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범죄는 없다] <19>이천 연쇄 무덤도굴 사건

#30년 경력 형사도 갸우뚱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 추정했지만
의심할 만한 사람 전혀 없고
특별한 증거도 발견되지 않아
흙더미 속 꽁초 찾아 분석 의뢰
#국과수의 예상 밖 답변
“11년전 무덤 도굴 미제 사건
범인 추정 DNA와 일치합니다”
다행히 인기 없는 담배 제품
주변 편의점 등 샅샅이 뒤져
그래픽 강준구 기자

설 당일이던 2018년 2월 16일, 홍상인(76ㆍ가명)씨는 성묘를 하기 위해 친지들과 경기 이천시 장호원읍에 있는 아내 무덤을 찾았다. 떠나간 아내와 나눴던 추억을 하나 둘 떠올리며 차근히 걸음을 옮기던 때, 앞서 가던 조카의 다급한 목소리가 고개 너머에서 들렸다. “작은할머니 산소가 파헤쳐졌어요!” 삽으로 자로 잰 것처럼 네모 반듯하게 파진 무덤 주변에는 홍씨 아내의 유골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었다.

황당하면서도 끔찍한 이 도굴 사건은 그날 당직 근무를 서던 이천경찰서 강력1팀에게 맡겨졌다. 아연실색한 홍씨 가족은 원한관계에 의한 범행이라고 생각했다. 30년 수사 경력의 정선호 강력1팀장도 처음엔 그랬다. 사실 그 외 범행 동기를 떠올리기 어려워서다. 하지만 “아무리 원한관계여도 가족 무덤까지 파헤치는 사람이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범행을 의심할 만한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당일 밤에 찾아간 현장에서도 특별한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 평소에는 인적이 뜸한 산이었기에 목격자도 찾기 어려웠다. 3일 뒤, 홍씨 가족은 유골을 수습해 화장하겠다고 연락을 해왔다. 정 팀장은 그 현장을 지켜봤다. 첫날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증거가 나타나주길, 행여 하는 바람이 있었다.

“저거 담배꽁초 아니야?” 인부가 파헤친 흙더미 속에 있던 흰색 담배꽁초 하나가 정 팀장 눈에 들어왔다. 무덤이 만들어졌던 1974년에 판매됐던 담배는 분명 아니었다. 버려진 지 그리 오래되지 않은 듯 보였다. 경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담배에 묻은 DNA 분석을 맡겼다. 며칠 뒤 답변이 왔다. “남성이고, 국과수에 보관된 DNA와 일치된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한마디가 더 있었다. “2007년 발생했던 무덤도굴 사건에서 채취된 범인 추정 DNA와 일치합니다.”

2007년 3월 1일에도 이천시 장호원읍에 도굴 사건이 있었다. 무덤에는 30년 전에 매장된 최성원(56ㆍ가명)씨 아버지와, 한 달 전 사망해 그의 곁에 묻힌 어머니가 있었다. 사건이 벌어진 두 장소 사이 거리는 3.4㎞에 불과했다. 무덤이 삽으로 네모 반듯하게 파진 것도 동일했다.

다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2007년 범인은 유골을 파헤친 것도 모자라, 두 사람 두개골을 날카로운 도구로 잘라서 가져가기까지 했다. 최씨 어머니의 목 절단 부위에는 인근 마을에서 열린 고희연에서 기념품으로 나눠준 수건이 덮어져 있었다. 국과수에서 가지고 있던 DNA는 바로 이 수건에 묻어 있던 땀에서 채취된 것이다.

최씨 또한 홍씨 가족처럼 누군가 자신에게 원한을 품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확신했다. 경찰은 수건 외에 특별한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고희연에 참석한 사람 모두를 조사해도 의심스런 사람은 나오지 않았다. 경찰은 6개월 만에 수사를 종결했다.

정 팀장이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담배꽁초 하나뿐이었다. 하나 다행인 것은 이 담배가 편의점에서 한 달에 3, 4갑 정도 팔리는, 사람들이 흔히 피우지 않는 제품이었다는 것이었다. 수사팀은 장호원읍을 중심으로 인근 도시 편의점과 가게 100여 군데를 샅샅이 돌아다니며 이 담배를 자주 사는 사람을 찾으며 수사망을 좁혀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 달 넘는 시간이 흘러갔다.

