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르완다 인종 학살 그 후

# 후투족ㆍ투치족 갈등 이용한
식민 지배세력의 ‘분리 통치’
정치 지도자들이 재생산하기도
# 제노사이드 반성... 통합 나서
전통적 가치로 평화ㆍ화해 추진
남북한 통일 과정 반면교사 될 것
1994년 7월 한 소녀가 르완다 대학살 희생자들을 매장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르완다는 ‘1,000개의 언덕’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다. 유인원인 마운틴고릴라가 유일하게 살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1994년 이후 ‘제노사이드(인종학살)와 폭력’의 땅으로 더 잘 알려졌다. 1994년 후투족과 투치족의 분쟁으로 약 3개월간 전체 인구 700만명 중 80만 명이 살해됐고, 약 200만 명이 이웃국가로 피난하는 일이 발생했다. 필자는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의 갈등에 의해 발생했다는 점에서 르완다의 인종학살을 아프리카 최초의 제노사이드라고 주장하고 싶다.

세계사를 살펴보면 남북 또는 동서간, 또는 이주민과 원주민 사이의 대립으로 내전이나 분쟁을 겪은 국가들이 선진국으로 발전한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선진국이 내전이나 분쟁을 겪고 현재의 발전을 이룩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르완다도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내부의 갈등이 표출된 것일까. 한반도의 10분의1의 면적밖에 안 되며 인구도 700만 명으로 아프리카 대륙 국가들 중 가장 소국인 르완다에서 제노사이드가 발생한 원인은 무엇일까.

우리가 관심을 갖고 보아야 할 것은 르완다는 식민 지배세력이 민족 집단의 정체성을 고착화시켰고, 독립 이후 정치지도자들이 민족 정체성을 정치적으로 악용하여 제노사이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2000년 5월 국가통합과화해위원회(National Unity and Reconciliation CommissionㆍNURC)는 식민지 시대부터 1994년 제노사이드 사이의 시기에 대해 평가하면서, 백인들이 민족 정체성을 이용하여 ‘분리하여 통치’함으로써 르완다는 분열되고 고통을 받았으며 이러한 갈등이 1994년 제노사이드로 폭발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분명히 르완다의 제노사이드는 후투(Hutuㆍ84%), 투치(Tutsㆍ15%), 트와(Twaㆍ1%)족 등 민족 정체성의 극단적인 양극화를 보여준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르완다 내전은 1959년에서 1994년까지 벌어진 후투족과 투치족의 갈등과 대립이 꾸준히 축적돼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소수인 투치족이 다수인 후투족을 지배하긴 했어도, 양 민족 집단의 관계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적대적이지 않았고 이웃하여 함께 살고 있었다. 벨기에는 1916년 식민지배를 시작하면서, 투치족은 북쪽인 에티오피아에서 남하에 내려온 함족으로 후투족과 트와족을 지배하는 정복민이 되었다는 ‘함 이론’을 주장했다. 이에 따라 키가 크고 피부색이 진하지 않으며 유목을 하는 소수의 우등한 투치족이, 키가 작고 피부색이 진하며 농업을 주업으로 하는 원주민인 다수의 열등한 후투족과 트와족을 지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주장을 폈다. 벨기에는 이러한 민족 정체성과 지배 및 피지배논리를 식민 지배정책에 이용하기 위해, 민족 집단의 이름을 명기한 신분증을 발행했고 투치족을 우대해 식민통치를 했다.

종족명이 표기 된 1994년 당시 르완다의 신분증. 제노사이드 아카이브 르완다 캡처

제노사이드 이후 지금의 새로운 르완다는 ‘어떻게 르완다인이 서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면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공통의 정체성을 만들어갈 수 있을까’를 최대의 과제로 삼고 있다. 통일된 국가와 민족 정체성 형성은 과거의 분쟁과 내전을 되풀이할 수 있는 씨앗을 미리 제거할 뿐 아니라, 향후 국가발전을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이기 때문이다.

르완다는 제노사이드 이후 국가통합을 위해 전통적인 가차차(Gacacaㆍ ‘풀밭’을 의미) 제도를 도입해 평화와 화해를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2002년부터 피해자와 가해자, 목격자를 한자리에 모아 지역사회가 지명한 판사가 제노사이드와 관련해 발생한 사건에 대한 진실을 규명하고, 가해자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고 있다. 가차차 제도는 진실, 평화, 정의, 회복, 용서, 화해를 증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남아공의 진실과화해위원회(TRC)와 유사하다.

물론 하나의 국가의식 형성과 국가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르완다 정부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없는 건 아니다. 폴 카가메 대통령과 투치족의 독재, 비민주적 정책에 대한 비판 말이다. 그러나 르완다는 최근 연 6~8%의 경제성장을 보여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르완다는 현재 에티오피아, 가나, 케냐, 모잠비크, 나이지리아, 남아공, 탄자니아 등과 함께 아프리카의 빠른 경제성장을 달성하고 있는 ‘아프리카의 사자’로 또는 ‘아프리카의 싱가포르’라고 불리고 있다.

폴 카가메 르완다 대통령. AP 연합뉴스

르완다에서 ‘민족’, ‘종족’이라는 용어는 언론을 포함한 공식적인 논의에서 금지되고 있다. 2013년 제한적 의사소통(Interception of communications) 법은 공공의 안전을 해칠 수 있는 의사소통에 대해 정부 당국이 도청 및 감청을 하도록 규정했다. 2014년 제노사이드 20주년과 관련해 독립 언론인들이 정부에 반대하거나 폭력을 조장했다는 이유로 압력을 받거나 체포되기도 했다. 부분적으로 르완다 정부가 민족 정체성에 대한 합법적 억압 또는 독재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카가메 대통령은 현재 18년째 집권하고 있다. 2000년 집권 후 2003년 새 헌법에 따라 대통령에 당선됐고, 2013년 재선에 성공했으며 지난해 선거에서 또 한 번 압승했다. 2015년 르완다 하원이 카가메 대통령의 3선을 가능하게 하도록 헌법개정안을 승인함에 따라 20년에 가까운 집권을 하게 된 것이다.

헌법은 복수 정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있으나 국가통합이라는 측면에서 정치적 다원성을 억압하고 있으며 현실적으로 야당의 활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르완다의 상황은 어떤 의미에서 ‘독재’라고 할 수 있으며, 분열된 민족 정체성을 통합하고 카가메 효과를 넘어 진정한 민주주의 국가로 거듭나기까지는 수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르완다 내전은 이웃으로 함께 살고 있던 민족 집단 간에 제노사이드가 발생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최근 남북한 화해무드는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한반도가 통일된 이후 남북간 화해와 협력이 순조롭게 진행되지 못할 경우 르완다와 같은 제노사이드가 발생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통일 이후 역사를 정리하고 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마련하고 새로운 국가 및 국민 정체성을 형성하는 일은 통합을 위한 주요 과제가 되어야 할 것이며 르완다의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을 필요가 있다. 김광수 한국외대 아프리카연구소 HK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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