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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설성반점 짜장면 못 먹는다니…” 아쉬움 가득한 고려대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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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설성반점 짜장면 못 먹는다니…” 아쉬움 가득한 고려대생들

입력
2018.06.03 16:2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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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개같은’ 배달과 후한 인심으로

30년 넘게 캠퍼스 후문 지켰지만

주인 김태영씨 사고ㆍ경영난에 폐업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옆 중국집 '설성번개반점'을 1987년부터 운영한 김태영씨가 마지막 영업일인 지난달 31일 가게에서 폐업 인사를 전했다. 연합뉴스
서울 성북구 고려대 정경대학 후문 옆 중국집 '설성번개반점'을 1987년부터 운영한 김태영씨가 마지막 영업일인 지난달 31일 가게에서 폐업 인사를 전했다. 연합뉴스

“이미 주문한 짜장면을 짬뽕으로 바꿀 수 없는 가게였어요. 가게 이름처럼 ‘번개’같이 배달됐거든요. 전화번호가 아직도 저장돼 있는데 이젠 다신 전화 걸 수 없다니.”

서울 성북구 고려대 안암캠퍼스 정경대학 후문 옆을 30년 넘게 지켜온 중국집 ‘설성 번개반점(설성)’이 지난 1일 문을 닫았다는 소식에 졸업생 김동영(32)씨는 짙은 아쉬움을 전했다.

그의 얘기처럼 1987년 개업한 설성은 고대생 상당수에게 ‘짜장면집 이상’의 추억을 남긴 전설 같은 가게였다. ‘이 가게의 모든 음식은 만들어져 있다’는 소문이 돌 정도로 빠른 조리,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빠른 배달에 웬만한 고대 졸업생 휴대폰엔 설성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고 한다.

가게 주인 김태영(84)씨의 소소한 인심도 학생들에겐 큰 울림이었다. 졸업생 정모(32)씨는 “배고픈 청춘들을 위해 ‘곱빼기 같은 보통’을 내주거나, 짜장 그릇에 군만두를 하나씩 떨어뜨려 주는 등 인심이 좋았다”며 ”배도 채우고 영혼까지 달랬던 식당이었다”고 했다. 짬뽕에 소주를 들이켜며 어려운 가정형편을 걱정하던 학생들에겐 ‘오늘은 그냥 가고, 나중에 잘 돼서 비싼 거 사먹으라’며 돈을 안받은 날도 있었다고 한다. 1980년대 후반 학생운동 당시엔 경찰을 피해 도망가던 운동권 학생들의 도피처가 되기도 했다.

30여 년 간 고대생들의 사랑을 받던 설성이 문을 닫는 이유는 김씨의 교통사고와 경영악화다. 김씨는 “매일 오전 6시 경동시장에서 식자재를 직접 실어 나르며 운영비를 절약해 왔는데, 몇 달 전 어깨를 크게 다쳐 운전이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임대료와 인건비 상승도 말 못할 고충이었다고 한다. 폐업 3일째, 김씨 마음은 여전히 소외된 곳에 향해 있다. 그는 “매년 고향인 충북 음성군 시각장애인단체 나들이 행사를 해 왔다”며 “몸이 회복되는 대로 노인들이 저렴한 가격에 즐길 수 있는 칼국수집을 차리고, 소소한 수익이라도 생기면 음성에서 해 온 후원 사업도 계속하며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밝혔다.

김형준 기자 mediabo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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