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세계 최장 적대관계의 청산을 선언했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에도 합의했다. 이로써 세계 유일의 냉전지대인 한반도의 평화 정착 분위기가 완연해졌다. 한반도에 데탕트의 팡파르를 울린 이번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가히 세기의 대화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남북미는 물론 관련국 모두 한반도와 동북아 질서의 근본적 변화가 반드시 정착하도록 양 정상의 담대한 싱가포르선언의 이행에 최대한 협조해야 할 것이다.

북미정상, 北 비핵화 등 포괄적 합의에 그쳐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12일 싱가포르 센토사섬에서 세기의 담판을 가진 뒤 한반도 비핵화와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체제 구축, 한국전쟁 전사자 유해 송환 등 4개 항으로 이뤄진 공동성명에 서명했다. 양측은 또 후속 회담을 열어 6ㆍ12 싱가포르 회담 합의사항 이행 방안을 논의키로 했다. 미국이 요구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표현은 포함되지 않았다. 비핵화 로드맵이나 시간표, 체제 보장의 구체적 방안 등은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해 기대를 모은 종전선언 내용도 없었다. 공동성명은 상당히 포괄적 내용을 선언적으로 밝힌 것에 불과했다.

핵심 의제인 비핵화와 상응 조치만 떼어놓으면 일견 미흡한 결과로 보일 수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두 차례 평양 방문과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의 워싱턴 방문과 김 위원장 친서 전달 등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실무협상에서 끝내 구체적 방안을 이끌어내지 못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고 여러 차례 언급한 대로 25년 이상 된 북핵 문제를 2시간여의 회담 한 번으로 풀기에는 시간이 부족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북미 양 정상이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서 큰 틀의 합의 외에 구체적 진전을 보지 못한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애초 북미 실무협상 때도 CVID와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 요구의 맞교환은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결국 CVID와 CVIG를 일 대 일로 배열하는 난제와 비핵화 검증 및 이행은 추가 실무협상으로 넘어갔고 최종 담판은 다음 정상회담으로 미룰 수밖에 없게 됐다. 그야말로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정착을 향한 험난한 여정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이다.

70년 적대관계 청산, 냉전해체 출발 큰 의미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상회담은 가히 세기의 담판이라고 할 만하다. 1948년 북한 정권 수립 이후 70년 동안 적대와 반목을 거듭하던 양국 정상이 한 테이블에 앉은 것만으로도 역사적 사변이다. 공동성명에도 ‘역사상 처음으로 이뤄진 북미 정상회담이 거대한 중요성을 지닌 획기적인 사건’임을 명시했다. 김 위원장은 공동성명 서명식장에서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만남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 서명을 하게 됐다"며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역사적이란 단어를 몇 번씩 강조하며 의미를 부여했다.

북미 정상이 사상 첫 회담에서 관계 개선에 합의를 이뤄 양국이 적대관계 청산의 중대한 첫걸음을 내딛게 된 것도 의미가 크다. 후속 회담에서 진전된 비핵화 합의에 도달하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완화 논의도 가능하다. 북미관계 정상화는 북일관계 개선 논의로 이어질 수 있고 북한이 국제사회의 정상적 일원으로 활동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할 수 있다.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과 마오쩌둥 중국 주석의 1972년 베이징 회담 이후 미중이 냉전의 장막을 걷었듯이 이번 회담이 21세기 마지막 남은 냉전지대 해체의 분수령이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비핵화 프로세스나 관계정상화 모두 첫걸음에 불과하다는 점에서 낙관이나 환호는 이르다. 북미는 1994년 제네바 기본합의서를 통해 핵 동결 및 연락사무소 설치를 비롯한 관계 정상화에 합의하면서 1차 북핵 위기를 봉합했지만 이행 과정의 불협화음으로 좌절을 경험한 바 있다. 2000년 평화협정 체결을 약속한 북미 공동코뮈니케도 결국 물거품이 됐던 사실을 감안하면 양국 관계에 어떤 ‘악마의 복병’이 숨어 있을지 모를 일이다. 결국 긴 호흡으로 인내심을 발휘하며 상호 신뢰를 구축하는 토대 위에서 합의 내용을 차근차근 실현해 가는 방법밖에 없다.

남북미, 신뢰와 인내로 평화 시기 앞당겨야

무엇보다 한반도 평화 정착을 위해서는 북미의 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트럼프 대통령이나 김 위원장 모두 진정성을 갖고 세기의 담판을 벌였듯이 향후 협상에서도 신뢰관계를 더 강화하면서 실질적 성과를 내야 한다. 언제 끝날지 모를 이 기나긴 과정에서 중국 러시아 일본 등 관련국은 동북아 질서의 평화적 재편을 위해 협조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도 이 과정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야 한다. 한반도 비핵화 완성 때까지 북미 양측을 견인해야 할 역할은 더 막중해졌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 궤도에 올라타도록 교류와 협력을 강화하는 일부터 착수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을 통해 밝힌 한미연합훈련 중단, 평화협정 전환 과정의 주한미군 역할 변화 등이 남남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하는 데도 빈틈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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