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미,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이 미국을 방문 중이다.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과 관련한 최종 조율에 나선 것으로 보여진다. 북한이 과거 수십 년 동안 집요하게 미국과의 협상에서 관철시키고자 한 일관된 목표는 미국과의 적대관계 종식이었다. 김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도 이런 목적 달성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사실 미국 조야에서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에 대해 회의론이 확산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북한 내부, 특히 군부에서는 미국의 체제보장 약속에 대해 회의적인 시각이 광범위하게 존재한다. 서로 약속을 어긴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18년 전인 2000년 10월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로 당시 권력서열 2위였던 조명록 차수가 워싱턴을 방문했다. 그는 클린턴 대통령과 역사적인 회담을 가졌고, 올브라이트 국무, 코언 국방장관 등과도 연쇄적으로 만났다. 3일 뒤엔 마침내 북미 사이의 적대관계 종식을 선언하는 내용을 담은 ‘북미 공동선언’이 나왔다.

이 선언에서 양측은 한반도에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1953년 정전협정을 평화보장체제로 바꾸어 전쟁상태를 공식적으로 종식시키는 노력을 하기로 약속했다. 쌍방은 어느 정부도 타방에 대해 적대적 의사를 갖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하고, 앞으로 과거의 적대감에서 벗어난 새로운 관계를 수립하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기로 다짐했다. 북한은 “조미 공동선언을 국제법적 효력을 가진 외교적 문건으로 평가하며 이를 성실히 이행함으로써 조미관계 정상화를 위한 성의 있는 노력을 다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이 선언의 효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검증문제, 경제적 보상문제 등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김정일 위원장은 클린턴 대통령이 평양에 직접 와서 적대 관계 종식을 재확인하기를 원했다. 클린턴의 평양방문을 통한 북미간 정상회담 성사는 미국과의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기 위해 오랫동안 전개해온 북한의 필사적인 외교적 노력을 마무리하는 순간이 될 수 있었다. 잇따른 여성 성추행 스캔들로 탄핵위기까지 몰려 실추된 권위를 회복시키기 위해 외교적 업적쌓기에 집착했던 클린턴이었지만 그는 2000년 12월29일 “북한과 더 이상 회담할 충분한 시간이 없다”고 선언함으로써 평양방문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클린턴이 당시 최대현안이었던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무력화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의회 반대와 더불어 언론과 여론의 부정적 반응 때문이었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도 북미정상회담에 대한 회의적인 분위기가 지속되고 있는 모양이다. 북한에 대한 오랜 불신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는 듯하다. 의회, 언론 등 미국 주류사회 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대북 적대의식은 향후 북미합의 이행의 최대 걸림돌이 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에 대한 대가로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완전한 검증가능하고 불가역적인 체제보장(CVIG)을 제공하기 위해서는 미국 의회를 비롯해 언론과 여론의 압도적인 지지를 이끌어내야 한다. 북한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정도 완전한 비핵화 조치를 단행해야 하고, 미국은 적대관계종식과 체제안전보장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줘야 한다. 김영철 부위원장의 미국 방문은 김정은 위원장을 대신해 미국과의 비핵화-체제보장 합의의 실효성과 지속성을 최종 확인하려는 의도를 보여준다. 합의-파기 역사를 수십 년 동안 경험해온 북한측은 벌써 미국과의 합의 이후를 내다보고, 걱정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래서 중재역할을 하는 우리도 북미간의 대타협이 이뤄진 이후에도 상당 기간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개최된다고 가정해도, 이것은 끝이 아니라 또다른 시작이 될 가능성이 크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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