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아이돌 가수 전문 안무가 두부

춤 실력ㆍ연기력ㆍ어울리는 소품…
노래보단 가수 성향 먼저 알아야
어울리는 안무 만들 수 있어
농구 드리블ㆍ미술 작품ㆍ마술 등
다양한 동작서 춤 아이디어 얻어
“딴따라 옛말, 직업인으로 존중”
아이돌 가수 전문 안무가 두부는 “춤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도구”라며 표현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배우한 기자

지난해 11월 아이돌 그룹 비투비의 특별한 공연 영상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됐다. 비투비가 청각장애인 팬과 함께 수화를 곁들여 발라드곡 ‘그리워하다’를 부르는 모습이다. 영상이 공개된 후 “비투비의 공연을 보고 감명 받았다”며 수화 배우는 방법을 문의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쏟아졌다. ‘그리워하다’는 지난해 10월 발매 직후 여러 음원차트 1위를 기록했고, 한 달 내내 상위권 순위를 유지했다.

청각장애인과의 공연은 비투비가 ‘그리워하다’ 무대에서 수화 안무를 선보인 것을 계기로 성사됐다. 실제 무대 공연은 수화를 변형해 좀 더 세련된 형식으로 표현했다. 후렴구 ‘그리워하다’라는 가사는 손바닥을 사선으로 흔들며 뻗는 동작을 절도 있게 흔드는 것으로 바꿨다. 이렇게 만들어진 비투비의 수화 안무는 간결하면서도 메시지가 명확해 음악만큼 인기를 끌었다. ‘안무로도 노래하는 무대’를 만든 이는 아이돌 가수 전문 안무가 두부(본명 박동현·37)다.

“안무에 수화를 녹여보자는 아이디어는 비투비 친구들이 직접 제안했어요. 저도 기발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떻게 멋있어 보이게 할까’가 과제였죠. 수화를 그대로 활용하기보다 요즘 가요의 분위기에 맞게 변형해 더 예쁜 동작으로 표현하려고 했어요. 발표 직후에는 수화 안무라고 따로 밝히지 않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재미있어하더군요.”

아이돌 그룹 비투비의 ‘그리워하다’는 멤버들의 아이디어로 수화를 안무에 녹였다. 차분하면서도 우아하게 그리는 동작들이 눈에 띈다. 사진은 2018 서울가요대상에서 ‘그리워하다’ 무대를 선보이는 모습. KBS Joy 방송화면 캡처
가수 성향을 알아야 안무도 나와

두부는 1997년 원래 댄서로 데뷔했다. 가수 유승준 등 90년대 스타들의 백업 댄서를 거쳐 비투비의 ‘뛰뛰빵빵’과 ‘넌 감동이야’, ‘기도’ 등의 안무를 담당하는 등 아이돌 가수 전담 안무가로 성장했다. SBS ‘K팝스타’와 중국 후난TV ‘슈퍼보이’ 등 여러 오디션프로그램 무대도 연출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수석 댄스트레이너로 아이돌 그룹 트와이스, 갓세븐, 미쓰에이 등을 연습생 시절부터 가르친 ‘춤 선생’이기도 하다.

20년 넘게 직업인으로서 춤을 추고 춤을 만들어 왔으니 춤 동작이 뚝딱 쏟아질 것 같은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안무를 하기 위해선 노래보다 우선 가수를 알아야 한다. 아이돌 멤버 개개인의 춤 실력과 표정 연기 등을 파악하고, 나아가 “각자 어떤 제스처가 어울리는지, 독무와 군무 중 어떤 형식이 어울리는지” 등을 면밀히 연구한다.

“저에겐 이 작업이 가장 중요해요. 몇 차례 함께 한 친구들은 바로 안무를 구상하는 게 가능하지만 처음 맡게 된 친구들은 제가 일일이 사전조사를 하죠. 신인가수면 회사에 직접 자료를 요청하고, 이들의 춤 영상을 찾아 확인하기도 해요. 회사에 협조를 받아 해당 가수들에게 안무를 직접 가르쳐 보면서 이들의 실력과 성향을 파악하기도 합니다.”

곡을 받으면 곡의 장르와 분위기를 고려해 춤의 장르를 정하는 등 큰 그림을 그린다. 전주와 도입부, 후렴구 등을 초 단위로 나누고 멤버 별로 부르는 노래 구간도 정리해 기록한다. 멤버 별 개인 안무는 통일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각각의 개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고민한다.

