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다수가 부모되기를 포기하는 시대에 여전히 ‘부모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를 던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육아(育兒: 아이를 키우는 것)’란 ‘육아(育我: 나를 키우는 것)’다라고 말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한국일보가 귀 기울여 봤습니다. 박지윤 기자

2017년 이 땅에 역사상 가장 적은 수의 아이들이 태어났다. 하지만 이런 소식이 더 이상 놀랍지 않다. 저출산은 호들갑 떨기에도 민망한 현실이다.

놀라운 것은 부모 되기를 포기하는 시대에 ‘부모란 무엇인가’라는 화두는 여전히 뜨겁다는 것. 부모 되기를 배우는 강의가 무려 22년째 대학생들의 부름을 받고 있고, 누가 볼까 싶은 육아 TV 프로그램이 명맥을 잇고 있다. 이유가 뭘까? ‘부모 되기’를 가르치는 이들은 말한다. '꼭 부모여야만 부모의 존재를 고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비혼 주의고 아이를 낳을 생각도 없어요. 단순히 ‘내 부모’가 궁금해 선택한 이 수업이 결국 ‘내 자신’을 향하며 끝맺어졌습니다.” 대학에서 20년 넘게 ‘부모 되기 교육’ 수업을 해 온 정순화(63) 고려대 가정교육과 교수의 강의 평가란엔 ‘간증’이 넘친다.

“매 학기 같은 과제를 내줘요. ‘나는 어떻게 커 온 걸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내 부모의 육아를 평가하게 하는 거예요. 부모에게서 받은 상처를 낱낱이 적어 낸 학생들이 많아요. 독이 된 기억들을 드러내 보이면서 치유하는 거죠.” 그들은 필요 이상으로 소심하고, 나이답지 않게 무기력한 자신의 모습은 원래 그런 것이 아니라 ‘그렇게 키워져 온 것임’을 깨닫는다.

부모가 그물처럼 던져 놓은 기대가 사실은 ‘오랜 속박’이었음을 고백하고 나면 눈물이 솟는다. 여기서 정 교수는 질문을 던진다. ‘부모님은 왜 그랬을까. 너는 어떻게 달라질 수 있을까?’ “평범한 사람들도 생각보다 쉽게 괴물 부모가 됩니다. 주로 원부모와의 갈등과 응어리를 청산하지 못한 채 부모가 된 사람들이죠.”

정 교수는 말한다. 부모의 어떤 말과 행동이 나를 일그러지게 했는지 되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자유로워질 수 있다고. “엄마, 아빠도 할머니, 할아버지로부터 비슷한 ‘부모 전형’을 물려받았을 확률이 높아요. 알고 나면 이해까진 힘들더라도 인정할 순 있게 돼요.”

더불어 지금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다. 원망을 뛰어넘어 자신을 만난다. 부모에 대해 생각하는 것은 그래서 모두에게 필요하다.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니까.

김광호 EBSPD는 <마더 쇼크>(2012), <파더 쇼크>(2013), <가족 쇼크>(2014) 시리즈를 연이어 만든 육아 다큐 전문 감독. 첫 딸이 다섯 살을 넘길 무렵인 2005년, <60분 부모>의 담당 프로듀서가 됐다. 그 때만해도 매사에 의욕 넘치는 아빠였다.

내 아이가 맞닥뜨린 문제라고 생각하니 열의가 솟았다. ‘아는 것이 힘! 무슨 문제든 제대로 공부해 거뜬히 해결해 보리라’. 그런데 웬 걸, 어떤 방법을 적용하든 그때뿐이었다. 이쪽에서 막으면 저쪽이 터져 나왔다. “내가 이렇게까지 하는데, 왜 아이는 바뀌지 않을까요. 나에겐 부모로서의 소질이 없는 걸까요?” 대부분의 부모들이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처음에는 그도 부모들의 말에 공감했지만, 뒤늦게 깨달았다. 그 말은 곧 내 아이를 완벽하게 컨트롤하고 싶다는 말이란 걸. “나한테 그럴 권리가 있나? 오만이었죠. 애한테 문제 일으키지 말라는 건, 성장을 멈추라는 뜻이에요. 그건 아이가 크면서 던지는 메시지인데.”

