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취에 관대한 대한민국] <상>술병이 나뒹구는 공공장소

공공장소 음주 금지 입법 두차례 실패
“주폭 싫지만 술 마실 자유 뺏지말라” 인식
금연 홍보 예산 1400억, 절주는 14억
주류산업 진흥 명목 음주규제 되레 완화
지난 21일 저녁 서울 여의도 한강공원에서 술을 마시는 사람들 주위로 소주병이 가득 놓여있다. 배우한 기자

1,400억원 대 14억원. 각각 금연과 절주에 관련해 연간 사용되는 정부의 교육ㆍ홍보 예산이다.

숫자는 정직하다. 사무실 안에서조차 담배를 마음대로 피던 불과 20년 전에 비해 흡연에 대한 인식은 극적으로 반전됐고 흡연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공공장소는 물론 웬만한 건물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못하도록 하고 있지만 ‘담배 피울 권리를 빼앗지 말라’고 반발하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반면 음주에 대한 인식은 과거와 크게 변하지 않았다. 만취해 쓰러진 사람을 구조한 소방대원이 오히려 맞아 숨지는 등 주취폭력이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지만, 최근 있었던 거의 모든 음주 관련 규제 입법 시도가 실패했다. ‘아무데서나 술 마실 자유를 뺏기기 싫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이다. 국립공원에서 음주를 금지한 규제가 거의 유일하게 성공했을 따름이다.

음주 규제 법안 두 차례 입법 실패

28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복지부는 지난 2012년과 2015년 두 차례 공공장소에서 음주와 주류 판매를 금지하는 내용의 국민건강증진법 개정안을 입법 시도했다. 국민건강 악화와 음주로 인한 범죄 등 음주 폐해가 심각하므로 국민 건강증진을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논리였지만 두 차례 모두 실패하고 말았다.

2012년 입법예고했던 개정안은 음주를 금지해야 할 공공장소로 초ㆍ중ㆍ고교, 대학, 청소년 수련시설, 병원과 그 부속시설을 명시했다. 하지만 ‘술 마실 자유를 빼앗지 말라’ ‘어차피 마시니 실효성도 없다’는 대학생들의 강한 반발에 막혔다. 2015년의 2차 시도에선 대학 축제기간은 제외한다는 예외규정을 두었지만 역시 반발이 심해 검토에 그치고 입법예고조차 하지 못했다. 같은 해 아이유의 소주 광고가 논란이 되자 미국ㆍ영국처럼 25세 미만인 자의 음주 광고 모델을 금지시키자는 개정안이 의원 입법으로 국회 보건복지위를 통과하는 일이 있었는데, ‘이미 성인인 사람의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논리로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하지 못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이른바 ‘주폭’ 범죄에 대한 기사를 보면 만취 범죄는 가중처벌해야 한다는 강경한 댓글이 달리지만, 정작 과음을 막기 위해 음주와 주류 판매 장소를 규제하려고 하면 엄청난 반발이 일어난다”며 “술에 대한 이중적인 인식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토로했다.

그래픽=송정근 기자
주세 걷어도 예방사업 예산은 쥐꼬리… 절주 교육ㆍ홍보 부족

국민 인식이 바뀌려면 꾸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지만 예산이 극도로 부족하다. 술은 담배와 더불어 1군 발암물질이고, 2013년 건강보험정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음주에 의한 연간 사회적 비용(9조4,000억원)이 흡연(7조1,000억원)이나 비만(6조7,000억원)보다 훨씬 많다. 2015년 전체 범죄 중 주취자 범죄율이 26.4%이며 폭행, 강도, 강간 등 강력범죄의 경우 30.1%가 주취 상태에서 발생하고 있다. 그러나 학교에서 손상된 폐 사진이나 영상을 보며 금연교육을 받는 학생도 음주와 관련한 이 같은 부정적 사실은 학교에서 별도로 교육 받지 않는다. 그 결과 우리나라 청소년 중 처음 음주를 경험한 연령(평균)이 13.2세이며, 전체 청소년의 15.0%가 현재 음주자인 상황이다.

두 번의 실패 후 음주 규제는 강화되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완화되고 있다. 주류산업진흥과 규제완화라는 명분이 더해졌다. 국세청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규제완화 권고에 따라 최근 야구장에서 ‘맥주보이’를 허용하고 슈퍼마켓 등 소매점과 음식업소에서 주류 배달을 허용했으며, 전통주 통신판매 확대, 경기장 등 한정된 공간 전역에서 주류 판매를 허용하는 등 음주 및 주류 판매 규제를 계속 완화하고 있다.

이해국 의정부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동네 골목까지 편의점과 술집, 술 파는 음식점이 있어 모든 종류의 술을 쉽게 구매하고 마실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나라”라며 “특히 값싼 독주인 소주를 24시간 집 근처에서 구입할 수 있고 공공장소에서 음주를 제한할 수 있는 법도 없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주세를 걷어도 음주폐해를 예방하고 알코올 중독에 대한 치료ㆍ관리사업 예산은 계속 줄고 있어 앞으로 음주 문제가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진주 기자 pariscom@hankookilbo.com

김치중 기자 cj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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