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첫날 동선

서방 외교 무대에 공식 데뷔 방탄차ㆍ방호차량에 둘러싸여 여장 푼 뒤 리셴룽 총리와 면담 트럼프 숙소와는 570m 떨어져
북미 정상회담을 이틀 앞둔 10일 오후 싱가포르 세인트 레지스 호텔 앞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탄 차량이 시민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다. 맨 왼쪽은 이 모습을 촬영하는 북한 기자. 싱가포르=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세기의 핵 담판’ 이틀 전인 10일, 연막을 피워 동선을 감추고 싱가포르에 도착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정체가 드러나자 연막 대신 전용 방탄차와 방호 차량들로 자기 신변을 겹겹이 에워싸고 숙소로 이동했다. 서방의 외교 무대에 공식 데뷔하던 날 김 위원장은 경호와 보안에 무척 신중을 기하는 모습이었다.

이날 오후 2시 25분(현지시간) 김 위원장의 창이국제공항 도착 사실은 비비안 발라크리슈난 싱가포르 외무장관이 곧바로 공식 확인했다. 트위터에 “방금 싱가포르에 도착한 김정은 위원장을 환영한다”는 트윗과 함께 영접 사진을 올렸다. 사진에는 군청색 인민복에 뿔테 안경 차림으로 비행기 트랙에서 내린 김 위원장이 활짝 웃으며 발라크리슈난 장관과 악수를 하는 장면이 담겼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 1ㆍ2차 남북 정상회담에서도 인민복 차림으로 문재인 대통령과 조우했다.

2012년 집권한 김 위원장은 그 동안 이웃인 중국을 두 차례 방문한 게 해외 방문 경험의 전부다.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판문점 남측 지역을 다녀갔지만, 서방 무대에 선 것은 처음이다.

김 위원장의 이번 싱가포르 방문을 위해 북한은 3대의 항공기를 띄웠다. 김 위원장 동선을 감추기 위한 ‘첩보 비행’ 성격이라는 게 대체적 해석이다. 김 위원장이 창이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북한 매체들은 김 위원장의 싱가포르행을 보도하지 않았다. 김 위원장 식재료와 전용차 차량ㆍ물품 등이 실린 수송기와 참매 1호도 김 위원장 도착 전후로 창이공항에 착륙했다.

김 위원장은 싱가포르 당국의 경비 속에 취재진을 따돌리고 VIP 전용 출구를 이용, 공항을 빠져나간 뒤 숙소로 향했다. 이동에는 수송기에 실려 온 김 위원장 전용 방탄 리무진 ‘메르세데스-벤츠 마이바흐 S600 풀만 가드’가 동원됐다. 3월 북중 정상회담과 4ㆍ27 남북 정상회담 당시에도 쓰였던 이 차량은 방탄ㆍ방폭이 가능한 데다 특수 방화 처리로 화염방사기 공격에도 대비했다. 번호판 없는 벤츠 리무진 앞부분 양쪽에는 인공기와 싱가포르 국기가 내걸렸고, 뒷좌석 문 중앙에는 금색인 북한 국무위원회 표식이 붙었다.

보호는 철저했다. 김 위원장 탑승차 앞뒤를 호위차 20여대가 둘러쌌고, 대기 중이던 경찰 모터 사이클 11대가 앞장섰다. 싱가포르 경찰이 김 위원장 숙소 세인트 리지스 호텔이 있는 탱린 로드까지 미리 교통을 통제해둔 덕에 차량 행렬은 쉽게 시내를 통과했다. 김 위원장 도착 시간인 오후 4시 40분 전후엔 세인트 리지스 호텔 출입이 차단되기도 했다. 이날 오전부터 호텔 1층 로비와 앞쪽 도로에선 출입객과 차량을 상대로 검색이 실시되고 있다. 직선 거리로 570m 정도 떨어진 샹그릴라 호텔은 회담 상대편인 트럼프 대통령의 숙소다.

김 위원장은 여장을 푼 뒤 이날 저녁 리셴룽(李顯龍) 싱가포르 총리와 대통령궁인 이스타나에서 만났다.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조미(북미) 상봉이 성과적으로 진행되면 싱가포르 정부의 노력이 역사적으로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며 감사 뜻을 피력했고, 리 총리는 싱가포르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하기로 결정해줘 고맙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은 12일 회담 전까지 숙소에 머물며 미국과 사전 협의를 진행한 실무협상팀과 함께 막판 전략을 가다듬을 것으로 관측된다.

싱가포르=권경성 기자 ficciones@hankookilbo.com

싱가포르=인현우 기자 inhyw@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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