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보낸 북미 정상회담 취소 서한이 수난을 당하고 있다. 틀린 문법과 어색한 표현을 빨간펜으로 첨삭한 수정본이 온라인에서 놀이처럼 번지면서다. 일부 적절한 지적이 없지 않지만 대다수가 “수업 끝나고 보자 도널드. 실력이 늘지 않으면 이 수업 통과 못한다”는 식의 장난 수준이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문법실력은 형편 없을지 몰라도 이 한 장의 승부수가 김정은을 굴복시켰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을 협상의 기술 차원에서 해석한 신중파가 적지 않다. 뉴욕타임스의 외교안보 전문기자인 데이비드 생거가 대표적이다. 서한이 나오자마자 밑줄을 쳐가면서 행간을 읽은 그는 ‘극도의 분노와 적대감’이라는 취소 사유에 대해 “북한의 거친 말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서 주요한 이유는 아닐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북미의) 훌륭한 대화(wonderful dialogue)’라는 게 사실은 문재인 대통령과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통한 간접대화에 불과하고, ‘지금 당장은(at this time) 회담이 부적절하다’는 대목은 추후 회담 성사를 염두에 둔 협상전략이라고 간파했다.

▦대다수 전문가들이 생거처럼 트럼프 대통령의 화법에 주목하며 애초에 취소 의사가 없었던 협상용 서한이라는 데 방점을 뒀다. 특히 ‘마음이 바뀌면 전화나 편지를 해 달라’는 문장에서 부동산으로 성공한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술이 단적으로 드러난다는 분석이다. ‘거래는 끝났다’고 최후통첩을 던지면서 다시 결정권을 상대방에게 넘기는 방식이 부동산 업계의 전형적 수법이라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서한 공개 뒷날 취재진에게 “누구나 거래는 한다”면서 2시간 뒤 실제 입장을 번복했다. 그는 서한에서 부동산 사업가 기질을 최대로 과시한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서한에 김정은은 바로 답장을 보냈다.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의 담화 형식이었는데 김 부상이 김정은의 위임이라고 분명히 밝히면서 사실상 북미 정상 간 대화가 됐다. 분노와 적대감의 공격성을 완전히 제거한 담화의 골자는 ‘조건 없는 거래 재개’였다. 북한보다 더 독한 트럼프 대통령의 벼랑 끝 전술에 김정은이 항복한 모양새였다. 핵무기와 함께 자존심마저 내려놓는 그의 속내가 궁금하다. 선대가 가보지 못한 개혁개방의 길 앞에서 생각이 많지 않을까 짐작해 볼뿐이다.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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