신이다. 혹여라도 정치 영역에서 이루어진 권력지형의 변화를 사법부에도 그대로 실현하려고 하거나, 사법부 내부에서 견해가 다른 법관들 사이에서의 권력다툼이 사법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사법부 권위의 치명적인 손상으로 이어지려 한다면 그것이야말로 헌법정신으로서 사법부 독립의 명운을 걸고 막아야 할 것이다.

허성욱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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