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서울 대학로에서 열린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시위'에서 여성들이 삭발하고 있다. 그들은 세상을 바꾸려 ‘불편한 용기’를 냈다. 한소범 기자

엉덩이가 ‘창작 기관’이라는 사실을 아는가. 나는 문화계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알았다. 정영목 이화여대 통역번역대학원 교수의 말. “번역은 머리, 손으로 하는 게 아니라 엉덩이로 한다. 끈질겨야 한다는 뜻이다.” 박상미 민음사 교정교열팀 과장의 말. “종일 의자에서 몇 번 일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교정교열은 엉덩이가 한다고 한다.” 방탄소년단의 노래까지 엉덩이에서 나온 것은 아는가. “음악적 영감이라는 말은 좀 맞지 않는 것 같다. 음악은 엉덩이가 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방탄을 키운 방시혁 빅히트엔터테인먼트 대표의 말이다.

그 기특한 기관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음란물이다. 나는 엉덩이가 매우 자주 거추장스럽다. 몰카, 정확하게는 불법촬영 카메라가 있을지도 모르는 공중화장실에서 특히 그렇다. 공중화장실에서 용변 볼 때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허둥지둥 모래에 머리를 파묻는 타조처럼. 바바리맨도 당당하게 쳐드는 얼굴을 감추는 건, 누가 나를 알아보는 게 끔찍해서다. 몰카를 찍고 올리고 보는 이들의 기쁨에 재라도 뿌리고 싶어서다. ‘얼굴 있는’ 여성의 엉덩이에 그들은 더 흥분할 것이므로. 또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꽁꽁 숨긴 몰카 렌즈를 찾아낼 수 없다는 걸 알아서다. 몰카 동영상을 영원히 지울 수 없다는 것도, 몰카범을 제대로 벌줄 수 없다는 것도.

“공중화장실에서 몰카 공포를 느껴 본 적 있나요?” 11일 한국일보 남성 직원 31명에게 물었다. “있다”고 한 건 4명. 27명은 “없다”고 했다. 이유도 물었다. “몰카 설치하는 사람이 대부분 남성일 텐데, 남성끼리 그런 흥미가 있을까”, “내 몸 보고 좋아할 사람 있겠나”, “남성 몰카 피해 사례를 거의 접한 적 없다”, “봐도 그만이다 …”. 그렇게 무심하게 살 수 있는 것이 바로 특권이다. 화장실에서든 어디서든.

그 특권을 넘보는 시건방진 여성 2만여명이 9일 서울 대학로에 모였다. 홍대 누드모델 몰카 사건에서 촉발된 불법촬영 편파수사 규탄 2차 시위. “울지마 지워 줄게, 죽지마 지켜 줄게, 우리가 싸워 줄게.” 플래카드 한 장이 가슴을 할퀴었다. 여성들이 규탄한 건 홍대 사건이 암시한 지긋지긋한 편파와 차별이다. 편파와 차별을 고발하면 “편파도 차별도 아니니 입 닫으라”고 윽박지른 이들의 뻔뻔함이다.

게티이미지뱅크

2012년부터 5년간 남성 몰카범 구속률(2만924명 중 538명∙2.6%)이 여성 몰카범 구속률(523명 중 4명∙0.8%)보다 높으므로, 편파 수사가 아니라고 한 언론은 주장했다. 구속을 피한 남성 몰카범이 2만386명이나 된다는 사실은 어쩔 건가. “치마가 별로 짧지도 않았는데 무슨 대단한 수치심을...” 법원은 얼마 전 그런 취지로 치마 입은 여성 8명의 다리를 몰래 촬영한 20대 남성 대학생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그런데도 법의 공정함을 믿으라는 건가. 여성이 몰카 가해 혐의자인 홍대 사건은 ‘사람(여성)이 개(남성)를 물은 꼴이므로’ 주목한 것이라고 경찰과 언론은 강변한다. 그간 사람이 개에게 숱하게 물리는 걸 알면서도 방관한 건 왜인가. 왜 개들은 자유롭고 사람은 억울한가.

긴 암흑의 시대 끝에, ‘입 닫을 이유’가 없다는 걸 여성들은 알았다. 안경 쓰지 말라고 해도, 눈 치켜 뜨지 말라고 해도, 밥이나 하라고 해도, 낙태는 불법이니 아이를 반드시 낳으라고 해도 듣지 않을 것이다. “몰카에 찍힌 네 책임도 크다”, “너는 성폭력 피해자 자격이 없다”고 시건방지게 재단해도 순순히 물러서지 않을 것이다.

이제 여성들의 말을 들을 차례다. 싫다고 하면 싫은 거다. 튕기는 게 아니다. 친절하면 그냥 친절한 거다. 좋아해서가 아니다. 힘들다면 힘든 거고, 차별이라면 차별이다. 싸움이나 하자는 게 아니다. 제발 좀 살자는 거다. 평등하게 안전하자는 거다. 그리고, 이제 그런 후진 세상이 아니다. 최문선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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