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슨책읽어? <6>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어릴적에는 SFㆍ추리소설 탐독 유학길에 챙겼던 황석영 ‘객지’ 잦은 이사에도 30년 넘게 간직 최근엔 ‘한국 사람 만들기’ 읽어 “영국 학제는 많은 독서량 요구 중고생되면 기초 문학평론까지”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책 보는 게 취미여서 24시간 거의 책으로 숨을 쉰다. 책은 나에게 공기다"고 했다.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시간으로 오후 6시, 그러니까 영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에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는 사이가 아닌 데서 오는 어쩔 수 없는 낯섦은 그러나 곧 책 얘기로 물꼬가 트이면서 슬그머니 사라지는 듯했다. 나는 참새도 아니면서 짹짹짹 아닌 책책책, 그라는 ‘책’을 물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책은 그렇구나. 책은 이렇게도 사람을 뻔뻔하게 만드는구나. 아무렴, 덕분에 나는 평생을 두고 읽을 책 한 권을 얻게도 되었으니 그가 읽고 있다던 ‘한국 사람 만들기’, 사고 보니 벌써 3쇄 본이다. 책은 그렇구나. 책은 이렇게도 사람을 분주하게 만드는구나.

김민정(김)= “누군가에게 전화하기 위해 알람까지 맞춰본 게 난생처음이었어요. 여기 시간 오후 6시입니다. 거기 시간 오전 10시일 텐데요, 아침부터 제가 괴롭혀드리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장하준(장)= “아닙니다, 별 말씀을요. 근황이랄 것까지는 아니고 요즘 학생들 채점 기간이라 살짝 분주해서요. 게다가 작년에 제가 개발학 연구소 소장이 되는 바람에 그 일로 정신이 좀 없네요. 개발도상 국가들의 경제뿐 아니라 사회라든지 정치라든지 소위 학제적 접근을 하는 기관인데 소통이 다각도로 이뤄지는 곳이라 여러모로 쉽지가 않네요.”

김= “경제학, 그러면 막상 아는 것 같아도 말해봐라 그러면 설명하기 힘들다 싶거든요. 교수님은 어떻게 경제학자로서의 삶을 택하게 되신 건가요?”

장= “경제학이란 사람들이 먹고살기 위해서 물건을 생산하고 그걸 유통시키고 교환하고 소비하는, 말하자면 우리의 물질적 생활에 기본적으로 관련된 모든 활동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고등학교 때 자유무역이론의 핵심인 '비교우위론'을 배웠는데 뭐랄까, 경제학이라는 게 이렇게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 이상의 얘기를 해줄 수 있구나, 현실을 직접 분석하는 데 도움이 되겠구나, 조금 거창하게 말해 현대 사회에 공헌할 수도 있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김= “와중에 케임브리지 대학으로 유학을 가셨단 말입니다.”

장= “함께 공부하고 싶었던 교수님들이 그 학교에 계셨거든요. 입학 허가를 받는다는 보장이 없으니까 여러 학교에 내봤는데 운이 좋았던 거죠. 1986년에 석사 과정 학생으로 왔으니까 올 7월이면 영국 산 지 32년이 되네요. 오래된 얘깁니다. 그땐 비행기 직항도 없었고 냉전 시대라 중국이나 소련 영토를 지나지도 못했을 때예요. 해서 서울에서 비행기 타고 알래스카 앵커리지로 아홉 시간을 가서 두 시간 급유하고 또다시 아홉 시간 유럽으로 내려와 파리로 가서는 거기서 다시 3시간 걸려 영국을 갔어요. 그렇게 도합 스물세 시간 걸렸어요. 그게 제 인생의 첫 외국 여행이었는데 말이지요.”

김= “지금은 서울에서 영국까지 열두 시간 정도 걸리잖아요. 비행 시간이 그 절반 가까이로 줄었다는 건 사실 많은 변화를 함축하는 말이기도 한데요.”

