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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족발 임대차 사건 “독일 일본은 이렇게 안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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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중족발 임대차 사건 “독일 일본은 이렇게 안 해”

입력
2018.06.11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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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일 족발집 사장 김모(54)씨가 임대차 계약 문제로 건물주에게 망치를 휘둘러 살인미수 혐의로 구속됐다.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른 것은 분명한 잘못이지만 소상공인 세입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하 임대차보호법)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씨는 2009년 5월 서울 종로구 체부동(서촌) 상가에 ‘궁중족발’을 열었다. 당시 보증금은 3,000만원, 월 임대료는 263만원이었다. 궁중족발이 맛집으로 소문이 나면서 2015년 5월 임대료를 297만원으로 올렸다.

갈등은 2015년 12월 이 건물을 인수한 이모(60)씨가 임대료를 인상하면서 시작됐다. 이씨는 보증금 1억원에 월 임대료 1,200만원을 요구했다. 기존보다 보증금은 3배, 임대료는 4배 인상된 금액이었다. 김씨가 항의했지만 이씨는 “싫으면 나가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씨는 2016년 4월 점포에 대한 명도소송(건물을 비워서 넘기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김씨는 세입자의 계약갱신 요구를 건물주가 정당한 사유 없이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임대차보호법을 믿었다. 하지만 이 법은 최초 임대차 계약부터 5년까지만 세입자를 보호하기 때문에 가게 문을 연 지 7년이 지난 김씨는 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다.

김씨는 명도소송에서 패소했고, 법원은 지난해 10월부터 12회의 강제집행을 시도했다. 이 과정에서 가게를 비우기 위해 지게차가 동원되기도 했으며 저항하던 김씨는 손가락 4마디가 부분 절단됐다. 지난 4일 강제집행이 완료돼 김씨는 결국 가게를 잃었다. 김씨는 건물주 이씨의 집을 찾아가 차로 들이받으려 시도하다가 실패하자 망치를 휘둘렀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들이 지난 1월 15일 서울 종로구 서촌 '본가궁중족발' 앞에서 법원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가게 앞을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회원들이 지난 1월 15일 서울 종로구 서촌 '본가궁중족발' 앞에서 법원 집행관이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도록 가게 앞을 막아서고 있다. 연합뉴스

이와 관련해 폭력이 정당화될 수는 없지만 세입자 상인들을 제대로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양지열 변호사는 11일 MBC 라디오 ‘이범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임대차보호법이 있지만 보호기간 5년이 지나면 집주인이 얼마를 요구하든 (따를 수밖에 없고), 싫으면 나가라고 하는 상황이 된다”면서 “5년 안에 투자금액을 환수한다는 것 자체가 ‘장사의 신’이 아닌 이상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양 변호사는 5년 이내라도 환산보증금이 6억1,000만원(서울 기준)을 넘으면 보호받을 수 없는 것도 문제라고 덧붙였다. 환산보증금은 월 임대료에 100을 곱한 금액에 보증금을 더한 액수로 임차인의 자금 부담 능력을 추정하는 수치다. 그런데 이 기준이 너무 낮다는 게 문제로 지적된다. 양 변호사는 “평균적으로 서울에서 개인 장사하시는 분들의 환산보증금은 7억1,000만원 가량”이라며 “턱도 없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른 나라 사정은 어떨까. 양 변호사는 “독일과 일본의 임대차보호법은 철저하게 임차인을 보호하는 쪽”이라며 “보호기간은 기본 10년이고, 임대료를 많이 올리려면 임대인이 소송을 해야 하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세입자들의 고통이 이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는 만큼 임대차 보호기간을 늘리고 환산보증금 기준을 조정하는 조치가 나올 법도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양 변호사는 “관련 법안이 국회에 20개 넘게 올라와 있지만, (통과되지 않은 게) 10년은 된 것 같다”며 국회의 무성의를 꼬집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도 관련 청원이 올라오고 있다. 8일 ‘건물주로부터 자영업자들을 보호해 주세요’라는 청원을 올린 네티즌은 ‘왜 노력하고 고생해서 좋은 상권으로 만들어놓은 상인들이 건물주들에게 가게를 빼앗기고 쫓겨나야 하느냐. 이런 나라에서 누가 노력하고 보상을 꿈꾸며 살 수 있단 말이냐’며 ‘악법을 개선해달라’고 요청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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