춤은 흥겨움을 바탕으로 한다지만 일은 역시 일. 노래 한 곡에 대한 안무 의뢰를 받으면 며칠 밤을 지새워야 한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아이디어로 동작들을 금세 만들어낼 때도 있지만, 평소 구상해놓은 동작들을 응용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영감을 얻기 위해 미술 전시회를 종종 찾거나 영화를 자주 본다.

춤 동작에 제한은 없다. 농구 드리블 동작을 응용해 춤에 반영하기도 하고, 특정 그림을 춤으로 표현해보기도 한다. 연극 무대의 소품과 장치, 심지어 마술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창의력의 기본은 최대한 많은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라는 게 두부의 지론이다.

두부가 오디션을 보고 들어간 방송댄스팀 ING는 1990년대 단원이 60여명에 달한 당대 최고의 댄스팀이었다.
“춤이란 음악을 시각화하는 과정”

춤은 중학교 1학년 때 친구의 제안으로 시작했다. 친구가 시키는 대로 추다가 재미를 붙였다. 비디오 테이프에 가수들의 무대를 녹화해 이를 보며 연습했다. 그러나 혼자 추는 춤은 한계가 있었다. 그는 더 큰 꿈을 품고 17세 때 서울로 향했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해 도움을 기대할 수 없었다. 가진 돈은 어릴 때부터 모아놓은 세뱃돈 120만원이 전부였다.

자취방을 구했고, 얼마 후 방송댄스팀 ING에 들어갔다. 유승준과 걸그룹 베이비복스의 안무를 담당하던 곳이었다. 전문 백업 댄서 생활의 시작이었다. 뜨거운 물도, 가스도 안 나오는 단칸방에서 하루 끼니를 컵라면 한 개로 때우며 춤을 췄다. 오후 3시까지 주유소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밤 11시까지 연습실에서 춤을 추고 돌아오면 몸은 녹초가 됐다.

그래도 신이 났다. 처음 들어간 프로의 세계에서 그는 혹독한 가르침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그 전까지 가수들 안무만 보고 따라 추는 수준이었는데, ING에서는 스트레칭부터 기본기를 탄탄하게 배우게 됐어요. 하루종일 턴 연습만 시키는 날도 있었죠. 춤에도 장르가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어요. 하하.”

2009년 가수 태양의 히트곡 ‘웨딩드레스’, ‘웨얼 유 앳’의 메인 백업 댄서로 활동하면서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얼반댄스(여러 댄스 장르가 뒤섞은 스트릿 댄스의 일종)가 그의 무기였다. 국내에선 얼반댄스를 출 수 있는 사람이 드물었다. 2008년 미국에까지 가 배워온 춤이었다. 지금이야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춤에 대한 정보가 가득하지만 그때는 해외 춤을 접하거나 배우기 어려웠다.

어려운 춤 기술로 주목 받고 돈을 벌었지만, 두부가 추구한 것은 희귀 춤이 아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춤”을 추는 게 그의 목표다. 전문가들 사이에서 호평 받아도 대중과 호흡하지 못하면 대중가요의 춤은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다.

“춤은 청각을 시각화하는 과정이에요. 음악이 담은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풀어내야 하죠. 가장 큰 목적을 달성했다면, 그 다음으로 창의성을 보는 거죠. 이어 스토리텔링이 잘 됐는지, 기승전결이 있는 춤인지, 소품 콘셉트는 어떤지 세부적인 내용도 고려해야 해요.”

두부는 2009년 가수 태양의 ‘웨딩드레스’ 메인 백업 댄서로도 업계에 이름을 알렸다.
오랜 활동의 비결 “새로운 음식은 먹어봐야”

벌이가 안 된다거나, 가족들이 반대하는 이유로, 또는 안정적인 일을 하고 싶어서 동료들이 하나 둘 떠나갈 때도 두부는 남았다. 열악한 대우와 춤에 대한 부정적 인식 때문에 오래 버티기 힘든 춤판에서 20여년을 활동했다. 현재 활발하게 활동 중인 50여 명의 대중가요 안무가 중 90년대 활동한 이들은 1%도 되지 않는다고 두부는 말한다. 그는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의 안무가 손성득도 나와 같은 ING 출신인데, 만나면 종종 ‘10대 땐 고생 많이 했는데 이 정도면 성공했다’며 서로 칭찬해주곤 한다”고 웃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선 나이지만 그는 여전히 새로운 춤을 배우고 창작하며 1020세대와 소통하고 있다. “새로운 게 나오면 해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 오래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이다. 스트릿댄스(대중문화에 기반을 한 춤)는 물론 발레, 현대무용, 탭댄스 등 안 해본 장르가 없다. 90년대부터 춤을 췄으니 아이돌 가수가 등장한 이후 가요계에 유행한 춤 장르는 모두 섭렵한 셈이다.

