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 대법원장은 사법행정권남용 의혹에 대한 특별조사단 조사에 응하지 않았다.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 사법부에 마침내 때가 찾아온 것 같다. 대법원 사법행정권 남용의혹 관련 특별조사단(특조단)이 조사보고서를 공개한 지난 주말부터 사법부가 이처럼 국민적 비판의 대상이 된 적이 있었나 싶다. 그만큼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고, 또 한 편으로 실망스러웠다.

한 때 ‘성역’이라는 말이 유행처럼 떠돌았다. 누군가는 ‘재벌, 언론, 검찰’이라고 했고, 또 누군가는 ‘국세청, 검찰, 청와대’를 지목했다. 다들 구체적인 기준은 없었지만, ‘막강한 힘을 가졌고, 그 힘의 사용에 별다른 견제를 받지 않는 곳’ 쯤으로 어렴풋하게 동의를 하곤 했다.

그럴 때면 슬그머니 거론되는 곳이 있었다. 어렴풋하게나마 그 곳 사정을 알게 됐거나, 풍문이든 전언이든 그 곳 사람들이 털어놓는 내부 사정을 조금은 들어본 사람들 정도였을 거다. ‘다른 어떤 조직보다 폐쇄적이고, 다른 어떤 기관보다 수직적 권위가 강한 곳. 변화에 둔감하고 그래서 개성이 넘치는 사람이라면 적응하기 쉽지 않은 곳. 어떤 곳보다 막강한 힘은 가졌지만, 외부로 티 내지 않고 교묘하게 그 힘을 잘 사용하는 조직.’ 또 하나의 성역으로 사법부는 그렇게 설명됐다. 그리고 그 중심엔 판사 100명 중 선택 받은 1명 가량이 갈 수 있다는 법원행정처가 있었다.

이번 특조단 조사에 법원행정처가 등장하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특별관리대상 법관’에 대한 교묘한 관리, 상고법원이라는 숙원사업을 해결하겠다며 청와대와 재판을 가지고 흥정을 하려 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을 진두 지휘하는 곳, 생각해보면 법원행정처여야 가능한 일이었다. 전국 판사들을 주무를 인사권이 있고, 청와대나 다른 힘 있는 기관과 접촉할 ‘대관 업무’ 권한이 있고, 무엇보다 대법원장이라는 울타리가 그들을 지켜주고 있었으니까. 법원행정처로 인사 발령이 난 판사에게는 망설임 없이 “영전을 축하한다”는 말을 전할 때도, 법원행정처가 대법원의 또 다른 이름인 줄 알 정도로 우리가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물론 그들이 어떤 힘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는 문제가 아니다. 개인 출세(승진)를 위해, 자신들의 밥그릇(상고법원)을 챙기기 위해 공공의 이익(재판)을 저버렸다(흥정)는 게 중요하다. 재판관이 지켜야 할 양심을 자의든 타의든 팔기로 한 순간, 그들은 이미 견제 받지 않고 간섭 받지 않을 사법부 독립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린 셈이 된다. 엄격히 통제돼야 하고, 당연히 사후적이라도 처벌이 내려져야 할 일이다.

특조단이 내놓은 결론을 두고 ‘잘못은 분명 있는데, 책임질 사람은 없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특히 양승태 대법원장의 거부로 조사가 정점까지 미치지 못한 점을 지적하는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2015년 8월 상고법원 도입에 비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사찰을 당했던 차성안 판사가 “특조단이 못한다니 내가 국민과 함께 고발을 하겠다”고 한 발언이 뜨거운 호응을 얻고 있으며, “사법부가 자정의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으니 검찰의 힘으로 해결하자“는 얘기가 내부에서 들려온다.

변해야 할 때, 괜한 저항은 무의미하다. 스스로 하느냐, 외부에서 강제로 하느냐 선택만이 남는다. “과거는 잊자, 미래를 생각하자”는 말로 저항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다. 그런 저항이 어떤 비극을 초래해왔는지를 우리는 경험으로 역사로 알고 있다. 지금 한국 사법부는 분명 그 때를 맞이했고, 시작은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체질 개선에서 시작돼야 한다. 그건 “국민께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하고, 저 역시 실망하고 있다”는 김명수 대법원장이 당연히 해야 할 숙제다.

남상욱 사회부 기자 thoth@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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