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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Biz리더] 볼보 이어 벤츠 접수… 거리의 사진사가 車 황제로

입력
2018.06.02 10:00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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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한 장 찍으세요” 호객하며

기술자 1년 연봉 세 배 넘게 모아

냉장고 산업 거쳐 인테리어 업계로

# 1994년 오토바이 제조 뛰어들고

2년 뒤엔 자동차 사업에 도전장

1998년 中 민영기업 1호車 성공

# 토종 자동차 입지 굳히면서

글로벌 금융위기 틈타 볼보 인수

지난 2월엔 獨 다임러에도 손 뻗쳐

거리의 사진사로 시작해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일군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 볼보 제공
거리의 사진사로 시작해 글로벌 자동차 기업을 일군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 볼보 제공

지난 2월 25일 독일 다임러AG의 최대주주가 바뀌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전 세계 자동차 업계가 발칵 뒤집혔다. 다임러는 세계적인 명차 메르세데스-벤츠를 소유한 독일 기술력의 상징인데, 90억달러를 쏟아부어 지분 9.69%를 확보한 중국의 지리(吉利)자동차가 새로운 최대주주에 오른 것이다. 자동차 종주국인 독일 입장에서는 ‘차이나 머니’의 충격적인 습격이었다.

한참 아래로 봤던 중국 토종 자동차회사의 거침 없는 인수합병(M&A) 손길이 마침내 다임러까지 도달하자 리수푸(李書福) 지리자동차 회장도 세계적인 화제 인물로 부상했다.

2010년 스웨덴의 자존심 볼보를 집어삼켰을 때만 해도 긴가민가했던 시선이 확신으로 바뀌었다. “바퀴 네 개에 소파를 얹은 게 자동차냐”는 비웃음을 받았던 리 회장은 명실상부 세계 자동차 시장을 움직이는 거물로 우뚝 섰다. ‘벤츠 같은 프리미엄 차를 만들겠다’는 그의 어린 시절 꿈은 현실이 됐다.

자동차를 향한 흙수저의 꿈

중국 작가 장밍전의 저서 ‘리수푸, 자동차를 향한 올인’ 등에 따르면 리 회장은 1963년 저장성(浙江省) 타이저우(台州)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리 회장은 어린 시절 진흙으로 다양한 모양을 만들며 놀았는데, 가장 많이 만든 게 자동차였다.

19세가 된 1982년 그는 아버지에게 120위안을 빌려 사진기 한 대를 장만한 뒤 사업가의 길로 들어섰다. 말이 사업이지 타이저우의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사진 한 장 찍으세요”라고 호객행위를 하던 거리의 사진사였다.

사업 수완은 이때부터 두드러졌다. 당시 기술자 한 달 월급이 50위안 수준이었는데 그는 1년간 사진을 찍어 2,000위안을 모았다.

이후 필름 현상액에서 은을 제련하던 리 회장은 1986년 집에서 증발기 등 냉장고 부품생산업을 시작했다. 지리자동차의 모태다. 리 회장은 1989년 진짜 냉장고 제조업에 뛰어들어 지역에서 나름 유명한 브랜드로 올라섰지만 민영기업이라 정부 지정 냉장고 생산업체에서 탈락했다.

미련 없이 냉장고에서 손을 떼고 중국 1호 경제특구 선전(深圳)으로 간 리 회장은 인테리어 자재 업체를 차려 수입품의 3분의 1 가격에 비슷한 제품을 내놓았다. 1년 매출이 1억 위안이 될 정도로 성공을 맛봤다고 한다. 이때 모은 재산은 1994년 오토바이 제조에 이어 1996년 본격적으로 승용차 사업에 도전장을 던지는 주춧돌이 됐다.

리 회장이 청년 시절 손댄 사업들에서는 공통점이 발견된다. 사진사를 하다 사진 현상액을 다뤘고, 냉장고 부품을 만들다 냉장고를, 오토바이에서 자동차로 넘어가는 연결성이다. 또 하나는 냉장고 오토바이 자동차 사업 모두 직접 자신이 제품을 분해해서 완벽히 이해한 뒤 시작한 완벽주의다.

리 회장이 자동차 생산에 달려든 시절 중국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국영이었다. 민영기업은 자동차를 만들 수 없었다. 당연히 가족은 물론 지인들까지 “하늘에서 별 따기”라며 그를 말렸다. 자금도 문제였다. 1994년까지 지방정부의 자동차 산업 최소 투자액은 15억위안이었는데, 그의 ‘실탄’은 1억위안 정도였다.

그래도 리 회장은 토지 5만2,000여㎡(약 16만평)를 사 공장을 지었다. 부품 협력사들을 합자기업 형태로 만들어 투자자들이 사장이 되는 ‘보스 프로젝트’로 자금을 확보했다. 민영기업 규제는 쓰촨(四川)성 소유 버스회사 주식 70%를 인수해 쓰촨보잉자동차제조유한회사를 설립하는 편법으로 피해갔다.

1998년 지리자동차 최초의 모델 ‘지리 SRV’가 탄생했다. 중국 민영기업이 만든 1호 자동차였지만 품질은 형편없었다. 디자인은 토종 업체인 톈진자동차의 ‘샤리’를 모방했고 차체는 판금공이 쇠망치로 두드려 만들었다. 일본 토요타 엔진을 얹었다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2014년 4월 1일 볼보의 벨기에 겐트 공장을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을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이 안내하고 있다. 볼보 제공
2014년 4월 1일 볼보의 벨기에 겐트 공장을 방문한 시진핑 국가주석을 리수푸 지리자동차 회장이 안내하고 있다. 볼보 제공

냉정하면서 과감한 M&A의 귀재

승용차 가격이 평균 10만위안 정도일 때 지리 SRV는 처음에 5만8,000위안으로 등장했다 나중에는 4만위안 이하로 떨어졌다. ‘중국에서 가장 저렴한 자동차’란 타이틀을 획득했다. 이 같은 가격 경쟁력을 무기로 2000년에는 연간 판매량 1만대를 넘어서기도 했다. 토요타 엔진이 비싸 대당 수익은 몇백 위안에 그쳤지만 리 회장은 자동차 사업에서 희망을 봤다. 그는 1999년 저장성 닝보(寧波)에서 파산한 일본 기업 땅을 매입해 닝보 공장을 세웠다.

