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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보다 평화가 중요하단 논리는 기존 남북협약과 배치되는 탁상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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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보다 평화가 중요하단 논리는 기존 남북협약과 배치되는 탁상공론”

입력
2018.06.05 14:59
2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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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의…’ 책 낸 백낙청 교수

평화체제 구축에 집중하자는

일부 진보학자들 주장에 비판

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분단체제론'을 제기했던 백낙청 교수가 최근 남북미 관계개선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창비 제공
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분단체제론'을 제기했던 백낙청 교수가 최근 남북미 관계개선에 대한 소회를 밝히고 있다. 창비 제공

“기쁘시겠다, 축하드린다, 제가 요즘 참 인사를 많이 받는다. ‘분단체제론’이 맞은 것 아니냐는 얘기들이다.”

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만난 백낙청 교수의 일성이었다. 그럴 만 하다. 세계체제의 하위 체제로서 남북이 분단체제를 이루고 있으며, 그렇기에 분단문제가 해소되어야 남북이 발전할 수 있다는 그의 분단체제론은 분단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주목받았지만 반대도 많았다.

‘체제’라는 말을 가져다 붙이기엔 분단이란 한가지 요소가 너무 과대 포장됐다는 비판이 그 중 하나다. 남북 대결 강화는 이런 경향을 더 부채질했다. 북한의 핵개발로 남북관계가 엉망이 되어갈수록 분단체제론은 허무맹랑한 소리 취급 당하기 일쑤였다. 더구나 친가가 평북이란 점 때문에 분단체제론은 가족사가 반영된, 일종의 ‘희망 사고’ 아니냐는 비아냥까지도 있었다. 확실히 더 슬픈 건 ‘악플’보다 ‘무플’이다. 나름 제기한 이론임에도 무관심이 적지 않았다. 스스로도 “더 많은 토론이 있었으면 좋겠지만 인문학자(백 교수는 영문학자다)가 제기한 이론이어서인지 사회과학자들이 잘 상대해주지 않는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북, 북미 관계가 풀려나가기 시작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분단이라는 거대한 장애물이 제거될 기미가 보이자 당장 남한에서부터 체제 내의 변화 조짐이 보인다. 북미회담 이후 종전선언까지 성사되고 교류가 이뤄진다면 어느 정도 파급효과를 낳을 지 가늠하기 어렵다. 백 교수의 ‘분단체제론’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백 교수는 “이론이 맞았다고들 하는데, 아직 그런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 와중에도 끈질기게 주장해온 세 가지 정도가 생각난다”고 말했다.

첫째는 ‘흔들리는 분단체제’다. 남북 대결이 강화되는 양상을 분단체제의 ‘재안정화’가 아니라 ‘악화’라는 관점에서 본 것이다. 악화는 공고화가 아니라, 나쁜 방향으로 흔들리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분단체제는 계속 흔들리고 있었다. 둘째는 ‘시민참여형 통일 과정’에 대한 강조다. 백 교수는 “남북교류가 다 끊겼는데 무슨 시민참여냐고 했지만 지난 번 촛불항쟁 자체가 바로 시민참여”라고 강조했다. 위태로운 북미교섭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가 개입했는데 그 개입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개인의 진정성 못지 않게 촛불항쟁으로 탄생한 민주적 정부라는 점이었다는 설명이다. 백 교수는 “미국 강경파라 해도 그런 대통령, 그런 정부가 있는 남한의 중재를 무시할 수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은 ‘비핵화’다. 그는 “남북연합 아니면 한반도 비핵화는 없다고 주장해왔는데 비핵화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만큼 아주 틀린 소리는 아니었구나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국가연합’에 대해 설명해달라.