“90년대 초반엔 흔히 ‘토끼춤’이라 말하는 뉴잭스윙이, 90년대 중반엔 힙합 댄스가 유행했죠. 2000년대 초중반엔 할렘 쉐이크, 더기, 크럼프가 인기였고 2000년대 후반부터 얼반댄스가 등장하기 시작했어요. 스포츠 댄스 빼고는 웬만한 춤들은 다 춰본 것 같아요.” 남들은 매번 새로운 스타일에 적응하는 게 힘들지 않겠냐 하지만, 그 배움의 과정이 그에겐 아직 즐거움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과거 백업 댄서들 사이에선 “버티면 성공한다”는 말이 떠돌았지만, 지금은 환경이 변했다. 방송댄스 장르에 특화된 전문 학원이 생겼고, 대학엔 전공과정까지 신설됐다. 온라인 매체를 통해 춤을 쉽게 접할 수도 있게 됐다.

위상도 달라졌다. ‘딴따라’라는 호칭으로 멸시 받던 과거와 달리 당당한 직업인으로 존중하는 풍토가 형성됐다. 최근 K팝 한류의 영향으로 국내 안무가들의 해외 진출 가능성도 커졌다. 그는 “가수 싸이나 방탄소년단 등 퍼포먼스로 세계적 인기를 누린 사례가 나오면서 한국 안무가들에게 해외 러브콜도 많이 늘었다”고 했다.

그는 요즘도 컴백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춤을 창작하고 가르치느라 바쁘다. “‘춤춰서 미래가 보장 되냐, 돈 잘 버냐’ 묻는데 문화예술과 관련한 직업은 다 비슷해요. 노력과 능력만큼 결실을 맺기 마련입니다. 제가 여전히 20대처럼 일에 매진하는 이유는 아직 이루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즐거움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중요했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스태프의 물건] 블루투스 이어폰
예전엔 줄이 달린 이어폰을 사용해 춤을 출 때마다 불편했다. 블루투스 이어폰이 생긴 뒤로 두부는 더 편하게 자신 만의 작업 방식을 고수할 수 있게 됐다.

안무를 하기 전 먼저 곡을 듣는다. 많이 듣는다. 멜로디와 가수 개개인의 목소리를 달달 외울 수 있을 때까지 수백 번을 들어야 안무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다. 수시로 들어야 하니 이어폰을 사용한다. 구간을 반복해 듣고 혼자 따라 부르기도 한다.

개인 연습실에서 춤을 출 때도 스피커가 아닌 블루투스 이어폰을 이용한다. 이어폰으로 들어야 세세한 소리까지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수가 어느 부분에서 숨을 쉬는지” 숨소리까지 잡아내 춤을 구상하고 동선을 짠다. 연습실 구석에 놓아 둔 스피커는 다른 연습생이 사용할 때가 아니면 그저 장식품이 돼버리고 만다.

단 프리스타일(즉흥적인 동작으로 추는 안무) 안무를 할 때는 이어폰을 내려놓는다. 복잡한 계산 없이 편안하게 음악에 몸을 맡긴다. 배우한 기자

“베이스, 코러스 등 노래를 구성하는 배경 소리들까지 다 들어야 해요. 작은 소리를 끄집어내 춤에 녹여내야 할 때가 있거든요. 곡 안에 울리는 하울링 소리를 부각시켜 포인트 안무를 짤 수도 있고요. 소리가 사방으로 퍼지는 스피커로는 이런 세밀한 소리를 듣기가 어렵죠.”

시도 때도 없이 이어폰을 꽂은 채 노래를 하거나 춤을 연습하니, 처음 보는 사람들은 그를 이상하게 바라볼 때가 많다. 그는 개의치 않는다. “음악도 없이 혼자 움직이는 모습이 우스워 보일 수도 있죠. 괜찮아요. 전 결과물로 얘기하고 싶습니다.”

이소라 기자 wtnsora21@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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