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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한진 일가… 5명 모두 11곳서 조사ㆍ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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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날 위의 한진 일가… 5명 모두 11곳서 조사ㆍ수사

입력
2018.06.04 17:07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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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가족 범죄 혐의ㆍ의혹 21개

조현아, 관세포탈 혐의 관세청 조사

이명희, 폭행 등 혐의 영장 기각

조양호ㆍ원태, 탈세ㆍ부정편입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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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적극적 주주권 행사” 표명

재계 “경영권 위태” 주시ㆍ우려

“사주 가족의 개인적 일탈과

기업 경영권은 구분해야” 의견도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왼쪽)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같은 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밀수·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 중구 인천본부세관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왼쪽) 전 일우재단 이사장이 4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마치고 법원 밖으로 이동하고 있다. 같은 날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은 밀수·탈세 혐의로 조사를 받기 위해 인천 중구 인천본부세관에 들어서고 있다. 뉴시스

지난 4월 12일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의 ‘물컵 갑질’이 세상에 알려지며 시작된 수사가, 두 달이 채 안 돼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 등 오너 일가족 전원으로 확대됐다.

4일 이명희 전 이사장과 조현아 전 부사장 모녀가 각각 서울중앙지법과 관세청 인천본부세관에 소환되며, 조 회장 일가에 대한 수사와 조사는 정점을 치닫고 있다. 조 회장 가족에 대해 수사ㆍ조사에 나선 정부 부처가 검찰 경찰 국세청 관세청 등 사정 당국뿐만 아니라 국토교통부,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농림축산부 검역본부, 교육부 등 11곳이나 되며, 조 회장 가족의 범죄혐의와 의혹만도 21개에 달한다. 그동안 한진그룹과 대한항공 본사, 조 회장 자택 등에 대한 압수수색이 11차례 벌어졌다. 빠르게 확대되는 수사에 재계에선 한진 오너 일가 5명 모두 사법처리 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흘러나오고, 경영권마저 위태롭게 됐다는 소리가 나온다.

이날 상습 갑질•폭언 의혹을 받는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부인 이명희(69) 일우재단 이사장에 대한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박범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혐의 일부의 사실관계 및 법리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는 점, 피해자들과 합의한 시점 및 경위,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고 볼 수 없는 점 등을 영장 기각 이유로 밝혔다.

이 전 이사장은 2014년 8월부터 3월까지 경비원에게 전지가위를 던지고 호텔 조경 설계업자에게 폭행을 가하며 공사 자재를 발로 차 업무를 방해하는 등 피해자 11명을 상대로 총 24건의 범행을 저지른 혐의를 받고 있다.

조 전 부사장은 해외에서 고가 명품 등을 들여오며 세금을 내지 않았다는 ‘관세포탈’ 혐의를 받고 있다. 관세청은 조사 여부에 따라 조 전 부사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부사장은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1심에서 징역 1년을 선고 받고 실형을 살다 2015년 5월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2년이 선고돼 석방됐다.

앞서 지난달 4일 동생 조현민 전 전무에 대해 업무방해 혐의로 신청된 구속영장은 검찰단계에서 기각됐다. 하지만 조 전 전무 역시 관세포탈 혐의를 받고 있고, 이중국적자로서 진에어 등기이사로 불법 재직한 점 등이 드러나 또다시 소환될 가능성이 높다.

조 회장과 조 사장에 대한 소환도 멀지 않았다. 조 회장은 부친인 조중훈 전 회장의 해외 보유 자산을 물려받는 과정에서 상속 신고를 하지 않아 수백억원대 탈세ㆍ횡령과 배임 혐의 등으로 수사대상에 올랐으며 아들인 조 사장도 인하대 부정 편입학 의혹을 교육부에서 살펴보는 중이다. 조 사장은 1998년 학점 미달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인하대 편입이 이뤄져 당시 학교직원이 징계를 받는 등 문제가 됐다.

사건 확대에는 오랜 기간 누적된 대한항공 직원들의 오너 일가에 대한 분노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 물컵 갑질에 이어 이명희 전 이사장의 폭행, 자택 인테리어비용 횡령, 오너 일가의 밀수 의혹 등이 모두 직원들의 익명 채팅방을 통해 세상에 알려졌고, 이후 관련 기관이 수사나 조사에 나서는 형태로 사태가 확대됐다. 이 과정에서 여론의 공분도 커져갔다. 이런 점에서 이번 사태의 본질은 ‘한진 오너 일가의 몰상식한 비행에 대한 국민적 분노’다.

그런데 여론의 지지에 힘을 얻은 일부 대한항공 직원들이 조 회장 일가의 ‘경영 퇴진’까지 요구하고 나서면서 기류에 변화가 일고 있다. 지난달 30일 대한항공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대한항공 사태에 적극적 주주권 행사를 표명하면서 사태가 또 다른 차원으로 확대됐다. 이날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장인 박능후 보건복지부장관이 기금운용위원회에 출석해 대한항공 사태와 관련, “국민연금의 장기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 우려 표명, 공개서한 발송, 경영진 면담 등 국민연금이 사용할 수 있는 주주권 행사를 제안한다”고 밝혔다. 국민연금은 대한항공 지주사인 한진칼의 지분 11.81%, 대한항공의 지분 11.67%를 갖고 있다. 대한항공과 한진칼 소액주주들도 한진 오너 일가의 경영 일선 퇴진을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국민연금과 소액주주까지 가세하며 한진 사주 일가에 대한 경영권 박탈 움직임은 점점 더 구체화하는 분위기다.

재계는 한진 일가에 대한 융단폭격식 단죄 움직임에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특정 기업에 이처럼 많은 정부 기관이 동시다발적으로 조사에 나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이라며 “특히 한진의 경영권이 어떻게 될지 많은 기업이 주시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조현민 전 전무 파동에서 비롯된 한진 그룹 일가의 욕설ㆍ폭행 등의 사주 가족의 개인적 일탈과 기업 경영은 구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의 사적인 일탈로 피해가 발생한 사안에까지 정부 부처가 동시다발로 나서는 모습은, 자칫 국가의 경영간섭으로 비춰져 시장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에선 현 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재벌개혁이 곳곳에서 가로막히자, 대한항공을 시범케이스로 삼아 재벌 옥죄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의구심도 나온다. 한 대기업 대관업무 담당 임원은 “몇몇 정부 실세들이 여론의 질타를 받는 일부 재벌의 경영권을 지방선거 이후 박탈하려 한다는 소문이 일고 있다”며 “대한항공을 본보기 삼아 재벌개혁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는 모양새를 보이려 하는 것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박관규 기자 ace@hankookilbo.com

박준석 기자 pjs@hankookilbo.com

유환구 기자 red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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