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권 남용 고발 않는다는 특조단 입장에 피해자 반발

법원행정처가 상고법원 도입을 추진하려고 박근혜 정부의 눈치를 살펴 비상식적인 판결을 낸 정황이 드러났다. 그러나 조사 당국은 관련자 고발은 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피해자들은 사법정의 확립의 진정성까지 의심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앞서 ‘사법 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은 25일 대법원 산하 행정기관인 법원행정처 직원들이 청와대와 협조할 방안을 검토한 다수의 문건을 입수했다고 밝혔다. 2015년을 전후해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의 행정처가 숙원사업인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판결을 흥정의 수단으로 삼으려고 한 흔적이었다.

당시 임종헌 법원행정처 차장이 작성한 문건에서는 청와대의 원활한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기 위해 협력해온 사례로 ▲간첩단 조작, 한국전쟁 민간인 학살 등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소송을 소멸시효를 적용해 막은 판결(2013년 5월) ▲박정희 전 대통령의 긴급조치 9호는 위헌이지만 고도의 정치적 행위로 국가가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판결(2015년 3월) ▲노동자들의 체불임금 요구에 대해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초래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판결(2013년 12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는 무효라는 원심을 깬 판결(2014년 11월) ▲원심을 깨고 KTX 승무원이 철도공사의 근로자가 아니라고 본 판결(2015년 2월) 등이 거론됐다.

김승하 KTX 해고여승무원노조지부장이 2015년 2월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입장 발표를 하고 있다. 당시 대법원은 해고된 승무원들의 실질적 사용자가 철도공사라는 원심을 파기 환송시켰다. 연합뉴스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은 이런 판결로 극심한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 특히 KTX 해고 승무원들은 원심이 뒤집히면서 더 큰 충격에 빠졌다. 2004년 한국철도공사의 전신인 철도청은 2년 안에 정규직 전환을 약속하고 KTX 여성 승무원을 300명 가량 선발했다. 하지만 2년 후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의 원래 소속이 한국철도유통(홍익회)이니 철도공사 정규직으로 전환할 수 없다며 약속을 어겼다.

KTX 승무원들은 2005년 말부터 투쟁을 시작했고 이 과정에서 280명이 해고됐다. 2008년 4월 서울고법은 철도공사가 채용, 업무조정, 임금 결정, 인사관리 등의 시행 주체이므로 KTX 승무원들의 사용자는 철도공사가 맞다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철도공사는 승무원들에게 밀린 임금을 지급했으나, 업무에 복귀시키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2015년 2월 대법원이 원심을 뒤집으면서 받았던 월급에 이자까지 붙여 반납해야 했다.

김승하 KTX 해고여승무원노조지부장은 29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대법 판결 때문에 저희가 받았던 임금이 다 부당 이득이 돼 버렸다. 1억원의 빚이 생기고 지난 세월을 모두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에 대한 자괴감으로 힘든 상황을 겪다가 한 친구가 딸아이를 두고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있었다”고 토로했다.

사법부 스스로 존립 근거를 붕괴시키는 큰 사건이라고 비판하지만 뚜렷한 범죄혐의는 인정되지 않으므로 관련자들을 형사 고발하지는 않겠다는 특조단에 김 지부장은 강한 불만을 표시했다. 그는 “그 판결로 인해 저희가 피해를 입고 조합원 한 분은 돌아가셨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식 수사를 바란다는 김 지부장은 “당시 대법원장이 모든 판결 지시를 내렸다고 본다”며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구속 수사하지 못한다면 도대체 무슨 사법정의를 바로잡겠다고 하는 건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도 했다.

KTX 해고 승무원들은 29일 오전 대법원 앞에서 철저한 수사와 현 대법원장 면담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또한 청와대와 뒷거래를 위해 잘못된 판결을 낸 만큼 문제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정헌 기자 xscop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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