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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북한이 미국 뜻대로 움직일까?

입력
2018.05.27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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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위기에 직면한 듯 보였다. 대화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 거래조건 제시에 반발해 북한이 북미 정상회담을 재고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대통령의 새 측근으로 기용된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비핵화 해법에도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북한이 한 때 ‘인간쓰레기’라고 부르며 적대시할 정도로 오랜 대북 강경파인 볼튼은 최근 북한과의 협상은 ‘리비아모델’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볼튼에게 리비아모델은 대가 없이 우선 북한의 핵 프로그램부터 완벽하게 폐기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하지만 볼튼의 이런 주장과 달리, 당시 리비아의 무아마르 가다피 정권은 2003년 핵무기 프로그램을 포기하기까지 유럽, 미국과 수년 간 ‘조용한 협상’을 진행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체제보장 약속과 함께 다양한 경제 지원을 얻어냈다. 리비아모델에 관한 볼튼의 혼선보다 더 큰 문제는 그의 언급 자체가 2011년 리비아에 대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의 공습과 반군에 의한 가다피 축출을 연상시킨다는 점이다. 북한은 반군에게 살해된 가다피의 참혹한 시신이 리비아 시르테 시가에서 질질 끌려 다녔던 모습을 잊지 못할 것이다.

리비아모델을 거론한 볼튼의 의도가 어디에 있든, 트럼프 대통령은 재빨리 리비아모델 파문을 진화하고 나섰다. “우리가 북한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 건 리비아모델이 전부가 아니다”라고 밝힌 것이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정상회담에서 여전히 리비아모델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과거 대북제재 완화에 나섰던 전임자들을 겨냥해 “사기를 쳤다”고 매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영리하게도 일단 주한미군 감축 가능성을 일축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핵 보유국이라는 북한의 근본적 정체성을 어떻게 포기하도록 할 것인지는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지금까지 나타난 트럼프 행정부의 협상전술 중 하나는 북한 지도층에 대해 유례가 없을 정도로 우호적 태도와 따뜻한 화법을 구사한다는 것이다. 나는 2005년에 부시 행정부를 대표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에 참여했다. 당시 나는 회담에 참석한 북한측 인사들과 함께 하는 식사나 어떤 사교모임에도 참여하지 말라는 내용의 미국 측 행동지침을 작성했다. 심지어 북한 대표들이 참석한 회합에서는 건배도 하지 말라는 내용도 있었다. 북한 측에 대한 이 같은 행동지침은 중국 대표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그러나 이런 식의 쩨쩨한 대응은 6자 회담 후반으로 가면서 점차 사라졌다. 사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지금까지 북한 측 상대를 만나면서 과거처럼 쩨쩨하게 대응하지 않은 것은 바람직하고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정상회담에서 한국전쟁(1950~53년) 종식을 위한 평화협정 체결과 북한체제 보장 방안 등을 제시할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이런 청사진은 새로운 게 아니다. 2005년 9월 6자 회담을 위한 공동성명에는 구체적으로 “(러시아와 일본을 제외한) 직접 당사국은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에 관해 협상한다”는 대목이 들어가 있다. 또 북한과 미국은 “상호 주권을 존중하고, 평화 공존하며, 관계 정상화를 위한 조치에 착수한다”는 내용도 있었다.

당시 중국은 미국과의 관계개선 경험을 거론하며 미국과 북한이 서로 상대국 수도에 외교공관을 설치할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6자 회담이 진척되자 부시 행정부 또한 나에게 북한에 그런 제안을 하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북한은 즉각 “미안하지만 거절하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평화협정 추진에 대해서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당시 우리 측 대표 한 사람은 “북한은 안 한다고 하기 전까지만 협상에 관심을 보인다”고 말했다.

물론 우리는 당시 북한의 진짜 관심사가 뭐였는지 알고 있다. 그 때 대북 제재의 결과로 북한은 난방에 쓸 중유가 절실히 필요했다. 미국을 포함한 다른 6자 회담 참여국들은 영변 원자로 폐기를 비롯해 북한이 핵 폐기를 위한 단계적 조치를 실행하는 대가로 북한에 연료를 공급하는데 동의했다. 당시 ‘상응조치(action for action)’라는 외교적 용어로 표현된 방식이다.

결론적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6자 회담은 북핵 시설 검증 이슈가 걸림돌이 돼 끝내 실패했다. 북한 측은 사전에 스스로 지정한 핵시설 외에 국제 사찰단의 추가 시설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과 참모들은 북한이 핵시설과 폐기에 대한 국제 사찰 문제와 관련해 10년 전과 비교해 다른 시각을 갖고 있는지 여부를 먼저 판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이행을 확실히 담보할 만한 합의를 도출할 수 있다면 최고의 협상을 한 것이 될 것이다. 하지만 의문이 남는다. 북한은 과연 이번 북미정상회담에 진지한 입장일까?

크리스토퍼 힐 미국 덴버대 조지프 코벨 국제대학장ㆍ전 국무부 차관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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