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살균처리 돼 냉동고에 보관 중인 모유를 간호사가 확인하고 있다. 강동경희대병원 제공

2015년 가을 팔삭둥이로 태어난 민경(가명)이는 ‘척수성 근위축증(SAM)’이란 희귀병까지 갖고 있었다.

엄마 젖을 빨 힘조차 없는 민경이는 다행히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에 기증된 모유를 공급받아 영양을 섭취했다. 그렇게 모유를 먹고 자란 민경이는 태어난 지 29개월이 된 현재 키도 몸무게도 정상을 웃도는 우량아가 됐다. 민경이 엄마 이모(35)씨는 “얼굴도 모르지만 모유를 기증해주신 많은 엄마들이 우리 아이를 살렸다”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만혼과 고령 임신의 증가로 임신 37주 전에 태어나는 미숙아가 늘고 있다. 일반 신생아보다 체중이 적게 나가고 건강상태가 좋지 않은 미숙아에게는 모유 공급이 긴요하다. 분유로는 공급되기 힘든 면역물질 등 다양한 성분을 포함하고 있어서다. 하지만 모유가 나오지 않거나 양이 부족해, 혹은 질환 때문에 모유를 먹이지 못하는 엄마들이 많다. 아이가 분유 알레르기가 있거나 입양아여서 모유가 필요한 경우도 있다. 모유은행은 이런 아기들을 위한 곳이다. 기증자가 기증한 모유를 모아 두었다가 이런 아이들에게 최소한의 비용을 받고 모유를 공급한다.

국내 대학병원 중 모유은행을 운영하고 있는 병원은 강동경희대병원이 유일하다. 2006년 6월 국내 최초로 모유은행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13년째다. 자체 수요는 물론 다른 대학병원 신생아 중환자실 등 전국 20여개 병원에 모유를 공급한다. 14일 병원측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1,450명으로부터 모유를 기증받아 1,460명의 아이가 수혜를 받았다. 기증자가 조금씩 늘며 지난해에는 300명을 넘었다. 주위에 젖이 나오지 않아 힘들어한 엄마들을 알고 있는 이들이 주로 기증을 한다고 한다.

소중한 아기들이 먹을 모유이기에 기증과 보관, 공급까지 전 과정이 까다롭게 진행된다. 기증자는 출산 후 1년 이내의 수유 가능한 여성이어야 하며, 모유는 짜낸 지 3개월 이내로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매독(VDRL) B형 간염항원(HBsAg) C형간염(HCV) 검사를 통해 안전성이 확인돼야 한다.

비닐 팩에 밀봉해 냉동상태로 모유은행에 전달된 모유는 성분검사를 통해 미숙아용과 만삭아용으로 분류돼 영하 20도 이하에서 냉동 보관된다. 현재 재고는 173리터 수준. 출고할 모유는 3일간 냉장고에서 천천히 해동한 후 62.5도에서 저온살균하고 고유번호를 부착해 산모 또는 병원에 공급한다.

모유 기증은 선정부터 공급까지 까다로운 공정을 거쳐 안전하게 관리해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든다. 100㎖ 한 병에 3,200원으로 그리 저렴하진 않지만, 그럼에도 원가에도 턱없이 모자라는 금액이라고 한다. 지난해 2월 조무사 인력 1명을 감축, 코디네이터(모유공정진행자)와 모유은행장 2명으로 은행이 운영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병원 측은 국내에서 유일하게 모유은행을 운영하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매년 적잖은 적자를 감내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성훈 강동경희대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모유은행은 중요성이 인식돼 북미나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점차 많은 곳이 설립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모유은행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미숙아 출산이 급증하고 있는 만큼 아기들의 건강권 차원에서 모유은행에 대한 정부지원과 사회적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김치중 의학전문기자 cjkim@hankookilbo.com

※모유 기증이나 구입을 원하는 경우 강동경희대병원 모유은행(02-440-7731)으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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