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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 4ㆍ3 사건의 아픔을 창작 판소리로 그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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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제주 4ㆍ3 사건의 아픔을 창작 판소리로 그렸죠”

입력
2018.05.24 04:4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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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암시민 살아진다’ 25~27일

사회성 짙은 판소리 선보여온

‘바닥소리’ 최용석 예술감독이

진실화해위 등서 활동했던

변상철씨에게 대본을 부탁

실제 피해자 할머니 사연 극화

 

4.3사건을 창작 판소리로 만든 최용석(왼쪽) 변상철씨. 변 씨는 “사람들이 보통 국가 폭력이나 희생자들 사연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극이라는 형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너무 벅차다”고 말했다. 김주성 기자
4.3사건을 창작 판소리로 만든 최용석(왼쪽) 변상철씨. 변 씨는 “사람들이 보통 국가 폭력이나 희생자들 사연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런 이야기를 극이라는 형태로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었다는 점에서 너무 벅차다”고 말했다. 김주성 기자

제주 4ㆍ3사건 그린 판소리가 나왔다. 판소리공장 바닥소리가 선보이는 신작 ‘살암시민 살아진다’. 2002년 소리꾼 박애리, 독립영화 ‘귀향’의 조정래 감독 등 목포 출신 소리꾼들이 의기투합해 만든 바닥소리는 사회적 감수성을 듬뿍 담은 판소리 공연을 선보이며 주목받았다. “소리꾼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하는 최용석(44) 바닥소리 예술감독은 MB정부를 동물 왕국에 빗댄 ‘쥐왕의 몰락기’,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을 풍자한 ‘순실가’를 발표한 소리꾼. 계층 간 갈등을 다룬 ‘잔혹판소리 햇님 달님’, 5ㆍ18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방탄 철가방’, 조류독감 걸린 닭의 닭장 탈출기를 다룬 ‘닭들의 꿈, 날다’ 등이 바닥소리의 대표작을 만들고, 불러왔다.

최근 서울 세종대로 한국일보에서 신작의 극작을 맡은 변상철(46) ‘지금여기에’ 사무국장과 함께 만난 최 예술감독은 “10여년 인연이 판소리 제작으로 이어졌다. 극작에 재미를 붙여 최근에는 어린이극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200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하 주차장을 개조해 만든 방에 모여 창작판소리 꿈을 키우던 바닥소리 단원들은 “판소리에는 사회성이 들어 있는데 그걸 잊어버리지 않았나 하는 문제의식”을 갖게 됐고, 경기 광주시 나눔의 집을 찾아 첫 공연을 올렸다. 그리고 한달에 한 번 위문 공연을 이어갔다. “제가 2004년까지 나눔의 집 연구원으로 일했어요. (바닥소리가) 자주 와서 공연하고, 놀고 가끔 잠자고 가기도 하면서 최 감독이랑 가까워졌죠. 2004년 말 국정원 과거사위원회 조사관으로 일하면서 연락은 이전보다 뜸해졌지만, 공연은 종종 찾았죠.”(변상철)

변 사무국장은 진실화해위원회를 거쳐 비영리단체 ‘지금여기에’로 자리를 옮겼고, 국가 폭력 피해 당사자의 삶을 책으로 펴냈다. 2015년 오랜만에 만난 최 감독에게 “이런 얘기를 극으로 만들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는데, 평소 입심 좋은 변 사무국장을 눈여겨봤던 최 감독은 “대본을 써보라”고 역으로 제안했다. “형이 맡은 일이 간첩 누명 쓴 분들 누명 벗겨주는 건데, 사연이 밝고 유쾌하진 않잖아요. 그런데 그 사연을 들려줄 때 입담이 너무 좋아 계속 궁금해하면서 듣게 됐단 말이죠.”(최용석)

“일단 다 쏟아내면 제가 다듬겠다”는 최 감독의 호언에 변 사무국장이 처음 쓴 대본이 지난해 초연한 창작 판소리 ‘광주교도소의 슈바이처 닥터 2478’. 울릉도 간첩단 조작사건 피해자인 이성희 전북대 수의학과 교수의 일대기를 그렸다.

창작판소리 '살암시민 살아진다' 모델인 김인근(왼쪽 다섯번째) 할머니와 최용석(네번째) 변상철(여섯번째) 씨. 최용석 제공
창작판소리 '살암시민 살아진다' 모델인 김인근(왼쪽 다섯번째) 할머니와 최용석(네번째) 변상철(여섯번째) 씨. 최용석 제공

이번 ‘살암시민 살아진다’ 역시 변 사무국장이 제작을 제안했다가 최 감독의 역제안을 받고 대본을 썼다. 4ㆍ3사건으로 온 가족을 잃었던 피해자 김인근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70년 전 제주의 아픔을 그려낸다. “1949년 1월 아버지, 누나, 오빠, 어머니, 임신한 새언니, 조카 둘이 다 학살됐어요. 한데 어머니가 총알 여섯 방을 맞고 살아 돌아와 함께 ‘버티는’ 이야기예요. 평화로운 마을에서 학살을 겪고 마을 공동체가 협력해 상처를 이기는 거죠. ‘빨갱이’로 낙인 찍혔으니 마을 주민들은 몰래 돕죠. 집 앞에 약이랑 편지를 두고 갔대요. ‘살암시민 살아진다(살게 되면 살아진다).’ 그 말이 김 할머니한테 힘이 됐대요.”(변상철) 두 사람은 이 편지 문구를 작품 제목으로 낙점했다.

한데 변 사무국장은 김 할머니 사연을 어떻게 알게 됐을까. “할머니 남편이 간첩 조작사건 피해자예요. 일제시대 일본에 갔다가 해방 후 돌아왔는데, 옆집에 조총련 관계자가 살았나 봐요. 옆집이라 왕래했는데 조총련에 포섭됐다고 누명 쓰고 감옥살이를 하셨죠. 재심 거쳐 무죄 선고 받았는데, 할머니가 진상조사 때는 한 마디로 안 하시다가 무죄 판결 받으니 ‘우리 집안에 이런 사연도 있는데 도움 받을 수 있을까요?’하고 꺼내신 얘기가 저 얘기에요.”(변상철)

학살은 피했지만 ‘빨갱이’ 누명을 쓰고 행방불명 된 큰 오빠를 아직 찾지 못했다. 하지만 김 할머니는 이 사연이 판소리로 만들어진다는 소식을 듣고 “소녀처럼” 기뻐하셨단다. “바닥소리 멤버들이랑 제주도를 찾으니 ‘살다 보니 이런 날이 오네’라고 하시더라고요”(최용석) “그동안 4ㆍ3은 금기어였는데 ‘우리는 빨갱이 아니다’라는 걸 누군가 대신 얘기해 주는 걸 고맙게 생각하셨죠.” (변상철)

소리꾼 정지혜가 김인근 할머니 역을 맡고 강나현, 이승민이 제주도민과 경찰, 해설자로 소리를 들려준다. 공연은 25일부터 27일까지 서울 구로아트밸리 예술극장.

이윤주기자 missle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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