잉글랜드가 러시아월드컵에서 엄청난 이동 거리의 악재를 딛고 결승에 오를 수 있을까. 사진은 지난 해 10월 슬로베니아와 월드컵 유럽 예선에서 득점한 뒤 기뻐하는 해리 케인의 모습. 잉글랜드는 이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해 월드컵 진출을 확정했다. 런던=AP 연합뉴스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영토가 큰 나라다. 월드컵에 참가하는 32팀은 이동 거리에 의한 피로도를 최소화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영국 데일리메일은 “잉글랜드가 러시아월드컵 결승까지 가려면 무려 9,300마일(1만5,000km)을 이동해야 한다”고 지난 12일(한국시간) 보도했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은 한국처럼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베이스캠프로 정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북쪽 소도시 레피노에 있는 ‘포레스트 믹스 스포츠&릴렉스’다. 영국 히드로 공항을 출발해 이곳까지 2,103km를 비행해 12일 도착했다.

월드컵 기간 각 팀들은 베이스캠프에서 훈련하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제공한 전세기를 타고 경기 이틀 전이나 하루 전 조별리그가 열리는 각 도시로 간다. 잉글랜드도 튀니지와 1차전(볼고그라드), 파나마와 2차전(니즈니 노브고로드), 벨기에와 3차전(칼리닌그라드)을 치르기 위해 6,662km를 이동해야 한다. 조별리그를 1위로 통과하면 4강까지 5,674km, 2위로 통과하면 5,558km, 결승까지 가면 모스크바까지 669km를 더 간다. 총 이동 거리가 조 1위일 경우 1만5,108km, 2위일 경우 1만4,992km나 된다. 데일리메일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우승 이후) 52년 만에 성공하려면 영국에서 호주까지 먼 거리를 여행하는 셈”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지난 12일 베이스캠프 이동을 위해 상트페텔부르크 공항에 내리는 잉글랜드대표팀. 상트페테르부르크=AFP 연합뉴스
잉글랜드 축구대표팀의 러시아월드컵 이동거리. 데일리메일 캡처

그러나 ‘걱정도 팔자’라는 냉소적인 시선도 많다.

‘삼사자 군단’이라 불리는 잉글랜드는 세계에서 가장 인기 있는 대표팀이지만 성적은 늘 기대에 못 미쳤다. 축구 경제학자 스테판 지만스키와 저명한 축구 칼럼니스트 사이먼 쿠퍼가 쓴 ‘사커노믹스’라는 책은 ‘잉글랜드가 월드컵을 즐기는 8단계’란 코너를 통해 잉글랜드 축구를 비꼬고 있다.

1단계 월드컵 우승을 확신 한다→2단계 월드컵에서 꼭 과거의 적국과 맞붙는다→3단계 잉글랜드는 유독 자신에게만 일어나는 요상한 불운 때문에 졌다고 결론짓는다→4단계 상대 팀은 반칙만 한다→5단계 우승컵 근처에 가지도 못하고 탈락한다→6단계 탈락 다음 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일상으로 돌아간다→7단계 희생양을 선택한다→8단계 다음 월드컵은 잉글랜드가 반드시 우승하리라 믿는다.

잉글랜드가 월드컵이나 유럽축구선수권(유로) 등 메이저 대회에서 정상에 오른 건 1966년 자국 월드컵이 마지막이다. 이 책은 매 대회 잉글랜드를 우승후보라 철썩 같이 믿으며 패배한 뒤 늘 핑계를 찾는 팬과 미디어를 꼬집고 있다.

이번 월드컵에서도 잉글랜드는 우승 후보 전망에서 약간 비켜나 있다. 조별리그 통과는 무난해 보이고 폴란드 콜롬비아 세네갈 일본 중 하나와 격돌할 16강도 아주 어렵지는 않다. 그러나 8강에서 ‘최강’ 브라질이나 독일을 만날 가능성이 높다.

상트페테르부르크(러시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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