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를 하다 보면, 한 단어가 혹은 한 문장이 나의 마음을 동요하게 만드는 경우가 있다. 나는 어제 아침 그런 문장을 만났다. 로마 황제이자 스토아철학자인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글 ‘명상록’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책을 읽으려는 목마름을 버리십시오. 그래야 당신은 불만에 차 죽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신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즐겁고 진실된 마음으로 신들에게 감사하십시오.” 아우렐리우스의 의도는 무엇인가? 요즘 나의 유일한 즐거움은 새로운 책들을 구입하고 독서하는 것인데, 로마 황제는 이 문장을 통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심지어 그는 그런 나에게 죽을 때 후회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책을 ‘그저 많이 읽지’ 말고 ‘잘 읽으라고’ 당부한다. 책벌레에게 책은 달콤한 음식이다. 그는 마치 식도락가가 맛있다고 소문난 음식과 레스토랑을 찾아 다녀 먹는 것처럼, 자신의 몸에 맞고 어울리는 음식이 아니라, 대중이 유혹한 음식을 먹은 사람과 같다. 책을 읽는 목적은 그 안에 내용을 단순히 암기하거나 숙지하는데 있지 않고, 그 책을 통해 깨달은 바를 삶에 적용하여 행동으로 옮기는데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사람은 많아도, 자신의 목소리로 자신의 심장에서 끓어 올라오는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우렐리우스에게 지식에 대한 욕망도 결코 채워질 수 없는 허영이다. 책벌레에게 자신이 알지 못하는, 자신이 알고 싶은 분야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은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커지기 마련이다. 그의 경쟁상대는 타인이다. 타인과 경쟁하는 삶엔 다람쥐 쳇바퀴처럼 기운만 소진하고 만족감은 없다. 오히려, 그것이 중독이 되어 더 큰 욕심이 생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우렐리우스가 예언했듯이, 인생의 마지막 길에서 비통함과 불만으로 가득 찬 자신을 볼 것이다. 혹은 그런 비통함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을 읽어야 하나?

‘명상록’이라고 알려진 이 책의 원래 제목은 그리스어로 ‘타 에이스 헤아우톤’이다. 번역하지면, “그 자신을 위해 당부(當付)하고 싶은 것들”이란 의미다. 아우렐리우스는 하루 종일 로마제국의 국경을 보존하고 확장하기 위해 독일과 우크라이나와 같은 최전선에서 일생을 보냈다. 그는 매일 저녁 모두가 잠든 새벽시간과 밤 시간을 온전히 자신에게 할애하였다. 자신에게 부탁하고 싶은 말들을 목욕재계(沐浴齋戒)하고 한 글자 한 글자 일기형식으로 기록했다. 그는 어렸을 때 그리스어를 이용하여 철학을 배웠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이 그리스어를 통해 가장 잘 표현된다고 믿었다. 그는 자신의 모국어인 라틴어가 아니라 그리스어로 하루의 소회를 적었다. 내가 그의 일기를 훔쳐보았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의 기분이 상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자신을 1인칭으로 두지 않고 3인칭으로 두고 현재의 자신과 미래에 자신이 될 자신과 끊임없이 대화하였다. 그리스 원제목 ‘헤아우톤’이 ‘그 자신’이란 의미다. 그에게 3인칭 ‘그 자신’은 그를 매일매일 이끌어주는 ‘이상적인 삶의 안내자’다. 이 안내자는 끊임없이 그를 유혹하는 외부 침입자들을 막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내성(內城)’이다. 콘스탄티노플(오늘날 이스탄불)이 거의 천년 동안 난공불락의 도시가 된 이유는 도시를 삼중성벽으로 건설했기 때문이다. 외성 안에 밖에서는 보이지 않은 더 견고한 내성을 건축했기 때문이다.

내성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 안으로 들어가 벽돌 한 장 한 장을 끊임없이 인내를 가지고 쌓아야 한다. 아우렐리우스는 책 제목에서 ‘에이스’라는 그리스 전치사를 사용하여 그 과정을 설명한다. ‘에이스’는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다’이다. 그래서 전치사 ‘에이스’ 다음에 오는 명사는 움직임이 없는 장소를 표시하는 처소격(處所格)아니라, 영향을 받는 목적격(目的格)이다. 아우렐리우스는 마음속에 존재하는 ‘그 자신’이라는 내성을 ‘평정’이라고 부른다. 사람들은 쉴 공간을 찾아, 바닷가로 산으로 간다. 그러나 그곳에서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면, 이런 행위는 어리석다. 인간은 언제나 어디서나 쉴 공간을 마련할 수 있다. 만일 그(녀)가 자기 자신 안 깊숙이 들어간다면, 그 장소보다 더 조용하고 쾌적한 곳은 없다. 그는 그 안에서 평정심이라는 가구를 발견할 것이다. 아우렐리우스는 이 공간을 찾아 매일 저녁, 그날에 버려야 할 감정들을 씻어버리고 더 나은 자신으로 탄생시켰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저녁 자신에게 무엇을 ‘당부’하였나? 이 책의 그리스어 제목 ‘타’가 그런 의미다. ‘타’는 그리스어로 ‘것들’이란 의미다. 아우렐리우스는 매일 저녁 그는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자연스럽게 울려 나오는 즐겁고 진실된 ‘당부하고 싶은 것들’을 조금씩 발견하였다. 오늘 아침 나는 미래의 나를 위해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는 마음의 공간을 찾았는가? 그 곳에서 나에게 말하는 당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가? 나는 그 마음의 글귀를 읽고 있는가?

배철현 서울대 종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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