장= “제가 처음 영국에 공부하러 왔을 때만 해도 우리는 군부독재 시절에 개발도상국이었어요. 그때 영국의 국민소득이 한국의 두 배쯤 되었던 것 같은데 요즘은 거의 동등해졌잖아요. 특히나 1987년 6‧10 민주항쟁을 텔레비전으로 보면서 마음 졸이던 생각이 나요. 요즘은 한국이 2016년 촛불부터 시작해서 2018 남북 정상회담에 북미 정상회담까지 정치가 제대로 가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 중에 하나가 되었잖아요. 자랑스럽고 기쁘죠.”

장하준 교수.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 “전공 서적 말고요, 당시 유학길에 챙겼던 책들 혹시 기억을 하시는지요.”

장= “너무 오래되어 가지고요(웃음). 공부용 책들 외에 두세 권은 소설책이었던 것 같은데 다른 건 생각이 안 나고 황석영 선생님의 소설집 ‘객지’는 지금도 갖고 있어요. 대학 다닐 때 굉장히 충격적으로 읽었던 작품이거든요. 분단 얘기, 산업화 얘기, 일용노동자 얘기, 월남전 얘기 등등이 담긴 단편들을 모은 책이었는데 제가 여기서 30년 넘게 살면서 이사를 다니면서도 안 버리고 챙겼으니까요.”

김= “그간의 인터뷰를 살짝 찾아봤는데 어릴 적부터 그야말로 엄청난 독서광이셨더라고요.”

장= “닥치는 대로 잡히는 대로 읽었던 건 맞아요. 밥 먹으면서도 책 보고 걸어 다니면서도 책 보고 그래서 혼도 많이 났어요. 워낙에 잡식성 독서를 하는 편인데 제가 SF 추리소설을 너무 좋아했어요. 아가사 크리스티와 아서 코난 도일의 작품들은 거의 다 섭렵한 것 같아요. 퍼즐 풀기 같은 걸 워낙 좋아해서 그랬을까요. 아가사 크리스티만 하더라도 소설 속 주인공들이 몸보다는 머리로 뛰잖아요. 남들이 생각 못 하는 줄거리를 많이 만들어내잖아요. 하나하나 꼬인 실타래를 풀어가는 게 너무 재밌었던 거지요.”

김= “그렇게 닥치고 잡히는 대로 읽었던 책 가운데 인생의 책을 좀 꼽아주신다면요.”

장= “일단은 대학 시절에 읽은 ‘장자’요. 거기 호접몽 얘기가 나오잖아요. 물론 다 동의하는 건 아니지만 세상을 그렇게 뒤집어볼 수 있는 시각에 크게 놀라워했던 게 기억이 나요. 그리고 제가 콜롬비아 작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광팬인데요, 특히 ‘백 년 동안의 고독’은 요즘도 3, 4년에 한 번씩은 꼭 다시 읽는 책 가운데 하납니다. 매번 새로운 게 보이더라고요. 대학 1학년 때인 1982년에 이 작품이 노벨문학상을 탔는데요, 당시에는 읽으면서도 무슨 얘기인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번역의 문제가 일단은 컸겠죠. 게다가 남미 문화를 전혀 모를 때니까요. 그런데 여기 와서 남미 친구들도 사귀고 남미도 드나들고 남미와 연관이 있는 개발경제학이란 학문도 하고 그렇게 차츰 남미에 대한 이해가 생기니까 소위 마술적 리얼리즘에 대한 앎의 진폭이 커지는 거예요. 영어판을 보니까 이게 진짜 기가 막힌 책이더군요.”

김민정 시인. 홍인기 기자
김= “영어로 읽은 첫 책이 있으셨을 텐데요, 전공 서적 말고요.”

