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노인들의 사회] 정치권이 분노 조장

“대구 시민들이 다 속았어요” 태극기 집회엔 지역주의 난무 변희재 등 기사ㆍ동영상 영향 상당 유튜브서 건당 수십만 조회 수
[저작권 한국일보] 6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교보빌딩 앞에서 열린 '자유민주주의 수호 국민대회'에서 참석자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배우한 기자

“대구 시민들이 지금 다 속았어요. 정치하는 놈 중에서 가장 배신자 유승민 같은 놈이 있으니까 대구가 이제 다 죽은 것 아닙니까? 유승민, 김무성 없었으면 박근혜 대통령 탄핵 됐습니까? 죄 없는 여성 대통령을 마녀사냥 해가지고 무슨 미래를 (만들어)낸다 하고 이 인간들이 해도 해도 너무 한 것 아니에요?”

지난 3월 31일 대구에서 열린 제49차 대한애국당의 태극기 집회에서 조원진 대한애국당 대표가 발언한 내용이다. 애초 2016년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이 시작한 극우보수 ‘태극기 집회’는 지금은 대한애국당이 주도하고 있다. 전체 태극기 집회 중에서 대한애국당이 이끄는 집회가 한 번에 수천명이 모이는 등 규모 면에서 가장 위력적이다. 정당이 태극기 집회를 주도하며 노인들의 분노를 이용하고 선동, 확대시키는 역할을 해온 셈이다. 지난해 자유한국당 전ㆍ현직 의원들도 태극기 집회에 참여했고,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부인 이순삼씨도 함께한 적이 있다. 김문수 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달에도 “태극기 집회의 뜻과 의지를 함께한다”고 말했다.

정당의 태극기 집회 선동에는 노인들의 분노와 함께 한국 사회의 고질병인 지역주의가 악용되어 왔다. 실제 대한애국당의 5월 태극기 집회 일정을 보면 5일에 울산과 경주에서, 12일에는 경기 성남과 서울 잠실에서, 19일에는 서울역, 26일에는 대구와 부산에서 열렸다. 영남지역에 태극기 집회 개최를 집중한 것이다. 서울 남대문경찰서 관계자는 “대한애국당 천만인무죄석방운동본부의 집회는 지난해 9, 10월부터 500~1,000명 규모로 서울 혜화 마로니에공원에서 이뤄지다가 계속 세가 불어났고 최근 5,000명까지 확대되면서 올해 2월에 서울역으로 넘어왔다”고 말했다.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대한애국당은 대구, 경북, 부산, 경남 등 지방 집회도 많이 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서울에서는 서울역, 대한문, 보신각, 동화면세점 앞, 교보문고 앞 등을 중심으로 7개 가량의 태극기 집회가 열리지만, 대한애국당의 집회는 이 중에서도 선동적이기로 유명하다. 매주 토요일 태극기 집회를 여는 한 단체 주최측의 이모(52)씨는 “대한애국당 집회는 우리들 사이에서도 수구적이라는 말이 나온다”고 했다. 대한애국당 외 태극기 집회들은 수십에서 수백명 가량이 주로 모인다. 그러다 단체들이 연합해서 올해 3ㆍ1절에 2만5,000명, 3ㆍ10 박근혜 탄핵 1주년에 1만5,000명이 모이는 등 세를 과시하기도 했다. 현충일에도 1만명 가량의 인파가 서울 시내에 모였다.

보수 기독교계의 개입도 상당하다. 택시 운전기사 오모(64)씨는 “교회에 다니는데 나오라고 해서 태극기 집회를 가봤다”고 말했다. 서울 광화문의 태극기 집회에는 한 교회가 이름을 내건 ‘멸공 북진 통일’이라 쓰인 깃발이 나부끼기도 했다. 지난 4월 “정권을 떠받치는 광범위한 좌파세력이 사회 전반에 걸쳐 체제 변혁과 국가 파괴를 진행하고 있다”며 출범한 ‘대한민국수호 비상국민회의’에는 박관용 전 국회의장과 함께 최성규 전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 등이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올해 3ㆍ1절 태극기 집회는 보수 기독교계가 지원을 하면서 경찰 예상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말했다.

