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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정세균 “식물국회를 정상국회로 못 만들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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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담] 정세균 “식물국회를 정상국회로 못 만들어 아쉽다”

입력
2018.05.24 20:00
2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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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동물국회 돼선 안 되지만

계류 법안 1만건이나 쌓여 있어

선진화법 개정해 정상화해야

문 대통령, 북핵 관리하느라

의회와 소통 못한 부분 있어

‘협치 강화’ 말씀 드리고 싶다

최저임금 인상 방향은 옳지만

산입범위 등 교통정리가 미흡

경제정책은 실행이 유능해야

/그림 1[저작권 한국일보] 정세균(가운데) 국회의장이 21일 국회 의장실에서 이유식(오른쪽) 논설고문, 김정곤 논설위원과 우리 정치 현실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정 의장은 기능부전에 빠진 식물국회를 비판하며 “영국처럼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국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오대근기자 inliner@hankookilbo.com /2018-05-22(한국일보)

정세균 국회의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의회 민주주의자다. 대통령 탄핵이라는 국가적 위기상황을 맞아 대화와 타협으로 국회를 이끌었고, 여야의 극한 대치 국면에서도 웃음기를 잃지 않고 양측을 협상장으로 인도했다. 하지만 여야가 국회를 방기한 채 파행을 거듭한 4월에는 세비 반납 등 솔선수범의 자세로 정치권을 경계하는 단호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2016년 6월 의장 임기를 시작할 때 국민에게 힘이 되는 국회, 헌법정신을 구현하는 국회, 미래를 준비하는 국회 등 세 가지 목표를 세웠다는 정 의장은 2년 동안의 성과에 대체로 만족하는 표정이다. 그런 정 의장도 청와대가 국회를 대하는 태도에는 아쉬움을 피력했다. 협치와 소통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5월말로 2년 임기를 마치는 정 의장을 21일 국회의장실에서 만나 한국 정치의 현실을 논했다.

_문재인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할 때 국회와 아무런 상의를 하지 않았다. 대통령이 협치와 소통을 말하지만 실제로는 아쉬움이 적지 않다. 청와대가 보다 의회친화적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나.

“대체로 일리 있는 이야기다. 물론 지난 1년 동안 대통령이 북핵 문제를 포함해 한반도 위기 상황을 관리하느라 다른 부분을 제대로 챙기지 못한 측면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치가 조금 더 잘 돼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리고 싶다.”

_남북 정상회담 직후 판문점 만찬장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초대를 받지 못한 건가.

“정상회담 이후 지역구인 종로에 갔더니 ‘국회의장이 왜 그런 중요한 장소에 가지 않았느냐’고 따지는 유권자가 많았다. 그래서 ‘북한도 국회의장이 안 왔다. 카운터파트가 없어서 못 간 것’이라고 농담으로 넘겼다.”(당시 북한 수행단에는 우리의 국회의장 격인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포함돼 있었다.)

_과거 야당 시절 보수당을 청와대 2중대라 비난하던 민주당인데, 여당이 된 뒤로 크게 바뀐 게 없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웃으면서) 의장 입장에서는 여당한테도 불만이 많고 야당한테도 불만이 있다.”

_이명박ㆍ박근혜 정부의 잇단 실패로 보수 진영이 패닉에 빠졌다. 보수 야당도 궤멸 수준이다. 보수 진영의 역할이 지나치게 축소되면 정상적 국회 운영에 도리어 장애가 되지 않나.

“민심이나 국민여론과 관련 없이 여소야대라는 국회 상황은 변함이 없다. 의석수로 표결하는 국회에서는 보수의 역할이 전혀 위축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회와 국민이 유리되는 경우가 생긴다. 가령 전 세계가 판문점선언을 지지하는데도 우리 국회는 지지 결의안 하나 통과시키지 못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국회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나 신뢰를 좀먹고 있다.”

_일각에서는 국민 의사와 의석 분포의 불균형을 타개하기 위해 국회 해산도 주장하고 있다.

“헌법을 파괴할 순 없다. 어쨌든 국회의원은 4년에 한번씩 선출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다. 국민소환제라는 예외 규정이 있지만 일단은 맡기고 다음 총선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게 현실 제도의 한계다.”

_지방선거가 의석 분포의 불균형을 보완하는 역할을 할 수 있을까.

“심리적으로는 기능하겠지만 실질적 역할은 없다. 정계개편이 없다면 여소야대 상황은 다음 총선까지 갈 수밖에 없다.”

‘미스터 스마일’로 불릴 만큼 긍정적인 정 의장에게도 극한 대치의 정치 현실은 버거운 과제다. ‘동물국회’를 지양하기 위해 도입한 국회선진화법이 국회를 기능부전에 빠뜨렸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정 의장은 “국회선진화법을 개정해 식물국회를 정상화시키는 게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했다.

_3김 시대만 하더라도 지금처럼 막가파식으로 대치하지 않았다. 밑에서 싸우더라도 위에서 조정하는 기능이 작동했다. 지금은 여야 지도부가 거친 싸움을 주도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정치인들이 언론을 너무 의식하는 환경이 조성된 탓도 크다. 언론에 많이 노출돼서 널리 알려진 사람을 지지하는 경향을 의식하다 보니 정치인들이 언론에 민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것들에 소홀하고 점잖은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환경이다.”

_정치환경 변화를 감안하더라도 홍준표 대표나 추미애 대표의 막말 경쟁은 심하지 않나.

