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알림

“내게 좋은 책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이더라고요”

입력
2018.05.25 04:40
22면
0 0

#최근엔 문정희ㆍ박철 시집과

北 묘사한 ‘장마당과 선군정치’

위로 주는 ‘상실 수업’ 등 읽어

동네서점 들르는 문체부 장관

가능하도록 노력해 볼게요

올해를 ‘책의 해’로 정한 건 시인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김민정 시인이 도 장관을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나 책 이야기를 들어 봤다. ‘소년 도종환’은 종례 끝나기가 무섭게, 도서관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앞에 서 있던 아이였다고 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올해를 ‘책의 해’로 정한 건 시인인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다. 김민정 시인이 도 장관을 서울 소격동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만나 책 이야기를 들어 봤다. ‘소년 도종환’은 종례 끝나기가 무섭게, 도서관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앞에 서 있던 아이였다고 했다. 신상순 선임기자

시인이었다가 국회의원이었다가 장관으로 사는 삶에 대해 훗날 그는 어떤 정리를 해 보일까. 방법은 분명 글줄일 터, 나로서는 엄두도 못 낼 이 나랏일의 궤적을 그러나 숱한 행보로 벌써부터 묵묵히 써나가고 있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만났다. 시인 선배로 알고 지낼 때보다 더 자주 보고 산다 싶은 건 각종 언론 매체 속에서 허연 이로 환히 웃고 있는 그를 심심치 않게 봐서이렷다. 만나자마자 도종환에게 책이란, 하고 뜬금없이 물음을 던졌다. 뭐긴 뭐여 물이지, 하며 그는 제 앞에 놓인 컵에 담긴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그래 책은 물이지. 없으면 못 살지. 빤한 답이었는데 더는 이겨먹을 반문거리를 나는 못 찾았다.

김민정(김)= “오랜만에 뵙습니다. 장관님이라고 해야 하죠? 와, 그런데 호칭이 입에 잘 안 붙네요. 저는 참 그런 사회적 ‘부름’에 낯섦이 커서요. 어떻게 요즘 시는 쓰고 계신지요.”

도종환(도)= “틈틈 씁니다. 계속 쓰지 그걸 어떻게 안 쓰겠어요. 좌우지간 혼자 있는 조용한 시간이 주어지면 무조건 씁니다, 시를. 숲에서 쓸 때와 달리 지금은 거리로 나왔으니까 아무래도 그 주제적인 측면에서 내용도 크게 바뀌고는 했지요. 시에 미세먼지가 많이 묻어 있더라고요. 시는 역시 포즈가 아니라 삶에서 우러나는 게 맞구나, 느낍니다.”

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취임하신 지 11개월이 됐네요.”

도= “참 많은 일들이 있었지요. 블랙리스트로 초토화된 문체부에 블랙리스트로 문제 제기한 장관으로 들어온 거니까 처음에는 거부감이 상당했어요. 현재 블랙리스트 건은 근 10개월간의 활동을 끝내고 백서만 정리하면 되는 단계에 와 있어요. 그리고 2월에 평창 동계올림픽. 모든 언론이 안팎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올림픽이다 그랬는데 북한까지 참여해서 결국은 남북관계가 평화적인 관계로까지 발전되는 좋은 계기가 되었잖아요. 관광은 남북문제가 풀리면서 자연스레 ‘사드’ 문제가 해결되니까 작년 이맘때에 비해 중국 개별 관광객이 13%쯤 늘었어요. 단체 관광객도 점차 늘고 있는 추세입니다.”

'시인 선후배'인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김민정 시인이 책 이야기를 하러 오랜만에 만났다. 신상순 선임기자
'시인 선후배'인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김민정 시인이 책 이야기를 하러 오랜만에 만났다. 신상순 선임기자

김= “남북 정상회담 장면을 보면서 저는 남과 북의 말이 한데 합쳐져 있는 사전 생각이 간절했어요. 합치면 1억 가까운 인구가 하나의 언어를 쓴다는 게 실로 엄청난 힘이잖아요.”

도= “그렇잖아도 내가 이번에 북한의 문화상에게 가장 먼저 제안한 문화교류 사업이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이었어요. 다시 말해 사전 작업을 시작하자는 게 아니라 사전 작업을 다시 재개하자는 제안이었지요. 남북이 만나 남북의 언어를 수용하는 사전부터 함께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생각했어요. 그간 스물다섯 차례 진행이 되다가 중단이 된 참이었거든요.”

김= “바쁜 가운데 책 읽을 시간을 어찌 쪼개시나 몰라요.”

문= “최근에 문정희 시집 ‘작가의 사랑’과 박철 시집 ‘없는 영원에도 끝은 있으니’가 나와서 읽었고요, 염무웅 선생님 대담집 ‘문학과의 동행’을 봤어요. 바쁘지만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하려고 애를 많이 쓰는 편입니다. 얼마 전 읽은 (시집) ‘시로 납치하다’에 이런 구절이 나오더군요. ‘창작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어떤 상황에서도 한다. 예술이든 일이든 영감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무조건, 죽어라고 하는 것이다.’ 어떠한 절박한 상황에서도 창작을 하는 사람은 시간이 없다고 핑계를 대지 않고 치열하게 씁니다. 반면에 읽는 사람은 언제나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요.”

김= “‘함께 읽는 2018 책의 해’라 정하고 공동조직위원장을 맡기도 하셨는데요.”