장= “영국 와서 한 2, 3년 정도 지나니까 영어가 아주 조금 는 게 느껴져요. 해서 뭘 한번 읽어볼까 하다 집은 것이 움베르트 에코의 ‘장미의 이름’이었어요. 제가 워낙 추리물과 역사물을 좋아하는데 그게 그 둘의 짬뽕인 역사추리물이잖아요. 굉장히 재밌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다 읽어낸 첫 영어 소설이니 앞으로도 잊을 수가 없겠지요.”

김= “아무래도 영국이라 하면 고전과 대가가 즐비한 나라잖아요.”

장= “그야말로 엄청난 자부심을 자랑하죠. 셰익스피어나 찰스 디킨슨을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 숭배하듯 그러니까요. 게다가 조앤 K. 롤링처럼 현재에도 폭발적인 인기 속 작가들이 계속 양산되잖아요. 여기서도 누구나 다 읽어야 하는 게 고전임을 알아요. 많이들 집중해서 의무적으로 읽기도 해요. 대신 어떤 한 분야에 크게 쏠리지는 않는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라는 게 있지만 독서 취향들이 워낙 다양하기 때문에 읽는 범위가 상당히 폭넓은 편이지요. 예컨대 우리랑 다르게 전기물이 그렇게 많아요. 역사적인 인물, 이미 죽고 없는 과거의 위인들만 전기가 있는 게 아니라 생존해 있는 정치인이랄까 가수랄까 배우랄까 코미디언이랄까 이슈가 되는 인물들의 논픽션이 많이 팔리기 때문에 논픽션을 쓰는 사람 역시 많은 편이지요. “

김= “역사와 전통이 깊은 만큼 책 읽기 교육에 있어서도 뭔가 다름이 있겠지요.”

장= “워낙 인터넷 문화가 승해졌으니까 전보다 책을 안 읽고는 있다지만 어릴 때부터 책을 즐기면서도 비판적으로 읽는 교육을 많이 시킨다고 보면 됩니다. 일단은 많이 읽히는 게 중요하니까 무슨 책이 됐든 어떤 방법으로든 애들한테 계속 책을 쥐게 해줘요. 학교에서 다 못 읽은 책이면 집에 가져가게 한다든가 그렇게 애들한테 책을 권하고 책을 읽게 하고 책을 읽는 자세를 일찌감치 잡아줍니다. 애들이 중고등학생쯤 되면 아주 기초적인 문학평론이라고 해야 할까요, 책을 비판적으로 보는 눈에 예리함이 붙어요. 과목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학제에서부터 요구되는 독서량이 굉장히 많은 나라예요.”

김= “영국은 신문 지면에서의 서평란이 여전히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고 들었습니다만.”

장= “다른 매체에 비해 신문 자체가 어쩔 수 없이 자꾸 밀려나는 건 있어요. 그건 전 세계적 현상일 거잖아요. 그런데 신문 지면으로 보자면 서평란이 많이 축소된 건 아닌 듯해요. 워낙 이 지면이 인기가 있거든요. 작가들의 사회적 지위가 높고 국민들이 비교적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예컨대 이번 여름에 반드시 읽어야 할 20권을 명사들에게 묻는다, 그런 기획이다 하면 관심들을 엄청 보이는 것 같아요.”

김= “교수님의 저작들이 한국의 독자들에게 꽤 큰 사랑을 받아온 것도 사실인데요.”

장= “다른 논픽션 작가들에 비해 더 좀 친근하게 쓰려고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요. 경제에 대해서는 딱딱하게 쓰기 시작하면 한이 없죠. 제가 경제학에 대한 대중 서적을 왜 쓰겠어요. 쉽고 재미나게 알려드리려는 거거든요. 글 쓰는 사람으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도 바로 그 점이 포인트에요. 읽는 사람이 이해를 못 하면 그건 열에 아홉 작가의 잘못이지 읽는 사람의 잘못이 아니거든요. 그러다 보니 궁리를 많이 하죠. 영화나 책에서 인용도 많이 하는 편이고요. 읽기 쉬운 글이 쓰기 쉬운 건 또 아니니까요.”

