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느별에서 왔니] <4>몸싸움 1인자 황희찬

[편집자주] 신태용호는 허약한 수비조직력 때문에 2018 러시아월드컵에서 ‘3전 전패하고 돌아올 것’이라는 비아냥을 듣지만 태극전사들의 면면을 보면 너무 야박하다는 평가다. 특히 중원과 공격진에는 역대 한국 축구에서 나오기 힘든, 재능 있는 선수들이 가득하다. 아시아 출신 중앙 미드필더는 유럽 빅 리그에서 통하기 힘들 거란 편견을 보기 좋게 깬 ‘캡틴’ 기성용(29ㆍ스완지시티), 세계적인 공격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한 손흥민(26ㆍ토트넘)이 대표적이다. 황희찬(22ㆍ잘츠부르크)과 이승우(20ㆍ베로나)는 ‘미완의 대기’지만 도전적인 돌파와 빠른 드리블 등 결이 다른 플레이로 팬들의 지지를 받는다. K리그를 호령하는 이재성(26ㆍ전북)은 지금 당장 유럽 무대에 내놔도 손색없다. 은사와 가족, 지인들의 이야기를 토대로 이들 5인방의 성장기와 숨은 뒷이야기를 소개하는 <너, 어느 별에서 왔니>를 연재한다.
국가대표 공격수 황희찬이 지난 달 28일 온두라스와 평가전에서 저돌적인 드리블을 하고 있다. 대구=연합뉴스

축구대표팀 차두리(38) 코치는 선수시절 ‘움직이는 화약고’로 통했다. 타고난 뼈대가 굵고 근육이 단단해 그와 몸싸움을 한 상대는 나가떨어지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정해성 수석코치(현 베트남 호앙아인잘라이FC 감독)는 차두리와 가슴과 가슴이 맞부딪히는 몸싸움 훈련을 하다가 왼쪽 갈비뼈가 부러지는 봉변(?)을 당했다. 2010년 남아공월드컵 직전 한일 평가전에서 차두리의 드리블에 일본 선수들이 차례로 튕겨져 나가자 팬들은 “터미네이터 같다”며 열광했다.

지난 4일(현지시간) 오스트리아 레오강 스타인베르크 슈타디온. 축구대표팀이 본격적인 훈련에 들어가기 전 차 코치가 황희찬을 불러 몸싸움 하는 시범을 보이며 한참 뭔가를 조언해줬다. 전ㆍ현직 ‘탱크’의 만남에 슬며시 웃음이 났다. 다음 날인 5일 오전 대표팀은 체력 강화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공중 몸싸움 훈련을 했는데 ‘1인자’는 역시 황희찬이었다. 그와 부딪힌 선수는 영락없이 쓰러졌다. 이재성(26ㆍ전북)도 “몸싸움은 김신욱(197.5cm 대표팀 최장신) 형과 희찬이가 최고”라고 엄지를 들었다.

딱 벌어진 어깨ㆍ굵은 허벅지 자랑 저돌적 플레이에 유럽축구도 반해 초등생 때 차범근 축구대상 받고 남다른 승부 근성, 중ㆍ고교 평정 닮고 싶던 손흥민과 투톱 파트너 “운동장선 호랑이, 밖에선 순한 양”
오스트리아 레오강 슈타인베르크 스타디온에서 몸싸움 훈련 중인 황희찬(왼쪽)과 손흥민. 레오강=연합뉴스
몸싸움 훈련 중인 선수들을 독려하는 차두리 코치. 레오강=뉴시스

177cm로 큰 키는 아니지만 딱 벌어진 어깨와 터질 듯 두꺼운 허벅지를 자랑하는 황희찬의 별명은 ‘황소’다. 그가 뛰는 모습을 보면 왜 이렇게 불리는지 알 수 있다. 골대를 향한 직선적이고 저돌적인 움직임, 상대 수비수와 일대일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거침없는 드리블은 기존 한국 공격수들에게 찾아보기 힘든 플레이라 축구 팬들을 매료시킨다.

