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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韓酒 시장 생기면 우리 술도 사케처럼 뜰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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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 韓酒 시장 생기면 우리 술도 사케처럼 뜰 수 있어”

입력
2018.05.30 16:58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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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주 전문가 백웅재씨

전문잡지 ‘한주C’ 발간하며

전국의 숨은 ‘지역 술’을 소개

“까다로운 유통 조건 없애고

전문 소믈리에도 양성해야”

아버지가 문학평론가 백낙청

“종이매체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는 건 빈 말이 아니다. 백웅재씨의 아버지는 원로 문학평론가 백낙청.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뒤늦게 전공을 바꿔 금융학을 다시 공부하고 ‘회사원’ 생활을 한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백씨는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종이매체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는 건 빈 말이 아니다. 백웅재씨의 아버지는 원로 문학평론가 백낙청. 대학과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전공한 그가 뒤늦게 전공을 바꿔 금융학을 다시 공부하고 ‘회사원’ 생활을 한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백씨는 “아버지와 다른 삶을 살고 싶었다”고 말했다. 류효진 기자

“우리 술의 특징은 살균 과정이 없다는 거예요. 개봉하는 순간부터 산화되지만 절대 상한 게 아니에요. 효모가 살아있어 김치 익듯이 발효하면서 맛을 냅니다. 유통 과정이 엄청나게 까다롭지만 그만큼 독특한 매력이 있죠.” “파티에 어울릴만한 우리술이요? 복순도가에서 만든 샴페인 손막걸리가 있어요. 마트에서 구할 수 있는 건 포천일동 막걸리가 출시한 ‘담은’이요. 포천 햅쌀에 인공 감미료 없이 100% 수제 공법으로 만드는데, 생긴 것부터 마실 때 느낌까지 구름 같은 술이에요. 부드럽고 달콤합니다.”

가히 ‘주류계의 황교익’이라 할 만하다. 애주가 사이에서 ‘허수자’란 필명으로 더 잘 알려진 전통주 전문가 백웅재(46)씨 얘기다. 대한민국 우리술품평회, 전통주 소믈리에 국가대표 부문 심사위원을 맡았던 그는 한때 전통주점 ‘세발자전거’를 운영하며 전국 양조장을 찾아다녔다. 2015년 돌연 가게를 정리하고 강원 홍천으로 갔던 그가 2년 만에 돌아왔다. 술 전문잡지 ‘한주C’를 발간하면서다.

7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사에서 만난 백 씨는 “인쇄 매체에 대한 노스탤지어가 있다”고 멋쩍게 웃었다. “저 혼자 쓰는 1인 잡지예요. 10년 전보다 막걸리 시장은 수천 배 커졌지만, 자금도, 전문성도 부족한 양조장들이 아직 많아요. 잘 알려지지 않은 ‘프리미엄 한주’를 발굴해서 세상에 알리고 싶어요.”

백씨의 전직은 가구 회사 연구원.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그가 우리 술에 빠지게 된 계기는 회사의 특명을 받으면서부터다. 막걸리 붐이 막 불던 2009년 무렵 “가구 회사이니 산에서 나거나 만들 수 있는 물건 중 뭐든 장사되는 걸 찾아라”는 독특한 미션을 품고 강원도로 향했고 효모가 살아있는 우리 술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쉬운 점은 ‘저렴한 술’로 포지셔닝 돼있다는 점이죠. 프리미엄 시장만 형성되면 사케처럼 세계적인 주류로 올라설 거란 확신이 들었죠.”

1년 반 전국을 돌아다닌 백씨는 ‘우리 술을 승산 있는 투자 분야’로 꼽았지만, 특명을 맡긴 회사는 “병당 1,000원 대인” 막걸리에 투자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백씨가 회사를 그만두고 퇴직금을 모아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단골 주점을 인수한 게 2011년, 지역의 괜찮은 우리 술을 발굴해 대중화하는 인큐베이터 구실을 하겠다는 포부였다.

한주 전문잡지 '한주C'를 창간한 백웅재씨. 하반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한주 판매처를 결합한 홈페이지를 열 계획이다. 류효진 기자
한주 전문잡지 '한주C'를 창간한 백웅재씨. 하반기에 온라인 커뮤니티와 한주 판매처를 결합한 홈페이지를 열 계획이다. 류효진 기자

흔히 전통주라고 하면 떠올리는 지저분하고 촌스러운 ‘대학 주점’ 이미지를 지우려고, 이름부터 다시 지었다. 한류(韓流)에서 차용한 ‘한주(韓酒)’다. 내친김에 2016년 ‘술 맛 나는 프리미엄 한주’란 책도 냈었다. 백씨는 “허술하게 만들어서 여러 사람들이 쓰고 변형시킬 수 있게 만든 말”이라고 설명했다. 다음 단계는 고급주 시장 개척. 그는 “프리미엄 한주는 누룩을 쓰느냐, 생주로 유통하느냐를 따진다. 이렇게 만들 거면 재료를 당연히 좋은 국산으로 쓴다. 마셔도 뒤끝이 없다”고 말했다.

“효모가 살아있고 마셔도 뒤끝 없는 최고 등급이 3만원 미만인” 한주가 아직도 ‘터지지’ 못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는 유통이 까다로워 이 좋은 술이 생산 지역 바깥을 나가기 어렵다는 점, 둘째는 그래서 일반이 다양한 한주를 접할 기회가 적다는 점이다. 그는 “전국 어느 식당에 가서도 그 식당 음식에 맞춤한 한주를 권하고 팔수 있는 전문 소믈리에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백씨가 ‘한주C’를 발행한 배경이다. 메인 코너 ‘이달의 술’에 주목할 만한 신제품을 소개하고, 주류 업계 정보도 전한다. 이 잡지 편집 디자이너랑 전국 양조장을 방문해 소개하는 코너도 있다. “한주 소믈리에 중에서 글쓰기를 병행하는 사람은 저 밖에 없거든요. 좋은 술 고르는 법, 각 술에 맞는 음식과 서비스 방법, 즐기는 자세 등등 소개하는 책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는 홍천에 ‘한주 특구’를 만드는 게 궁극적인 꿈이란다. 첫 단계로 홍천 일대 양조장의 ‘한주 팸투어’를 간헐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다음 달부터 서울에서 한 달에 한 번 유료 시음회도 연다. 최근에는 다음 스토리펀딩을 통해 ‘한주C’ 후원자 모집을 시작했다. 7만원 이상 후원자에게 한 달 3병씩 추천하는 한주를 배송한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한주 판매점을 결합한 인터넷 홈페이지도 만들 예정이다. “세발자전거를 인수했던 2011년과 비교하면 프리미엄 한주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했습니다. 문제는 소비시장이 그만큼 성장하진 못했다는 거죠. 한주를 접하려는 애주가, 팔려는 식당, 양조장을 연결하자는 게 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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