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두 차례 한반도 해빙 기회는 물거품 여건 변화로 순조로운 북미 비핵화 담판 남북ㆍ북미관계 선순환 속 평화협정 기대
김영철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북미정상회담' 조율을 위해 만찬을 한 뒤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보고 있다.

김영철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역사적인 미국 방문에는 기시감이 없지 않다. 18년 전인 2000년 10월 군복을 입고 워싱턴에 모습을 드러낸 조명록 총정치국장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남북 화해 무드 속에서 첫 남북 정상회담이 진행되고 북미 고위급회담이 이어졌으며 북미 정상회담까지 추진되는 모양새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 담판이 성공적으로 끝나고 한반도 정세에 획기적 변화가 생길 수 있다는 기대감도 같았다. 그러나 한반도의 냉전이 종식되고 곧 통일이 올 것 같던 분위기는 그해 말 미국 대선에서 부시 행정부가 등장하면서 그야말로 물거품이 됐다.

2007년에도 한반도 운명이 크게 바뀔 뻔했다. 임기 초반 북한을 악의 축으로 몰아붙이던 부시 행정부가 종전 선언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한반도에 해빙 무드가 조성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노무현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얼마 전에 부시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에게 전화할 때 종전 선언 문제를 언급했다는 말이 돌고 있는데 그것이 사실이라면 아주 의미 있다”라고 종전 선언에 관심을 보였고 10ㆍ4선언에 ‘3자 또는 4자 정상의 종전 선언’이란 문구로 정상 간 합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그해 말 이명박 정부로 정권이 교체되는 국내 정치 상황 변화로 한반도 평화 논의는 또다시 수면 아래로 잠복했다.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었던 2000년과 2007년 두 번의 기회가 무산된 상황을 미국이나 한국의 정권교체로 간단히 치환할 수는 없을 것이다. 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당시 지도자들의 의지가 부족했을 수 있겠고, 북미 사이에 수교관계가 필요할 정도로 절박하지 않았다는 상황의 논리도 작용했을 것이다. 북한과 미국을 리드할 우리 정부의 중재 여력이 지금보다 부족했을 수도 있다. 실제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을 보면 김정일 위원장이 3자, 4자 정상의 종전 선언 문제를 언급하면서 “노무현 대통령께서 관심이 있다면 부시 대통령하고 미국 사람들과 사업해서 좀 성사시켜 보는 것도 나쁘지 않는가”라고 요청했지만 성과로 이어지지 못했다.

과거 두 번의 해빙 무드와 비교할 때 지금은 모든 여건이 우호적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모두 예측하기 어려운 지도자라는 평가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이며 진지하게 대화에 접근하고 있으며 문재인 대통령의 적극적인 중재로 북미 간 불신의 벽도 크게 낮아졌다. 한미 양국에서 번갈아 정권이 교체되는 바람에 대외정책의 연속성이 끊겼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양쪽 모두 정권 초반이라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다. 이런 여건 변화가 완전한 비핵화(CVID)와 완전한 체제보장(CVIG)의 맞교환을 향한 대타협의 추동 요인이 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선순환의 실마리를 찾아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정상회담을 취소시킨 직후 남북은 전격적인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재차 확인했다. 이로써 미국은 대화 복귀의 명분을 찾았고 무산 위기의 6ㆍ12 북미 정상회담은 되살아났다. 돈독한 남북관계의 끈이 암초에 부딪친 북미 대화도 복구시킨 사례로, 남북관계가 한반도 평화의 초석이라는 명제를 확인시킨 것이다. 사실 2007년 남북 정상이 합의한 10ㆍ4선언을 계승하여 서해평화협력지대와 공동어로구역만 정상 가동했어도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비극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김영철의 행보와 지금까지 북미 대화의 속도로 보면 이번에는 2000년이나 2007년과는 다른 결과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북미가 비핵화 로드맵을 완성하고 여기에 상응하는 체제보장 방안까지 합의한다면 남북미 또는 남북미중이 참여하는 종전 선언과 평화협정 체결도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서 합의가 번복됐던 전철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모든 합의를 법제화하는 노력도 필요해 보인다. 남은 일정상 많이 이르긴 하지만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대북 체제보장 방안으로 제시한 미국 상원의 비준을 주목하는 이유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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