2015년 포항제철고를 막 졸업한 그를 오스트리아 프로축구 잘츠부르크가 데려간 것도 이런 모습에 반해서다. 당시 입단을 진행했던 에이전트는 “잘츠부르크는 구단 철학이 뚜렷하다. 굉장히 빠르고 공격적인 축구를 원한다. 황희찬의 이런 특별한 스타일을 구단이 높게 평가했다”고 했다.

신곡초 시절 황희찬과 은사 이창원 감독과 함께 찍은 사진. 차범근 축구대상 시상식(왼쪽부터 시계방향) 한국일보 자료사진, 이창원 감독 제공.

황희찬은 어릴 적부터 될 성 부른 떡잎이었다. 경기 의정부 신곡초 시절 ‘스타 등용문’이라는 차범근 축구대상을 받았고 포항제철중-제철고로 스카우트돼 중고교 무대를 평정했다. 제철고에서 황희찬을 가르쳤던 이창원(현 중국 옌볜 2군 감독) 감독은 “운동장에서 위압감이 대단한 선수였다. 상대 기가 죽는 건 물론 같은 동료도 희찬이 영향 아래 놓이곤 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선수가 황희찬의 1년 후배 이진현(21ㆍFK오스트리아 빈ㆍ현 아시안게임 대표)이다. 이 감독은 “희찬이가 들어가는 타이밍에 패스를 제대로 못 찔러주면 야단이 난다. 희찬이 말이 맞으니 뭐라 할 수도 없다. 진현이가 우리 팀 플레이메이커였는데 제 타이밍에 패스를 못 넣어줘 여러 번 혼나다가 결국 킬 패스의 달인이 됐다”고 웃었다.

승부근성도 남달라 물불을 가리지 않는 바람에 황희찬을 말리느라 이 감독은 애를 먹기도 했다. 반면 운동장 밖에만 나오면 180도 달라졌다. 이 감독은 “운동장 안에서는 호랑이인데 밖에서는 온순한 양 같다고 할까. 처음에는 이중인격이 아닌가 싶었다”고 했다. 그는 “그렇다고 희찬이가 상대 선수에게 해를 가하거나 그런 적은 한 번도 없다. 축구장에서만 발생하는 강한 승부욕이 어린 나이에 유럽 프로리그에서 자리 잡고 월드컵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황희찬은 오스트리아 프로리그 소속 10개 팀 선수 중 유일하게 러시아월드컵에 참가한다. 대표팀이 러시아에 입성하기 전 사전 캠프로 정한 레오강은 잘츠부르크에서 1시간 30분 거리로 그의 소속 팀이 비시즌에 단골로 쓰는 전훈지라 더 남다르다.

지난 1일 보스니아 평가전에서 슛 기회를 놓치고 아쉬워하며 동료에게 엄지를 드는 황희찬. 대구=연합뉴스
온두라스를 상대로 득점한 손흥민을 안으며 함께 기뻐하는 황희찬. 대구=연합뉴스

2015년 10월, 황희찬이 리우올림픽 대표에 갓 발탁돼 인터뷰했을 때다. 당시 그는 “유럽에서도 모두 인정해주는 흥민이 형 같은 존재가 되는 게 꿈”이라고 수줍게 말했다. 3년이 지난 지금 황희찬은 손흥민의 투 톱 파트너로 월드컵 무대를 밟는다. 최근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16골, 13골)을 터뜨리며 팀의 리그 3연패와 유로파리그 4강을 이끈 그는 유럽 빅 리그 클럽의 러브콜을 받고 있는데 그 중에는 손흥민이 뛰는 토트넘도 있다. 황희찬은 “나는 뒷공간을 파고드는 게 장점이고 흥민이 형은 기술도 좋고 침투 능력까지 갖췄다. 월드컵에서 둘이 유기적인 플레이를 펼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월드컵에서는 정말 지고 싶지 않다. 철저히 준비해서 한 발 더 뛰고 하고 싶은 플레이 다 하면서 반드시 좋은 결과 얻고 싶다”고 특유의 승부 근성을 드러냈다.

레오강(오스트리아)=윤태석 기자 sportic@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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