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평양 도착 전 이례적 보도 회담 내용ㆍ사진 33장 ‘화보처럼’ “북한 비워도 체제 문제 없다” 자신감
북한 평양역의 한 역무원이 13일 북미 정상회담 합의문을 실은 노동신문 1면을 들여다보고 있다. 평양=AFP 연합뉴스

체제안전 보장이 대가인 사상 첫 대미 핵 거래 사실을 북한이 주민들에게 본격적으로 알리기 시작했다. 관행을 깨고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에 돌아오기 전에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소식을 전했다. 북미 관계의 대등성과 선대와 다른 김 위원장의 지도자 이미지를 부각하려고 애쓰는 기색이다. 김 위원장의 여동생인 김여정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주도 하에서다.

조선중앙통신ㆍ조선중앙방송 등 북한 매체들은 회담 이튿날인 13일 오전 6시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의 단독ㆍ확대 회담 소식과 더불어 공동성명 전문을 일제히 보도했다. 회담 내용과 사진 30여장을 4개 면에 실은 당 기관지 노동신문도 34분 뒤 공개됐다.

특히 신문은 숙소 출발부터 회담장 도착, 정상 간 단독회담 및 확대회담, 오찬, 공동성명 서명식까지 북미 정상회담 전반을 상세히 기술하고 두 정상의 악수, 환담, 호텔 주변 산책 등 장면이 묘사된 컬러 사진 33장으로 1~3면 대부분을 채워 신문을 화보처럼 만들었다. 기사의 경우 처음이라는 사실을 강조해 김 위원장을 선대와 차별화했고, 사진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최대한 대칭적으로 보이도록 연출됐다. 2면엔 만면에 웃음을 띤 김 위원장이 ‘초강경 대북 매파’인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악수하는 장면이 담긴 사진이 실리기도 했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 관련 소식을 30여장의 컬러 사진과 함께 4개 면에 걸쳐 1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보도 시점은 김 위원장이 평양에 도착하기 전인 듯하다. 안전 등을 고려해 김 위원장 일정이 끝난 뒤 동선 등 관련 소식을 보도하는 게 관행이란 사실을 감안하면 이례적이다. 김 위원장이 북한을 비워도 체제ㆍ정권 유지에 문제가 없다는 자신감의 방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북한 매체들은 11일 밤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명소인 가든바이더베이와 마리나베이샌즈 옥상 스카이 파크, 싱가포르항 등을 둘러봤다는 소식을 12일 오전 곧장 보도했고, 앞서 10일 오전 평양에서 중국 국적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출발한 사실도 이튿날 바로 전했다.

이런 파격은 김여정 제1부부장 작품이다. 김 제1부부장은 최고지도자ㆍ체제 선전과 주민 대상 사상 교육을 전담하는 당 선전선동부 소속이다. 싱가포르 현지에서 보도 전반을 지휘한 것으로 보인다. ‘미화(美化)’ 기획 역시 김 제1부부장이 책임졌을 공산이 크다.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철천지원수로 지내온 미국과의 관계를 전환한다는 건 북한 내부에서 엄청나게 사변적 사건”이라며 “이를 내부에 이해시키려면 치밀한 선전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날 중앙통신은 전날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간 ‘선의의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중단할 수 있다는 의향을 밝혔고, 자신들이 제안해 온 ‘단계적 동시 행동’ 원칙에 양측이 동의했다고 보도했다.

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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