“그것만 피우는 사람 있어요. 그런데 정신이 조금 불편한 것 같던데.” 장호원읍의 한 구멍가게 주인이 경찰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답했다. “키가 180㎝ 가까이 될 정도로 체격은 건장한데. 아침에 가끔 조깅도 하고요.”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정 팀장의 ‘촉’이 발동했다. 신원을 확인해보니 인근에 사는 박모(60)씨였다.

경찰은 박씨 집 인근에서 잠복 수사에 들어갔다. 좀처럼 외출을 하지 않던 박씨는 저녁 무렵이 돼야 집에서 나섰다. 정 팀장이 조용히 뒤따랐다. 길을 걷던 박씨가 입이 심심했는지 담배 한 대를 입에 물었다. 역시나 무덤에서 발견한 담배꽁초와 같은 제품이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한참 담배를 피우던 박씨는 길을 건너며 담배를 무심코 바닥에 버렸다. 정 팀장은 준비한 장갑을 끼고 그 담배꽁초를 수거한 뒤, 국과수에 DNA 분석을 요청했다. 하루 만에 답변이 왔다. “사건 현장서 발견된 DNA와 일치합니다.” 경찰은 4월 2일 오후 2시쯤 점심을 먹고 담배 한 대 피우러 나온 박씨를 체포했다. 별달리 저항은 없었다.

박씨는 범행을 완강히 부인했다. “기억이 안 납니다.” DNA 결과를 들이밀어도 횡설수설만 늘어놓았다. 병원 진료기록을 확인한 결과 그는 정신질환이 있었다. 1984년 충북 청주시에서 길을 가던 할아버지를 시멘트 벽돌로 내리쳐 숨지게 한 뒤 4,000원을 훔치고 시신은 야산에 매장해 징역살이를 하기도 했다. 교도소 수감 중에 사람을 죽여(과실치사) 추가 형을 받기도 했다. 교도소에서 치료를 받았으며, 출소 후에도 한동안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공공근로를 하며 박씨를 홀로 돌보는 80대 노모를 제외한 나머지 가족은 모두 박씨를 멀리했다.

경찰은 박씨 집을 압수수색했다. 정 팀장은 “병을 앓는 사람이라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집이 단정했다”고 기억했다. 집 곳곳에서 메모가 발견됐다. 마치 누군가에게 보고하려 만든 것처럼 바른 글씨로 써져 있었으나, ‘요구 물품, 수표 1,000억, 멕시코시티로 출발하는 항공권’ 등 의미는 대부분은 통하지 않는 글들이었다.

그 중 한 가지 글귀가 정 팀장 눈길을 사로잡았다. ‘태평리 쪽으로 가는 군부대 앞 상승대! 먼저 팠던 묘지!’. ‘3월 30일 밤 3번째로 그 묘지 또 팔 예정입니다!’ 정 팀장은 지난해 12월 4일 이천시 장호원읍에서 무덤도굴이 신고돼 강력2팀에서 담당했던 사건을 불현듯 떠올렸다. 그 순간, 아찔했다. ‘또 팠다고?’

#횡설수설하는 용의자
장호원읍 가게서 결정적 제보
정신질환 60대 체포ㆍ압수수색
“신이 보낸 텔레파시 들으려 범행”
집엔 “묘지 또 팔 예정…” 메모도
수법 구체적 진술 등 구속 송치
파다 만 것만 인정… 1심 재판중
훼손된 무덤. 경기 이천경찰서 제공

