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미국 의사들의 번 아웃 및 우울 경험_김경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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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를 치료해야 할 의사가 업무 과중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사례가 급증하면서 의사들의 건강 문제가 미국 의료계의 주요 해결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9일(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광범위하게 퍼진 의사들의 ‘번 아웃’(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ㆍ정신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문제 때문에 미국의 많은 대형 병원이 큰 고민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에 따르면 미국 의사의 절반 이상이 ‘번 아웃’ 증후군 징후를 보이고 있다. 실제 지난해 의료 정보 사이트인 메드스케이프가 1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42%가 번 아웃을, 15%가 우울증을 각각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의사들은 늘어난 행정 업무 부담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 예로 환자 기록을 전자 차트에 별도로 기입해야 하는 일을 들 수 있다. 뉴욕에 있는 마운트시나이병원의 의사 로라 페코랄로는 “퇴근 후 저녁 식사를 준비하고 세 아이를 재운 뒤 매일 저녁 1시간에서 90분가량을 진료기록을 전자차트에 입력하는 데 쓰고 있다”고 말했다.

업무가 늘다 보니 의사들이 사회적으로 고립되는 악순환도 심화하고 있다. 스탠퍼드병원에서 의사들의 건강 문제를 담당하고 있는 테이트 샤나펠트는 “의사들이 만나서 환자 사례에 대해 논의하는 공간이었던 라운지가 사라지고 있다”며 “동료들과 더 적게 소통하게 되면서 점점 더 고립돼 가는 양상”이라고 설명했다. 앨라배마대병원(UAB)의 외과 의사인 데이비드 로저스는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돼 있지만, 점심을 제때 제대로 먹을 수 없는 의사들이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고 전했다.

의사들의 정신 건강은 의료서비스의 질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매우 세심하게 관리돼야 한다. 자칫 방치했다가는 의료 사고 위험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의학전문매체인 헬스케어다이브는 “번 아웃과 관련된 미국 의사들의 이직으로 발생하는 비용이 연간 170억달러(18조원)에 달한다”고 덧붙였다.

이런 이유로 전문가들은 땜질식 처방이 아닌 근로시간 단축 등 근본적인 근로환경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샤나펠트는 “의사들에게 그레놀라를 먹게 하고, 요가를 하라고 조언하는 식의 접근은 의사들이 겪는 불안과 소외를 치유하지 못한다”며 의사들의 심신을 악화시켜온 시스템을 전체적으로 손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사들은 메드스케이프의 설문조사에서 해결책으로 관료적 업무 줄이기(56%), 근로시간 단축(39%) 등을 꼽았다. 채지선기자 letmekno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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