“연합은 각자 헌법, 군대, 정부를 다 따로 갖춘 국가로서 교류 협력을 늘리면서 점진적으로 통일로 가자는 아이디어다. 김대중 정부 때 남북간에 ‘낮은 단계의 연방제’라는 표현을 썼다. 남한의 뜻을 알지만 김일성 주석이 쓴 표현이 ‘연방제’라 고치지 못한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어서 그러면 그렇게 하자 한 것이다. 연방에 낮은 단계가 있다면 연합도 낮은 단계가 있을 수 있다. 그 낮은 단계에서부터 확실하게 움직여나가자는 것이다. 사실 이건 노무현 정부 때 10ㆍ4 선언 이후 예정된 것이었는데 정권 교체 때문에 그리 되지 못했다.”

-남북이 통일할 생각 말고 독립된 국가로 따로 살자는 ‘양국체제론’도 나온다.

“나는 그게 더 비현실적이고 환상적인 이야기라 생각한다. 남한의 헌법, 북한의 노동당 규약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남과 북이 그간 해온 숱한 협약에도 어긋난다. 통일이 빠진 평화와 번영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젊은이들이 통일에 대해 적극적이지 않다고들 하는데, 그건 갑작스러운 통일에 대한 얘기다. 평화와 번영을 이어가면서 장기간에 걸친 자연스러운 통일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혹자는 헌법상 평화통일 조항이 무력화되는 사실상의 해석개헌이라고 하던데, 그런 식의 논리라면 평화통일 조항은 남북 유엔 동시가입 때 이미 수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그 때 체결된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를 보면 남북 관계를 ‘통일 과정에 있는 특수 관계’라 설정해뒀다. 2000년 6ㆍ15선언 때는 통일을 점진적 단계적으로 하자고 합의했다. 이런 게 있는 이상 양국체제를 주장하려면 하다못해 상대방인 북한 김정은 위원장에게라도 먼저 물어봐야 하는 것 아닌가. 이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는가. 양국체제론은 학자의 탁상공론이라 생각한다. 평화와 번영을 통해 통일로 가야 한다 해서 지금 바로 통일로 가자는 말이 아니다. 통일보다 평화가 우선이라는 주장의 배경은 이해한다. 그런데 그 주장들은 통일 주장을 너무 단순화시킨 뒤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북미회담 이후 종전선언 가능성이 거론된다.

“기대와 희망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도 가능하다는 식으로 암시를 준다. 사실 북한이 이렇게 저렇게 취하는 조치에 대해 미국 측에서 가장 빨리 북한에게 내놓을 수 있는 카드가 종전선언이라 생각한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이렇게 갈까.

“그런 불안감들이 다들 있을 것 같다. 북미 양쪽 다 적당히 챙길 것 챙기고 다시 냉각기에 접어드는 게 아닐까 하는. 그러나 일단 첫 발을 떼면, 두세 걸음은 되돌리기 어려울 것이라 본다. 가장 중요한 건 현장에 있는 우리 한국민의 의지다.”

'분단체제론'을 제시했던 백낙청 교수가 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통일보다 평화를 내세우는 '양국체제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창비 제공
'분단체제론'을 제시했던 백낙청 교수가 5일 서울 중구 한 식당에서 통일보다 평화를 내세우는 '양국체제론'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창비 제공

-촛불시위를 강조하셨는데 사실 촛불에 남북관계는 없었다.

“맞다. 직접적으로는 없었다. 그러나 촛불은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요구했다. 그 큰 그림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 내가 ‘이면헌법’이란 표현을 썼다. 우리는 지금 헌법을 두고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하지만 내가 보기에 ‘제왕적’은 박정희ㆍ전두환 때의 헌법이다. 87년 개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 헌법은 없어졌다고 본다. 그러나 중요한 건 공식 헌법이 아니라 그 뒤에 숨어 있는 ‘이면 헌법’이다. ‘빨갱이를 때려 잡아도 좋다’는 이면 헌법. 이 이면 헌법을 폐기하자는 운동이 바로 촛불이었다고 생각한다. 이면 헌법에 기초한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맞선 것이 바로 촛불 아니었나.”