2001년 11월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며 지리자동차도 전환점을 맞았다. 민영기업도 기준 이상의 자본을 갖추면 합법적으로 자동차를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2002년 항저우(杭州)로 본사를 이전한 지리자동차는 2006년쯤 30여 종을 생산하는 토종 자동차 업체로 입지를 굳혔다. ‘짝퉁’이란 비아냥에도 ‘모방은 원가 절약의 지름길’이란 명제를 쫓았던 리 회장은 2005년 저가 정책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감행했다.

스웨덴의 자동화 로봇과 한국의 용접라인 등 첨단장비를 도입했고 2007년 8월 세계 최초의 타이어 펑크 검측 및 제동 시스템을 개발해 세계 140여 국가에 특허를 출원했다. 2009년 3월 호주의 자동변속기 회사 DSI를 인수, 변속기까지 자체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볼보 인수는 리 회장의 일생일대 승부였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리 회장이 경영난으로 포드에 매각된 볼보에 눈독을 들인 것은 인수 8년 전인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회를 노리던 리 회장은 2007년 1월 미국 디트로이트모터쇼에서 포드 측 인사들을 만난 뒤 같은 해 9월 포드 본사에 등기 우편으로 인수의사를 밝혔다. 처음엔 반응이 없었던 포드는 글로벌 금융위기로 자금난이 가중되자 2009년 10월 적극적으로 구애 작전을 편 지리자동차를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2010년 3월 리 회장은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포드로부터 18억 달러에 볼보 지분 100%를 인수하는 내용의 최종 계약서에 서명했다. 중국 최초의 글로벌 자동차 기업이 탄생한 순간이다. 애초 25억 달러에서 무려 7억 달러나 줄어든 매각대금은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했다. 리 회장은 이후 인터뷰에서 “나는 지혜로 길을 개척했고 진심으로 협상자들을 감동시켰다”고 밝혔다.

볼보 인수 뒤 리 회장은 영국 런던의 명물 택시 ‘블랙캡’을 만드는 망가니즈 브론즈, 말레이시아의 국민차 기업 프로톤, 프로톤 자회사인 영국 스포츠카 로터스, 볼보상용차 등을 지리자동차 제국에 포함시켰다.

다임러 최대주주 등극은 은밀히 진행했다. 지난해 11월 다임러 측에 지분 투자를 제안했다 거절당하자 불과 3개월 만에 자금을 확보해 지분 대량 인수에 성공한 것이다. 중국 언론이 그에게 ‘M&A 광인’ ‘자동차 미치광이’ 등의 별명을 그냥 붙인 게 아니었다.

변화하는 패러다임과 새로운 도전

겸손을 미덕으로 여기는 다른 경영자들과는 다르게 리 회장은 다소 거만하고 고집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자신만의 방식을 밀어붙여 성공한 경험이 그렇게 만들었겠지만, 지리자동차 내부에서는 이를 “이성적이고 열정적”이라고 평가한다. 냉정한 분석력과 확신이 서면 모든 것을 내던지는 과감한 결단력은 지금까지 그가 보여준 성과로 입증됐다.

유럽 자동차 업계는 볼보가 지리자동차에 팔릴 때 우려의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문화적인 차이는 물론이고 매출 규모가 지리자동차는 볼보의 20분 1밖에 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뱀이 코끼리를 삼켰다’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리 회장은 최종 볼보를 스웨덴 회사로 남겨두기로 약속했고 그대로 지켰다. ‘볼보는 볼보, 지리는 지리’란 원칙 아래 본사도 예테보리에 유지했고 경영도 전적으로 볼보 인사들에게 맡겼다. 볼보는 지리로부터 연구개발비 등으로 110억 달러를 수혈받아 예전 모습을 회복했다. 지리자동차는 볼보와의 협업 덕에 촌스러운 디자인에서 탈피해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만한 자동차로 거듭났다.

다만 다임러는 볼보와는 성격이 다르다. 지리자동차가 최대주주라도 지분율이 10% 미만이라 경영 참여는 제한적이다. 앞선 기술을 배우려는 게 보다 중요한 이유다. 지리자동차는 오는 2020년까지 친환경차 비중을 90%까지 끌어올릴 계획이고 이를 위해 선진 기술이 필요했다.

지리자동차와 볼보의 공동 브랜드 링크앤코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첫 모델 '링코앤코01'은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한다. 지리자동차 제공
지리자동차와 볼보의 공동 브랜드 링크앤코가 지난해 11월 출시한 첫 모델 '링코앤코01'은 세련된 디자인을 자랑한다. 지리자동차 제공

글로벌 자동차 시장은 전기차와 자율주행차 시대로 빠르게 변화 중이다. 지리자동차는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면모를 갖췄지만 차세대 자동차 분야에서는 아직 후발주자다. 규모나 기술력 측면에서도 폭스바겐이나 토요타 등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M&A를 통해 얻은 든든한 ‘형제’들은 지리자동차만의 경쟁력이다. 리 회장은 과거 중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자동차 산업은 끝이 보이지 않는 마라톤이라 함께 달리는 참가자가 많을수록 성적이 더욱 좋아진다.”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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