당시 사건은 황병준(48ㆍ가명)씨 아버지 무덤이 완전히 파헤쳐져 유골이 훼손됐고, 그 옆에 있던 할머니 무덤은 파다 만 채로 방치돼 있던 것을 인근 주민이 발견한 것이었다. 당시 경찰도 원한관계에 초점을 맞췄다. 윤년이었던 지난해 장호원읍에서만 130구가 이장을 했는데, 그 과정에서 실수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추측도 나왔다. 역시나 범인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박씨가 그 범행만큼은 순순히 인정했다. 그런데 이유가 황당했다. “팠는데 부속이 없어서, 또 가지러 갔어요.” 우주에 있는 신이 텔레파시를 보냈는데, 그것을 들을 수 있는 장치를 만들려고 무덤을 팠다는 얘기였다. 땅이 얼어있는 한겨울에는 무덤이 잘 파지지 않아 날 따뜻해진 3월에 다시 와서 파기로 했다는 자세한 설명도 덧붙였다. 박씨는 “형사님은 이 소리가 안 들리세요?”라며 헛소리를 했다. 정 팀장은 “5시간 내내 조사를 하는 동안 나도 정신이 나가는 줄 알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반면 다른 진술은 명쾌했다. “버스를 타고 무덤이 있는 곳으로 가서, 오후 8시부터 자정까지 팠다”거나 “무덤을 판 삽은 집 앞 텃밭에 뒀다”는 등 구체적이기까지 했다. 경찰은 박씨 진술을 근거로 그의 범행 동선 주변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고, 이를 통해 그가 단독으로 범행한 사실도 확인했다. 무덤을 만들 때 부드러운 흙을 사용하기에 성인 남성 혼자서도 충분히 팔 수 있었다.

경찰은 박씨가 저지른 도굴 사건이 더 있을 거라고 봤다. 장호원 일대에서 벌어졌고, 도굴 방식이 비슷하면서도, 아직 범인이 잡히지 않은 사건들을 찾던 중 지난 1월 18일 무덤도굴 사건을 찾아냈다. 장호원읍에 있던 양성호(57ㆍ가명)씨 아버지 무덤이 네모 반듯이 파헤쳐지고 유골이 훼손되는 등 박씨가 그간 해 온 범행 수법과 다를 게 없었다. 만일 이날 범행까지 박씨가 저지른 것이라면, 그는 11년간 5차례에 걸쳐서 자신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의 무덤을 도굴한 것이다. 경찰은 1월 18일 사건을 포함, 4건의 분묘발굴 및 사체손괴로 4월 10일 구속 송치했다. 다만 2007년 사건은 이미 10년이라는 공소시효가 지나버려 혐의에 포함하지는 않았다.

수사는 마무리됐지만 정 팀장은 2007년 사건의 피해자 최씨가 짊어지고 오던 마음 고생을 덜어주고 싶었다. 유골을 수습해 다른 곳에 화장한 다른 피해자와 달리, 최씨는 사건이 발생한 곳에 임시 봉분을 만들어놨을 뿐이었다. 부모 두개골이 돌아오면 그때 화장을 해 납골당에 모시겠다는 생각. 정 팀장은 “박씨 DNA가 11년 전 사건과 일치한다는 결과를 최씨에게 알려줬을 때 엄청 고마워했다”며 “사체 일부라도 찾을 수 있게 도와달라고 부탁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프로파일러를 동원해 박씨가 최씨 부모의 두개골을 숨긴 장소를 알아내는 데 주력했다. 역시나 박씨는 좀처럼 입을 열지 않았다. 경찰은 “경찰 조사에서 몇 개월 전 일을 선명하게 말했다”며 “11년 전 범행이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밝혔다. 프로파일러는 그의 진술 시 행동을 토대로 집 앞 텃밭에 두개골이 묻혀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이에 정 팀장은 포크레인까지 구해 박씨 텃밭을 샅샅이 팠다. 하지만 최씨 부모의 두개골은 끝내 발견되지 않았다.

최씨의 삶은 크게 망가졌다. 부모 무덤의 도굴이 자신에 대한 원한에 의한 범행이라 믿고 있던 그는 11년간 주변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면서 주변 사람과 가족 대부분을 잃었다. 박씨가 검거된 이후에도 “혹시 누군가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거두지 못했을 정도다. 정 팀장은 “최씨의 아버지 어머니를 찾아줘서 제대로 장사를 치르게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며 “피해자에게 죄스럽고 미안할 따름”이라고 했다. 해당 사건은 현재 수원지법 여주지청에서 1심 재판이 진행 중이다.

강진구 기자 realnin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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