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5월 청와대 집무실에 마련된 일자리상황판을 가리키고 있다. 청와대 제공

정부로서는 요즘 참 난감할 법하다. 가뜩이나 일자리 증가 폭이 둔화되고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비판이 거센 상황에서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장벽을 만났기 때문이다. 노동 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나눈다는 근로시간 단축 자체는 더할 나위 없이 필요한 제도지만 앞서 정부가 내놓은 청년 일자리 대책과 충돌한다는 점이 문제다.

여기 A와 B 두 회사가 있다. A사는 대졸 초임 연봉 3,600만원에 다양한 복지 혜택까지 마련된 대기업이다. B사는 연봉 2,400만원에 복지는 열악한 데다 교통 여건마저 좋지 않은 중소기업이다. 다만 B사에 입사할 경우 정부가 연봉과 교통비, 주거비 등을 연간 1,000만원 가량을 3년 동안 보전해 주기로 했다.

취업준비를 하는 청년이라면 어느 회사를 선택할까? A사가 우선 순위라는 것이 상식이다. B사는 일자리를 찾지 못한 이들이 절박함에 찾는 선택지 중 하나다. ‘무직으로 있느니 3년 동안 일도 배우고 돈도 버는 것이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으로. 이것이 지난 4월 정부가 마련한 청년일자리 대책의 핵심이고 추진 배경이다. 정부는 중소기업 임금을 높여 매력적인 직장으로 만들어 놓는다면, 대기업엔 구직자가 몰리고 중소기업엔 일할 사람이 없는 ‘일자리 미스매치’도 해소된다는 기대를 내비쳤다. 이를 뒷받침할 재정도 추경을 통해 2조8,000억원을 확보해 집행에 들어갔다.

그러나 근로조건 하나를 추가하면 얘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대기업인 A사는 현재의 연봉과 복지 혜택에 오는 7월부터 근무시간이 단축된다. 최장 근로시간이 주 52시간으로 기존 68시간에서 줄어든다. 반면 30인 규모인 B사는 2021년 7월 1일에야 근로시간이 단축될 예정이다. 다시 취업준비 중인 청년에게 묻는다면 어떤 선택을 할까? A사와 같은 대기업에 취업하려 기를 쓰고라도 매달릴 것이 분명하다. 연봉도 많고, 복지도 좋은데다 근로시간이 줄어 여유시간까지 많아지는데 올해가 아니면 내년이라도 도전하고 싶지 않겠느냐는 얘기다. 정부 핵심 브레인들이 머리를 쥐어짜 겨우겨우 끌어올려 놓은 중소기업 매력은 근로시간 단축 앞에서 속절없이 사라지게 된다. 연봉도 복지 혜택도 적은데 야근까지 일상이라면 당연한 이치다. 3년 뒤 근로시간이 단축된다지만 그 땐 정부의 임금보전도 사라진다. 취업시장에서 되레 일자리 미스매치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해 보이는 이유다.

물론 근로시간 단축은 구직자보다 훨씬 많은 기존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상적인 근로문화 개선책이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이라는 인간다운 삶을 위해 꼭 필요한 제도다. 이미 2월 국회를 통과해 실행만 남겨둬 기대감을 품게 한다. 그러나 일자리 창출 역량은 의문이다. 직원들이 커피 마시고 담배 피우는 시간, 심지어 화장실 간 시간까지 측정해 근로시간에서 제하는 방식으로 기업들이 대비하고 있다는 소식은 이를 대변한다.

청년 일자리 대책은 근로시간 단축 법 통과 두 달 뒤에 나왔다.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지는 청년 실업률을 낮추겠다는 그 시급성을 인정하더라도 정책 충돌로 인한 효과 반감을 정책 마련 단계에서 점검하지 못했다. 마치 내달 금리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경기 살리겠다고 이달 재정을 푼 것과 다를 바 없다. 소비와 투자를 촉진하기 위해 시장에 뿌린 돈을, 인상된 금리가 모두 빨아들여 돈을 푼 의미가 없어진 모순된 상황이 지금의 청년일자리 대책과 근로시간 단축 간에 펼쳐지고 있는 셈이다.

어차피 근로시간을 줄이고 인력을 추가 채용하는 기업에 임금 보전 등 막대한 재정을 풀기로 한 이상, 영세 중소기업부터 먼저 시행되도록 했다면 어땠을까 싶다. 임금과 복지혜택은 대기업과 비교해 부족하지만, 청년 일자리 대책을 통해 임금 격차를 줄이는 데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워라밸을 누리는 이점까지 더해졌다면 중소기업을 찾는 청년들이 훨씬 많아졌을지 모른다. 지금이라도 정부와 국회가 다시 머리를 맞대 개선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이대혁 경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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