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한국일보]문재인 대통령이 3월 6일 서울 노원구 육군사관학교 화랑연병장에서 열린 74기 졸업 및 임관식에 참석해 신임 소위에게 직접 계급장을 달아 주고 있다. 고영권기자

“아빠, 나 커서 장군 될래.”

초등학교 4학년 막내의 꿈이다. 대형마트 사장, 마술사, 프로게이머, 저격수 등등 천차만별로 바뀌지만 단연 첫손에 꼽는 건 장군이다. 자연히 아이가 커갈수록 사관학교에 곧잘 눈길이 가곤 한다. 사관생도의 강인한 체력과 넘치는 기개, 투철한 정신력과 확고한 리더십은 달리 체득하기 쉽지 않은 소중한 덕목임에 틀림없다.

지난 3월 문재인 대통령이 통수권자로는 10년 만에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을 찾았다. 괜스레 TV화면을 유심히 들여다봤다. 군 전체의 사기를 높이고, 이제 첫발을 뗀 육사 개혁에 힘을 실어주려는 대통령의 의지가 곳곳에서 묻어났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엉뚱한 곳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일부 예비역들의 등쌀 때문이다. 군 특유의 고질적인 기수 문화에 신앙이 결합해 마치 사조직인양 쥐고 흔드는 기막힌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급기야 난무하는 음해성 유언비어에 얼룩져 육사 개혁의 청사진은 현 정부에 줄을 선 ‘코드 맞추기’로 매도될 처지다. 국가를 위해 청춘을 건 생도들의 충정이 선배들의 잘못된 신념에 변질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지난 1월 생도들의 종교행사 참석을 자율에 맡기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그간 육사 생도는 매주 교회나 성당, 절에 다녀와야 했다. 병사들의 종교가 다양한 만큼 이들을 이해하고 지휘할 장교로서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다. 하지만 국가인권위원회가 이 같은 의무조항은 헌법이 보장한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수 차례 시정을 권고했고, 육사는 고심 끝에 규정을 바꿨다. 그 결과 종교시설에는 생도들의 발길이 하나 둘 끊겼다.

그러자 학교 외부에서 볼멘소리가 튀어나왔다. 특정 종파를 배경으로 끈끈하게 뭉쳐온 예비역들이 성토에 앞장섰다. 육사의 종교행사는 예비역 선배들이 생도들과 자유롭게 만나면서 세를 키우는 치외법권과도 같은 곳이었다고 한다. 이때의 인연은 장교 임관 이후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서로 밀고 끌어주기 마련이다. 그런데 돌연 젊은 피의 수혈이 막힌 것이다.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그들만의 폐쇄적인 리그인 셈이다.

육사는 오랜 병폐인 강압적인 선후배 문화에도 메스를 들이댔다. 일례로, 1학년 생도의 주말 외출을 허용해 일과 이후 선배들의 입김을 차단했다. 군복무를 마친 이들은 누구나 경험했듯 ‘엎쳐’라는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엎드려 뻗치는 게 군대의 규율이다. 정예 장교를 양성하기 위해 군기가 더 엄격한 사관학교는 두말할 나위도 없다. 이에 학교 밖 인사들은 특권을 뺏긴 고학년 생도들의 상실감에 편승해 갈등을 부추기면서 육사의 기강에 적잖은 생채기를 내고 있다.

심지어 색깔론을 덧씌워 몰아가며 정치판으로 변질되는 양상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종걸ㆍ송영길 의원은 각각 지난해 12월과 올 2월 육사에서 특강을 했다.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손자인 이 의원은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장인 송 의원은 조국에 대한 헌신과 북방협력의 가치를 강조했다. 생도들의 시야를 넓히고 지휘관으로서 소양을 키우기 위한 자리였다. 이전과 다른 참신한 시도에 참석자들의 반응도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정권의 입맛에 맞추려 한다는 비아냥이 쏟아졌다. 게다가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이 교정에 세운 기념비를 파서 내버렸다는 악의적 소문까지 퍼지면서 비방이 극에 달했다. 참다 못한 육사 교수진과 다른 예비역들이 내부 전산망과 SNS에 글을 올려 방어에 나섰지만 외부의 무차별 공세에 왜곡된 여론을 되돌리기엔 힘에 부치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은 졸업식 축사에서 “육사의 역사는 곧 대한민국 수호의 역사”라고 강조했다. 창군 이래 처음인 육사의 개혁 시도가 이처럼 허무하게 시들해진다면 거창한 역사를 운운한들 한낱 공염불에 그칠 뿐이다. 말로 현혹하는 가벼움을 넘어설 행동의 힘이 절실한 때다.

김광수 정치부 차장 rollings@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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