-급격한 해빙으로 초래된 ‘보수의 재구성’에 대해서도 말해달라.

“보수와 진보의 균형이 세상에 좋다는 거야 더 말할 필요가 없다. 그 동안은 분단체제와 남북대결 때문에 보수ㆍ수구연합이 절대화됐다. 흔히들 ‘양당 체제’라고 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나는 ‘1.5당 체제’라는 말을 썼다. 보수 아닌 이들이, 보수와 진보가 균형을 맞춰야 하니 보수를 살려달라고 하는 모양새가 요즘 연출된다. 보수다운 보수가 태어나길 기대한다. 구체적으로 바른미래당은 자유한국당에 비해 더 합리적인 것 같은데 치명적 약점이 있다. 한반도 문제에 있어서 자유한국당과 다를 바 없는, 가장 비합리적인 노선을 걷는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합리적 보수가 가능한가라고 되묻고 싶다. 솔직히 홍준표 대표는 ‘장사’로 좌파놀이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오히려 전술적으로 신축성이 있다. 변할 여지가 있다. 그러나 바른미래당은 굉장히 순진하게도 비합리적 노선을 택한 같다. 그 쪽 사람들이 사회경제 정책도 좋고 인간적으로도 더 진실해 보이긴 한데, 정치판에서 게임이 될까 모르겠다.”

-보수는 다시 태어날 수 있을까.

“농담삼아 ‘촛불이 세상은 바꿨는데 야당은 못 바꿨다’고들 하더라. 그 문제가 흥미롭다. 보수정당은 사실 그 동안 ‘아닌 척’이라도 했다. 지난 대선을 되돌이켜보면 이회창은 ‘따뜻한 보수’를 내세웠고, 이명박은 ‘중도실용주의’, 박근혜는 ‘경제민주화’를 내세우기라도 했다. 그런데 직전 대선에서 홍준표는 그저 친북좌파 타령만 늘어놨다. 그 동안 국민을 속여오기만 한 정당이 이제는 속일 생각조차 안하고 적나라하게 있는 그대로를 드러낸 것이다. 탄핵 이후 잔당을 규합하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점에서 이해되는 부분은 있다. 지난 대선에서 여론조사에서 10%에 머물렀으나 25% 가까이 표를 얻었으니 성공한 전략이긴 한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또 그러는 것 같은데, 이번에 그 전략이 먹힐까. 약효가 다하지 않았을까.”

-남북간 관계개선으로 인한 경제적 파급효과도 상당할 것 같다.

“남북이 뚫리면 경제적 이득이 상당할 것이다. 지금은 중소기업 위주지만 아무래도 대기업들이 들어가야 한다. 재벌 위주 정책이라고 반대하는, 속 좁은 이들은 없으리라 본다. 민간교류는 정말 모두가 열심히 공부할 기회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남한처럼 대기업 중심 사회가 되면 곤란하니까 처음에만 일단 그렇게 하고 점차 바뀌어 나가야 한다고 본다. 화해와 협력, 그리고 통일이 결국 남북 양쪽 사람들의 삶에 실질적 도움이 돼야 하는데 그 방법을 잘 찾아야 한다.”

-퇴보 가능성은 없을까.

“그래서 시민 참여를 강조하는 것이다. 시민참여라고 하니까 뭘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거창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그런 게 아니다. 이건 거꾸로 생각해보는 게 좋다. 시민참여가 완전히 배제당한 사례를 보자. 대표적인 박정희ㆍ김일성간 7ㆍ4남북공동성명이다. 결국 남북 양쪽 체제를 공고화하는 것으로 결론 났다. 예멘은 어떨까. 억지로 통일하니 전쟁, 갈등, 분쟁이 끊이지 않는다. 중국과 대만간 양안관계도 그렇다. 양안 교류는 우리가 부러워할 정도지만 결국 대만에 이에 반하는 정당이 집권하지 않았느냐. 시민참여가 빠지면 안 된다.”

조태성 기자 amorfati@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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