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을 위한 행진곡’ 배우 전수현
민주화 시위 이끄는 법대생 연기
피해자 딸 역할 배우 김꽃비는
“20대 초반 무전여행 때 찾았던
5ㆍ18 묘지의 사연들 가슴 아파”
영화 '임을 향한 행진곡'에서 군부독재 타도를 위해 시위에 나선 철수 역을 맡은 신인 전수현. 홍보사한다 제공

소년의 외할아버지는 광주 북구 5ㆍ18 광주 국립민주묘지에 안치돼 있다. 그는 어려서부터 5ㆍ18 민주화 운동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자랐다. 태어나기 13년 전 일이었지만, 소년에게 5ㆍ18 민주화 운동은 교과서에 흑백사진과 문자로 소개된 역사의 한 조각 이상이었다. 광주 금남로에서 계엄군에 맞선 청년들과, 주먹밥을 싸와 거리에 나온 청년들의 손에 쥐여주던 아주머니들. 외할아버지를 통해 들은 이 풍경이 소년에겐 잊히지 않았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한 장면.

소년은 배우를 꿈꾸고 있었다. 청년이 된 소년은 우연히 지난해 5ㆍ18 민주화 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의 배우 오디션 광고를 접했다. 300명이 몰려 경쟁이 치열했다. 마음을 졸이며 오디션 결과를 기다리던 그는 합격 통보를 받고 결국 눈물을 쏟았다. 마침 그의 어머니와 함께 있던 자리에서 합격 소식을 들어 울컥 감정이 치솟은 탓이다. 지난 16일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개봉을 앞두고 서울 용산구 한 멀티플렉스에서 만난 신인 배우 전수현이 들려준 얘기다.

전수현은 “촬영하면서도 외할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다”고 했다. 그는 극에서 군부독재 타도 시위를 이끄는 법대생 철수 역을 맡아 모진 고문도 당한다. 전수현은 “외할어버지는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그날(5ㆍ18)의 일을 기억하고 계셨다”며 “외할아버지께서 살아계셔 함께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말했다.

영화 '임을 향한 행진곡'에서 희수 역을 연기한 배우 김꽃비. 홍보사 한다 제공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영화는 5ㆍ18 민주화 운동이 아직 끝나지 않은 사건이라는 걸 환기한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1980년 5월의 악몽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피해자를 보여준다. 계엄군의 손에 연인인 철수를 잃은 명희(김부선)는 머리에 총상을 입은 후유증으로 정신병원에서 고통의 나날을 보낸다.

명희의 딸 희수(김꽃비)에게 5ㆍ18 민주화 운동의 상흔은 현재진행형일수 밖에 없다. “그때 죽었으면 열사라는 소리라도 듣지, 왜 사셨어요?” 세상의 손가락질을 받는 어머니를 향해 희수가 내뱉은 냉소는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희수는 과거와 현재의 다리가 돼 1980년 5월 광주의 슬픔을 보듬는다. 영화 ‘똥파리’에서 여고생 연희 역으로 깊은 인상을 남겨 각종 영화제 신인상을 휩쓴 김꽃비는 캐릭터에 끌려 바로 이 영화 출연을 결정했다.

김꽃비에게도 5ㆍ18 민주화 운동과의 인연은 있었다. 최근 만난 김꽃비는 “20대 초반 무전여행을 할 때 5ㆍ18 광주 국립민주묘지를 찾았다”고 옛 일을 들려줬다. 광주로 여행을 간 뒤 묘한 이끌림에 정한 돌발적인 동선이었다. 김꽃비는 묘비 마다 새겨진 고인들의 사연을 본 뒤 눈물을 흘렸다. 아이부터 임산부까지 너무 안타깝게 생명을 잃은 모습들이 그의 가슴을 후벼 팠다. 김꽃비는 “정부의 민간인 학살이 너무 충격적이었다”고 했다.

영화 '임을 위한 행진곡' 한 장면.

김꽃비는 평소 인권에 관심이 많다. 영화 ‘질투는 나의 힘’으로 데뷔한 김꽃비는 “사소한 성폭력은 없다”며 ‘미투(#MeToo)’ 운동에 지지를 표하며 사회 변화를 위해 목소리를 내기도 했다. 그런 김꽃비는 작품 속에 녹아있는 차별과 혐오의 시선과 표현을 늘 경계한다. 김꽃비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작한 박기복 감독에게 특별한 건의를 했다.

“희수가 엄마에게 ‘우울할 때는 오리춤을 추세요’라고 하는 대사가 있어요. 개그맨인 희수가 진행하는 인기 코너인 ‘오리의 호수’의 오리처럼 춤을 추라고 권유하는 장면이죠. 원래는 ‘우울할 때는 약을 먹지 말고 오리춤을 추세요’라고 쓰여 있었어요. 정신적인 문제를 의지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어 병원 진료를 꺼리고 약을 안 먹으려고들 하는 경향이 있잖아요. 그런데 영화에서 ‘약을 먹지 말고’라고 하면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는다면 그 부분을 빼면 어떨지 건의했고 감독님이 받아주셨죠.”

양승준 기자 comeo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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