집회의 선동성은 보수적인 노인 세력의 사회 반감을 극대화 시키는 효과가 있다. ‘언어, 감정, 집단행동: 탄핵반대 ‘태극기’ 집회의 사례를 중심으로’라는 논문의 저자인 연세대 사회학과 김왕배 교수는 “태극기 집회의 선동적이고 선정적인 언어가 참여자들의 의식을 악화시킨다”라며 “풍자나 해학 등을 통해 비판하는 과정은 필요하고 그런 언어가 돼야 하는데 선동적이고 선정적인 언어는 그 자체가 폭력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태극기 집회 참여자들은 넓게는 노동ㆍ환경ㆍ인권 운동가까지 ‘종북세력’으로 낙인하고 제거하고자 하며, 전쟁과 안보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을 ‘신체화된 감정’으로 가지고 있다. 또 자신들을 애국시민으로 호명하고 태극기 시위를 통해 책임감, 헌신감, 자부심 등을 극대화해 표현하며, 국가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자긍심과 함께 해방감을 맛보기도 한다. 김 교수는 논문에서 “광화문 촛불 집회에서 보인 연대와 기쁨은 대한문 태극기 집회에서도 ‘그들의 방식대로’ 나타난다”며 “이들 역시 ‘탄핵의 부당성과 탄핵을 지지하는 언론, 검찰, 헌법재판소, 정치인 그리고 이른바 ‘종북좌파 세력의 준동’ 에 대한 공분과 함께 함성, 깃발, 노래, 태극기 흔들기의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국가에 대한 헌신, 상호 연대감과 군중의 기쁨, 해방감 등을 표출했다”고 설명했다.

집회 공간 밖, 일상생활에서 보수파 노인들을 부추기고 선동하는 주체는 이름 있는 극우 보수 인사들이다. 변희재, 지만원, 조갑제, 정규재씨 등은 유튜브 등을 통해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보수파 노인들에게 이들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변희재씨는 책자와 동영상 등을 통해 “JTBC가 김한수 전 청와대 행정관과 공모해 태블릿PC를 입수한 뒤 파일을 조작하고 최순실씨가 사용한 것처럼 보도했다”는 취지의 가짜뉴스를 퍼뜨렸고, 이는 보수 노인층 사이에서 ‘진실’로 널리 퍼져 있다. 택시 운전사 오씨는 “JTBC 태블릿 PC는 완전히 깡통이다, 깡통 가지고 손석희가 보도한 거라고 상세히 나온다”고 말했다.

극우인사들의 정보 왜곡 사태가 심각해지자 검찰이 ‘태블릿 PC 조작설’을 유포한 변희재씨를 구속했고,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은 자신을 ‘주사파’ ‘빨갱이’로 비방한 지만원씨를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극우 인사들의 경쟁적인 유튜브 활동은 경제적 이익도 그 배경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유튜브측은 “광고 단가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고 동영상 길이 등 여러 조건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보통 조회수 1회당 1원씩 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일, 혹은 며칠 단위로 동영상을 올리고 한 번에 많게는 수십만회의 조회수를 달성하는 인기 극우 인사들은 수입도 상당한 셈이다. 이준웅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교수는 “젊은이들이 이미 기존 언론을 떠나 유튜브로 옮겨갔듯이, 이제는 보수 어르신들이 그런 경향을 쫓아가는 거라 생각한다”며 “진보와 보수할 것 없이 기존 언론을 믿을 수 없는 정보 매체라 생각하게 된 셈이고, 이제 보수 쪽이 그 부분을 간파하고 새로운 매체 전략을 사용한다”고 설명했다.

이진희 기자 river@hankookilbo.com

이혜미 기자 herstory@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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