“협상 상대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극도로 자제해야 한다. 다음에 만나 얼굴 보고 또 협상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직설적인 공격을 자제하는 게 기본이다. 특히 직접 교섭에 나서는 대표들은 서로 존중하고 자제하는 옛 선배들의 지혜를 배워야 한다.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세상을 살아가는 기본이다.”

_여야를 중재하고 국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해야 하는 국회의장으로서의 가장 큰 애로사항이 있다면.

“사실 의장에게 주어진 권한이 거의 없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중립적 입장에서 의회를 운영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그렇다고 의장이 수동적으로 주어진 일만 해서도 안 된다. 국회 기능을 정상화하기 위해 매 임시회가 끝나면 상임위 별로 입법처리 성적을 발표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아직 국회에는 1만 건에 가까운 법안이 계류돼 있다. 그게 현실이다.”

_의장의 권한을 강화시켜 국회 운영을 원활하게 할 방법은 없나.

“과거 직권상정으로 날치기를 자주 했던 것에 대한 반성으로 국회선진화법이 만들어졌다. 그런데 선진화법 때문에 동물국회가 식물국회가 돼 버렸다. 동물국회를 다시 소환할 이유는 없지만 식물국회도 정상은 아니다. 다수의 폭거나 일방통행은 견제해야 하지만 국회가 제 할 일을 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곤란하지 않나. 이런 문제 의식에 따라 여야 합의로 선진화법을 개정해서 21대 국회부터 시행하자며 운영위원회에 소위까지 만들었지만 소위가 제대로 가동되지 못했다. 식물국회를 정상국회로 만드는 소임을 다 하지 못한 책임을 크게 느낀다.”

_국회 주도로 개헌안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히 노력을 기울였지만 결국 불발되고 말았다. 그러면서 대통령이 개헌안을 발의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대통령이 발의한 만큼 철회하는 게 마땅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건 전적으로 대통령의 권한에 관련된 사안이다. 국회가 경우에 따라 의견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대통령 의견을 존중해야 한다.”

_개헌의 불씨를 되살릴 수 있다고 보나.

“지금까지 투자한 노력을 감안할 때 이대로 엎어질 수는 없다. 1년 반 전 개헌 특위를 진행할 때만 해도 개헌 찬성 여론이 반대보다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찬성이 월등하게 높아졌다. 그러면 정치권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게 정상이다. 개헌이 이뤄질 때까지 계속 노력해야 한다.”

정 의장도 일반의 평가와 다르지 않게 문재인 정부의 안보 정책에는 후한 점수를 주고, 경제 정책 부진에 대해서는 우려를 나타냈다. 인터뷰 당일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반대하는 민주노총 시위대가 국회 경내까지 진출해 기습시위를 벌이는 일까지 벌어지자 정 의장은 “최저임금 정책도 완결성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정권이 바뀐 만큼 정책도 바뀌는 게 당연하지만 유능한 실행으로 부작용이 없어야 한다”고 경계와 당부도 잊지 않았다.

_다음 달 북미 정상회담에 한반도 평화의 운명이 달린 형국이다. 연초부터 문재인 정부의 한반도 운전자론이 힘을 받고 있는데 마지막까지 잘 갈 수 있을까.

“잘 풀려야 한다. 남북이나 미국 모두 잘 풀리지 않으면 안되는 삼각 트라이앵글에 갇혔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길을 찾아낼 것으로 믿는다.”

_한반도 평화 여정에 국회의 역할이 너무 미약하다는 지적도 없지 않다.

“국회는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하면 된다. 트럼프 대통령이 국회에 와서 연설하시고 박수를 많이 받아서 기분도 좋아진 것 아니냐. 미국이나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관련 당사국에 우리 의원단을 파견해서 그쪽 의회 지도자들에게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설명하는 노력을 국회도 하고 있다. 외국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한반도 문제에 대해 더 관심을 가지고 해결에 힘쓰도록 의원 외교의 폭을 넓히는 데 여야가 공동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_문재인 정부 1년의 경제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나.

“정권이 바뀌었으면 정책도 바뀌는 게 정상이다. 정권이 바뀌어도 정책을 답습한다면 국민들이 정권을 교체할 이유가 없지 않나. 다만 부작용이 없도록 정권 특색에 맞는 정책들을 유능하게 시행해야 한다. 경제와 복지 정책 다 잘했으면 좋겠지만 그런 면에서 부족한 게 있었다면 잘 유념해야겠다. 다만 집권 1년차의 최우선 순위에 북핵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다소 아쉬움이 있더라도 힘을 실어주고, 경제 정책에서도 잘할 수 있도록 정부를 격려할 필요가 있다. 양극화와 고용절벽의 뉴노멀 시대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상되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북핵 문제가 잘 풀려서 남북 간의 경제협력이 활성화된다면 한민족에게 또 한 번의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_최저임금 정책도 산입범위를 둘러싸고 갈등이 적지 않다. 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 원칙이 좀 더 분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방향성은 틀리지 않다. 다만 최저임금 인상을 결정할 때 산입범위도 동시에 결정해 줬어야 했다. 교통정리가 미흡하면서 정책의 완결성이 떨어졌다. 16.4%의 인상률이 상당히 높다 보니 논란의 소지가 있었다. 노동시간 단축은 글로벌 기준에 맞추려는 노력이라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다만 이런 정책을 시행하면서 기업 활동이 보다 활발하고 자유로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균형감을 갖춰야 한다.”

대담=이유식 논설고문 jtino57@hankookilbo.com 김정곤 논설위원 jkkim@hankookilbo.com

정리= 이의재 인턴기자(한양대 국문과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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