도= “통계를 보니까 10명 중에 4명은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안 읽는다는 거예요. 스마트폰 사용 시간이 하루 평균 2시간 20분 정도 되는데 그 가운데 책을 보는 시간이 22분에서 27분쯤 된대요. 모르긴 몰라도 우리나라 근현대사에서 지금처럼 책 안 읽던 시기도 없었을 거예요. 사람들은 당신이 시인이니까 책부터 앞세우는 거 아냐, 그러기도 한다지만 책은 정말 국가가 소홀히 하면 안 되는 중대한 현실이자 미래이거든요. 인문학적 성찰 없이 4차산업혁명 시대도 없는 거잖아요. 기술이라 해도 앉은자리에서 생으로 머리에서 그냥 나오는 건 아니잖아요. 우리 학생들이 책 안 읽고 책 못 읽는 사회 속에 방치되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장차 우리 사회의 어른들로 자라날 아이들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책을 안 읽었다고 생각해보세요. 이 불확실함에 대한 불안감은 정말 큰 거지요.”

김= “소년 도종환은 독서광 도종환이었을까요.”

도= “중학교 때 종례 끝나기가 무섭게, 도서관 문이 열리기도 전에 그 앞에 서 있던 게 나였어요. 독서 카드에 가장 많은 책을 빌려 읽은 학생으로 전교 1등 하고 싶은 게 나였어요. 하루는 잡지 ‘학원’을 보는데 소설 속에서 ‘사랑이 무성한 수풀’이라는 구절이 나와요. 와 어떻게 저런 표현을 하지? 저 숲을 아무리 바라봐도 나는 그런 상상이 안 되는데 어떻게 저렇게 쓸까? 호기심이 자극을 크게 받더라고요.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유별나다는 소리는 안 들었어요. 그때는 친구들이 너도 나도 다 책을 읽었으니까요.”

김= “책을 많이들 안 읽는다지만 이런저런 독서 모임도 많이 늘어나는 추세 같아요. 혹시 국회의원들도 독서 모임 같은 게 있나요?”

도= “그럼요. 지금 함께하는 모임 중에 시 읽는 의원 모임도 있어요. 원래는 한 서른 명 되는데 참석하는 인원은 열댓 명 되어요. 정치인의 일이란 게 워낙 심성을 거칠게 하거나 싸울 상황도 많이 야기하니까 우리 한두 달에 시집 한 권이라도 읽자, 그러면 본래의 심성으로 돌아가는 시간을 몇 시간은 갖지 않겠나, 밖에서 볼 때 우리들이 요괴 같기도 하겠지만(웃음) 바탕은 우리도 원래 그렇지 않은 사람임을 서로 확인하게도 되는 자리랄까요.”

김= “요 근래 흥미롭게 읽으신 책이 있다면요.”

도= “헤이즐 스미스 교수가 쓴 ‘장마당과 선군정치’라는 책이 있어요. 말하자면 북한의 ‘시장’과 ‘군사 통치’를 영국인 교수가 북한에 살면서 관찰한 기록인데 ‘‘미지의 나라 북한’이라는 신화에 도전하다’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있는 그대로의 북한을 들여다보게 하는 가장 객관적인 자료가 아닐까 해요. 앞서 말한 ‘시로 납치하다’는 류시화 시인이 편한 책인데요, 세계적 시인들의 시와 그들의 시를 짤막하게 해설하며 감상한 건데 외우고 싶은 구절이 줄줄이라 연필로 많이 옮기기도 했어요.”

김= “책 보다가 손으로 옮겨 적기도 하고 그러시는구나.”

도= “난 책을 읽다 좋으면 무조건 연필로 공책에 써놔요. 공책이요? 엄청 많죠. 이미 오래 전부터 습관화된 일이에요. 연설할 기회가 잦은 사람인데 그때마다 공책에 써둔 구절들 떠올려서 인용하면 사람들이 특별히 더 기억하더라고요. 내게 좋은 책은 역시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은 책, 좋은 책은 그렇게 사람들이 알아보는 거더라고요. 참, 한 권 더요.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의 ‘상실 수업’. 호스피스 운동을 세계 최초로 한 작가인데 우리가 살면서 가장 크게 부닥뜨리는 어려움이 상실이잖아요. 상실은 상실로 경험할 수밖에 없잖아요. 살면서 상실을 안 겪는 사람은 없잖아요. 상실로 인한 인간의 상처랄까 그 어려움에 큰 위로가 되는 책 같아요.”

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동네방네 서점에 자주 좀 들러주시면 안 될까요?”

도= “나도 서점에 자주 가고 싶죠. 그런데 어느 특정 서점에 방문했다는 말씀들을 할까 봐서 쉽지가 않더라고요.”

김= “이 서점 저 서점 예고 없이 되도록 많은 곳에 들르시면 되잖아요. 서점에서 책을 읽고 책을 만지고 책을 사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시라면 뭐랄까, 책에 대한 어떤 진심이 진실로 전해질 것도 같아서요.”

도= “가능하면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그래요, 여러 번 할게요. 약속합니다!”

김민정 시인∙난다출판사 대표

※ 한국일보는 문화체육관광부 지정 ‘2018 책의 해’를 맞아 ‘책의 해’ 조직위원회와 함께 ‘무슨 책 읽어?’ 시리즈를 연재합니다. 김민정 시인이 각계 명사들을 만나 책에 대해 나눈 대화를 매주 금요일 소개합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