내 아이의 문제는 어떤 것이든 완벽하게 해결되어야만 한다는 강박이었던 셈. 문제는 아이보다 부모에게 있었다. 그들을 사로잡고 있었던 건 ‘좋은 부모 콤플렉스’.

김 PD는 말한다. 당당하게 ‘80점짜리 부모’가 되라고. “<마더 쇼크>에서 9살 한국 아이와 7살 영국 아이의 아침 일상을 비교한 적이 있어요. 완전 딴판이었죠. 부모 역할만 비교하면 한국 엄마는 2만점이었어요. 대신 아이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었죠. 아이가 나서기 전에 다 해주니까. ”

“우리 애들한텐 스스로 한 선택에서 쓰라린 실패도 맛보고, 다시 도전하며 이뤄가는 경험이 없는 거죠. 자기 효능감이 사라질 수밖에요.” 2만점 짜리 부모는 혼자선 아무것도 못하는 아이를 만든다. 80점짜리 부모가 되라는 건 그 이유다.

“아빠들이여, 명심하세요. 육아는 도와주는 게 아니라 같이 하는 겁니다.” 정 교수는 힘주어 말한다. 맞벌이가 필수가 되어가는 시대, 엄마의 독박 육아는 절대적으로 불가능한 일.

김광호 PD는 방법까지 세세히 짚어준다. "엄마보다 잘할 수 있는 걸 하면 돼요. 아빠는 아빠라서 더 잘할 수 있는 역할이 있습니다." “퇴근해서 피곤하다고 바로 눕지 말고, 10분만 아이 몸에 로션을 바르며 마사지라도 해주세요. 주말엔 30분만이라도 몸을 확 움직이며 흠뻑 같이 땀 흘려주시고요.” 결국 문제는 의지다.

“삼포세대 학생들을 만날 때마다 미안하고 아파요. 강의실을 가득 채운 학생들의 표정은 패잔병 같아요. 대학 입시도, 취업도 필요 이상으로 힘든 현실... 그러니까 더 힘들고 싶지 않은 거겠죠. 게다가 자식노릇도 버거운 머릿속엔 부모 세대가 물려준 ‘부모 각본’이 있어요. 자식을 위해선 올인해야 한다는 강박이죠. 그럼 그걸 깨 보면 어떨까.”

한껏 부푼 완벽한 부모상의 거품을 터뜨리면 ‘부모’라는 두 글자에서 느껴지는 이 거대한 무게도 조금은 가벼워지지 않을까. “부모가 되는 순간 나를 잃게 될 것이 두려운 학생들에겐 이렇게 말해주고 싶어요. 결국 평생 영원히 나와 헤어지지 않는 사람은 오로지 ‘나’ 뿐이라고. 자식은 머물렀다가도 떠나는 존재라고. 그러니 나를 돌보아야 한다고.”

당당하게 80점짜리 부모가 되라고 말한 김 PD도 힘주어 말한다. “왜 80점일까요? 남는 20점은 나를 위한 거니까.”

"제게 아이는 덜 떨어진 나를 어른으로 성장시킨 존재예요. 부모가 되지 않았더라면 단 한 번도 하지 않았을 고민들. 그 고민들을 통해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습니다."

"그래서 부모 되기를 포기하는 삼포세대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어요.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하지만 여건이 아닌 다른 이유로 고민하고 있다면, 단언컨대 부모가 된다는 것은 멋진 일이에요.” 그는 어딜 가나 자주 한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덧붙였다.“‘육아(育兒: 아이를 키우는 것)’란 ‘육아(育我: 나를 키우는 것)’다.”

기획, 제작, 사진 박지윤 기자

사진 출처 한국일보 자료사진, EBS 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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