한국일보 자료사진
김= “교수님의 저작을 아직 한 권도 읽지 않은 독자가 있다고 할 때, 관심은 있는데 어떻게 읽어야 하는지 막막할 때, ‘장하준의 도서들’은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까요?”

장= “제가 독자들과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책이 ‘사다리 걷어차기’였어요. 2003년 영국에서 출간된 것이 번역되어 한국에 나온 건데 학술서적이었거든요. 그런데 의외로 대중의 반향이 있는 거예요. 이후 보통의 독자들을 위해 본격 교양 경제서를 한번 써 봐야겠다 해서 ‘나쁜 사마리아인들’을 펴냈고,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맹목적인 시장주위에 대해 비판하는 책인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역시 제가 기획해서 출간하게 되었어요. 가볍게 시작하고픈 마음이라면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가 좋겠다 싶어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서 문제가 되는 23가지 이슈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접근하기 쉬울 거거든요.”

김= “그나저나 요즘 무슨 책을 읽으세요?”

장= “제가 참을성이 없는 데다 지루함을 잘 느껴서 보통 여러 권을 같이 두고 보는데요, 하나는 나이지리아 여성 작가인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아메리카나’예요. 나이지리아 여성이 미국에 유학을 가 살면서 겪는 인종차별이라든가, 아프리카에서 미국에 자발적으로 건너온 흑인과 아프리카에서 미국에 노예로 끌려온 흑인과 어떻게 다른가, 그렇게 미국에 십몇 년 있다가 다시 나이지리아로 돌아가면서 두 대륙을 넘나드는 인생기를 다룬 책인데, 저도 사실 이민자로 여러 차별을 받은 적 있다 보니 와 닿는 면이 크더라고요. 사실 인종 차별이라는 게 사람 껍데기만 보고 하는 거니까요. 또 한 권은 리처드 K. 모건의 ‘얼터드 카본’이에요. 올 초 넷플릭스에서 방영되기도 했지요. 출연 배우들이 한국을 방문했다고 들었는데 이 소설은 복잡한 줄거리를 떠나 어쨌거나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해요. SF물의 좋음은 현재의 있음을 부정하는 데서 오는 폭발적인 상상력의 발현이잖아요. 그 속에 무궁무진한 이야기의 힘이 있고요. 마지막 한 권은 아산연구소 함재봉 교수님의 ‘한국 사람 만들기’ 시리즈예요. 총 다섯 권의 시리즈고 현재 1권과 2권이 나와 있는데 ‘친중위정척사파’ ‘친일개화파’ ‘친미기독교파’ ‘친소공산주의파’ ‘인종적 민족주의파’, 이 다섯 가지 층위가 어떻게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만들게 했나, 그걸 심도 있게 파헤친 책이지요. 상당히 어려운 학술서적이라 읽는 데 오래 걸리고 있는 책인데 많이 배우고 있어요.”

김= “저 마지막으로 유치한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장= “네? 유치할 리가 있겠습니까.”

김= “저기, 교수님에게 대체 책이란 뭘까요?”

장= “하하. 아무래도 공기 같은 게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연구를 잘 해서 그걸 책으로 써낼까 제가 그 생각을 하며 살잖아요. 또 전공에 관한 것들은 아니지만 책 보는 게 취미다보니 24시간 거의 책으로 숨을 쉬잖아요. 그러니 거의 공기라 하겠지요.”

김= “한국에는 언제 안 오시나요?”

장= “올 7월에 들어갑니다. 꼭 들어갈 겁니다.”

김민정 시인ㆍ난다출판사 대표

※ 한국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2018 책의 해’를 맞아 ‘책의 해’ 조직위원회와 함께 ‘무슨 책 읽어?’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김민정 시인이 각계 명사들을 만나 책에 대해 나눈 대화를 매주 금요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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