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래 숨어서 할 일까진 아니지만, 드러내며 당당하게 할 일도 아니었다. 노안 때문에 안경을 들어올린 채 스마트폰 화면을 손가락으로 쓸어올리며 게임하는 모습이 한심하게 보일 거란 생각도 했다. 어쩌다 그런 모습을 들켰을 때 돌아온 말은 이랬다. “아직도 이걸 하세요?”

증강현실(AR) 모바일 게임 ‘포켓몬고’ 이야기다. 지금은 유행이 한참 지난 퇴물로 여겨지지만 2년 전만해도 대접이 달랐다. 한국에서 정식 서비스 되기 전 강원 속초 등 일부 지역에서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소식에 구름처럼 인파가 몰렸고, 그 곳은 ‘포켓몬고의 성지’로 관광 명소가 될 정도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포켓몬고를 혁신 사례로 언급하며 “창의적 상상력으로 무장해 다양한 킬러 콘텐츠를 개발해야 한다”고 다그친 것도 그 즈음이었다.

지난해 1월 국내에서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직후엔 난리도 아니었다. 공원에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걷는 사람 열에 여덟은 포켓몬을 잡고 있던 걸로 기억한다. 운전ㆍ보행 도중 포켓몬을 잡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경찰은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거리 곳곳에 경고 플래카드를 내걸기도 했다.

그런데 열기는 곧 식어버렸다. 혼자 돌아다니며 공을 던져 포켓몬을 잡는 단순한 게임 방식, 수집한 포켓몬을 서로 교환할 수 없는 점, 사용자간 배틀을 할 수 없는 점 등이 원인으로 지목됐다. 좀 더 역동적이고 자극적인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사용자들이 외면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등장한 게 작년 요맘때다.

‘국민게임’이었던 ‘애니팡’을 버리고 포켓몬고로 갈아탈 때만 해도 ‘유행에 뒤처지지 않는 아재’라며 스스로를 대견하게 여겼지만, 나중엔 ‘유별난 아재’라는 시선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포켓몬고를 끊을 수 없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젊은 유저들이 외면한 이유 때문이다.

단순한 게임 방식은 머리 싸매지 않고 편하게 즐길 수 있는 장점이었다. 사용자간 배틀 기능이 없는 것도 마음이 편했다. 나 같은 중년 유저가 날고 기는 젊은 유저들과 싸워 이기는 건 쉽지 않다. 패배가 일상화되면 금방 흥미를 잃었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건 ‘현장성’이다. 포켓몬과 그걸 잡을 수 있는 공을 얻기 위해선 돌아다녀야 한다. ‘물 타입’ 포켓몬은 강변, 호수 근처에 상대적으로 많고 ’전기 타입’ 포켓몬은 공항 근처에 자주 출몰한다. 새로운 포켓몬은 평소 가지 않던 낯선 곳에서 만날 확률이 높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김병수 박사는 블로그에 올린 ‘포켓몬고의 심리학’이란 글에서 “길을 걷다 우연히 얻는 것에 대한 욕망은 인간의 근원적 욕구”라며 “매일 정해진 곳에 출근해 같은 일을 반복하는 현대인에게 포켓몬고는 마음껏 세상을 탐색하며 자유롭게 살고 싶은 열망을 해소해주는 것일지 모른다”고 했다. 일상에 지친 중년에게 포켓몬고가 매력적인 이유다.

중년의 상실감이 또 다른 이유일수도 있겠다. 포켓몬고의 이른바 ‘만렙(최고의 레벨) 유저’인 40대 후반 친구는 “열심히 살아왔지만 직장에선 아래 위로 치이고, 가족들은 데면데면할 뿐”이라며 “결국 내가 가진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나마 포켓몬을 수집하고 진화시킬 때마다 작은 성취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가 포켓몬고를 시작한 건 아들과 소통하기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게임으로 위로 받고 있다고 했다.

포켓몬고 이용자 중 가장 비중이 큰 연령대가 40대(30%)이고, 50대 이상도 13%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온 게 작년 7월. 이후 4050 쏠림은 더욱 커졌을 것이라 확신한다. 매일 곳곳에서 벌어지는 ‘레이드 배틀’(가상의 체육관에서 능력치가 높은 희귀 포켓몬을 얻기 위해 유저들이 협업해 싸우는 것)에 참여하는 유저들은 40, 50대가 주축이다.

포켓몬고의 화려한 시작은 강력한 지식재산권(IP)을 활용한 콘텐츠와 AR 기술 덕분이었다. 하지만 끈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일상에 지친 사람들에게 ‘소확행(작지만 확실하게 실현 가능한 행복)’을 줬기 때문이 아닐까. 그래서 포켓몬고는 재평가받아야 한다.

한준규 디지털콘텐츠부장 manbo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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