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지역이 갖는 의미와 지방선거의 과제

6·13 지방선거 후보 등록이 24일 시작된 가운데 전남 여수시 웅천동에서 광고업체 직원들이 유세차량을 제작하고 있다. 공식선거운동은 31일부터 선거 전날인 다음 달 12일까지 할 수 있다. 연합뉴스

지난 24일 후보등록을 시작으로 6ㆍ13 지방선거 경쟁이 본격화되었다. 한국에서의 지역은 주로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어온 것이 사실이다. 지역주의는 영호남 사이의 정치적 갈등을 의미하기도 했고, 수도권과 지방이라는 중심과 주변 사이의 불균형을 의미하기도 했다. 혹은 전근대적 이기주의로 비난의 대상이었다. 지역정체성이 강화된다는 것은 민주주의에 부정적인 신호로까지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지역의 의미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역은 개인에게는 삶의 터전이자 사회화의 공간이며, 정치적으로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기반이며, 개헌의 핵심방향으로 지역분권을 주장하기도 한다. 한국에서 지역의 의미는 무엇이고, 한국의 민주주의와 시민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

그래픽=강준구 기자
지역 정체성의 확산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CSIDㆍ소장 권혁용 고려대 교수)와 한국리서치가 이달 18~22일에 실시한 지역정체성과 지역인식에 대한 조사 결과를 보면 열에 예닐곱 명은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소속감을 느끼고 있다(전국 1,000명 온라인 조사). 광역시도민으로서 소속감을 느낀다는 응답이 70%(매우 20%+약간 50%), 시군구민에 대해서는 65%(매우 17%+약간 48%), 읍면동에 대해 64%(매우 18%+약간 46%)로 나타났다. 한국 국민으로서의 소속감 87%(매우 41%+약간 46%)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확산 속도는 무섭다. 동아시아연구원•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한국리서치의 2005~2015년 정체성 인식조사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광역시도에 대해 가깝게 느낀다는 응답이 2005년 38%에서 2010년 60%, 2015년 68%로 10년 사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대한민국에 대한 일체감이 8%포인트(77%→85%) 증가하는데 그친 것과 대비된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살고 싶은 동네, 살고 싶지 않은 동네

사람들이 가장 살아보고 싶은 동네와 가장 살고 싶지 않은 동네를 조사한 결과를 보면 지역이 안고 있는 문제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살고 싶은 지역으로는 전체 응답자의 29%가 서울을 꼽았고, 16%가 경기인천을 꼽아 45%가량이 수도권을 선호했다. 공동 2위는 16%를 기록한 제주도였다. 부산경남을 꼽은 응답이 12%, 호남과 충청지역이 각각 6%였고, 대구경북을 꼽은 응답이 4%로 가장 낮았다.

반대로 가장 살고 싶지 않은 지역을 꼽으라는 질문에서도 1위는 서울(25%)이었다. 광주전라(24%), 대구경북(18%), 부산경남(10%) 순으로 나타났다. 살고 싶은 희망지역과 현재 거주지역이 같다고 응답한 비율을 권역 별로 보면 서울(67%)과 강원/제주(67%), 부산경남(63%), 충청(55%)에서 과반을 넘었다. 호남지역(43%), 경기인천(38%), 대구경북(33%)에서는 삶의 터전을 옮기고 싶어하는 욕구가 더 크다. 서울의 인구포화와 주거비 부담으로 서울 및 지방의 유출인구를 흡수하며 인구가 급증한 경기인천은 서울로 진입하고 싶은 기대가 엿보인다. 반면 지역주의 갈등의 중심에 섰던 호남과 대구경북의 경우, 상대적으로 큰 정치적 발언권을 누렸지만, 지역 내 총생산(GRDP)은 최하위권에 있는 현실의 반영으로 보인다.

그래픽=강준구 기자
지역 정체성이 갖는 긍정의 힘

지역정체성이 어두운 측면만 갖는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지역이라는 삶의 터전에 대한 일체감은 개인 차원에서 행복감 및 사회에 대한 만족도를 높여주는 요인이 된다. 10점 만점으로 측정한 행복감 평가와 사회에 대한 만족도 조사에서 자신이 살고 있는 광역시도에 대한 소속감이 매우 강한 집단에서는 행복감 평균 6.6점, 사회 만족도가 5.0점이지만, 소속감이 전혀 없다고 답한 집단에서는 각각 4.4점, 2.9점에 그치고 있다. 또한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소속감이 강할수록 높은 제도신뢰를 보여준다. 소속감이 강한 집단에서 중앙정부, 광역단체, 기초단체에 대한 신뢰가 높고(각각 5.7, 4.7, 4.3점), 소속감이 전혀 없다고 답한 집단에서 이들 제도에 대한 신뢰도 평가가 낮다(각각 4.2, 2.1, 2.3점). 신뢰자본은 갈등관리의 윤활유이자, 민주적 정통성을 강화시킨다. 지역일체감을 통한 풀뿌리 민주주의의 위력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가장 낮은 지방정부 신뢰

풀뿌리 지역정체성의 강화에 지방자치제도는 얼마나 기여한 것일까. 시민들의 반응은 매우 냉담하다.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57%가 동의하지 않았고, 행정이 투명해지고 잘하는 것 같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63%,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한 애착이 증가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67%가 반대했다. 실제로 지방정부에 대한 불신은 중앙정부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 중앙정부에 대해 불신한다는 응답이 23%에 그친 반면, 광역자치단체를 불신한다는 응답은 45%로 급증하고, 기초자치단체에 대해서는 53%까지 올라간다.

지방선거, 확산된 위기감 해소에 주력해야

이러한 불신의 이면에는 지역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작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신이 사는 지역에 대한 분야별 만족도를 보면, 지역 내에서의 소득 형평성에 대해 만족한다는 의견(매우+약간)이 28%, 지역 경기와 일자리 문제에 32%, 다른 지역과의 균형 발전에 대해 34%, 지역의 교육/문화 환경에 대해서는 40% 수준에 그쳤다. 상대적으로 수도권과 충청권 거주자들이 지역 내 소득형평성, 지역경제 상황에 대해 우위를 보였고, 특히 타 지역과 비교한 균형발전 수준이나 교육/문화 환경에 대해서는 서울 인근 지역이 뚜렷하게 앞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인 수치에서 보면 수도권을 포함해 전 지역에서 불만의 목소리가 다수다. 지역경제에 대한 위기감이 심상치 않지만, 여야 사이에는 특검이니 단일화니 정계개편이니 하는 중앙정치 차원의 주판알 소리만 들리고 있다. 지방의 역습이 예고되는 대목이다.

정한울 한국리서치 여론조사 전문위원

이양호 고려대 연구교수

이정진 국회 입법조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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