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보다 국내 언론에 더 자주 오르내리는 미국인이 있다. 바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다. 조지 부시 대통령 시절부터 이른바 네오콘의 핵심 인물로 초강경 슈퍼매파로 이름을 날린 볼턴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북한 폭격을 주장했던 인물이다. 볼턴은 지난 13일 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모든 핵무기를 폐기해 미국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로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크리지에는 리비아의 핵개발 관련 장비들이 보관돼 있다. 리비아는 2003년 핵무기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하겠다고 선언한지 1년도 지나지 않아 국제원자력기구의 사찰을 받고 관련 장비를 미국에 넘겼다. 당시 이 임무를 담당했던 사람이 미 국무부 군축 및 국제안보 담당 차관이었던 볼턴이었다. 볼턴에게 오크리지는 아마도 핵 폐기에 관한 한 승리와 성공의 징표였을지도 모른다.

테네시 주의 오크리지는 미국 핵무기 개발의 징표와도 같은 곳이다. 2차 대전 당시 미국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이던 맨해튼 프로젝트가 진행됐을 때 오크리지에서는 무기급 우라늄을 농축했다. 천연 우라늄의 99.3%인 우라늄238은 연쇄 핵반응이 잘 일어나지 않아 핵무기 원료로 쓸 수 없다. 연쇄 핵반응으로 핵폭발을 일으킬 수 있는 원소는 우라늄235로, 천연 우라늄의 0.7% 정도에 불과하다. 핵무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 질량을 임계질량이라고 한다. 임계질량 이하의 우라늄235 두 덩어리를 분리해 놓았다가 원하는 순간에 합쳐서 임계질량을 넘어서게 하면 핵폭발이 일어난다. 우라늄235의 임계질량은 약 60㎏이다. 따라서 우라늄 폭탄을 만드는 데 가장 중요한 작업은 순도 높은 우라늄235를 최대한 많이 얻는 것이다. 이 과정이 우라늄 농축이다.

우라늄235와 우라늄238의 차이는 겨우 중성자 3개이다. 이 미세한 질량 차이를 이용해 우라늄235를 분리할 수 있다. 예컨대 우라늄을 이온화시켜 자기장 속에 날려 보내면 질량에 따른 회전반경의 차이를 이용해 두 원소를 분리할 수 있다. 이를 전자기분리법이라고 한다. 사이클로트론이라는 입자가속기를 발명한 것으로 유명한 UC 버클리의 물리학자 어니스트 로런스는 전자기분리법을 실현한 장치인 칼루트론을 만들었다. 미국 당국은 대량의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해 Y-12라는 공장을 차려 1,000 대가 넘는 칼루트론을 돌렸다. 여기에 필요한 자기장을 만들려면 대량의 구리가 필요했으나, 전시라 물자가 부족해 미 재무부에서 무려 1만 톤이 넘는 은(그때 시가로 10억 달러를 상회하는)을 가져다 썼다고 한다. 당시 미국이 얼마나 총력을 기울여 핵무기 개발에 매진했는지 엿볼 수 있다. 1945년 8월6일 히로시마에 떨어진 핵폭탄인 ‘리틀 보이’에 들어간 약 64㎏의 우라늄235는 모두 오크리지의 Y-12에서 농축했다. 그러니까 오크리지는 미국으로서는 핵무기의 고향과 같은 곳이다.

북한에서 가장 중요한 핵시설 중 하나는 함경북도 길주군의 풍계리 핵실험장이다. 지금까지 북한이 실행한 총 6차례의 핵실험은 모두 풍계리에서 진행됐다. 판문점 남북정상회담이 있기 일주일 전인 4월20일 북한은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풍계리 핵실험장을 폐기하기로 결정했다. 그에 따라 이번 주인 5월23일~25일에 지하갱도를 폭파할 예정이다.

지금 시점에서 돌아보면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핵무기 개발에 매진한 궁극적 이유는 미국과 빅딜을 하기 위함이었던 것 같다. 상식을 가진 지도자라면 북한이 미국과 대등하게 핵 경쟁을 벌일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와 김정은의 치킨게임에서 결국은 김정은이 먼저 핸들을 꺾는 것이 당연할 터인데, 지난 2월의 평창올림픽은 김 위원장에게도 매우 좋은 계기였음이 분명하다. 트럼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임기가 초반이라는 점도 분명 긍정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를 기점으로 역산해 보면 김 위원장은 아무리 늦어도 올 초 신년사에서 올림픽 참가를 통한 관계개선 의지를 보여야 한다. 그 전제조건은 물론 북한의 ‘핵 무력 완성’이다. 북한이 사실상의 대륙간탄도미사일인 화성15형 미사일을 쏜 것이 2017년 11월29일이었다. 작년을 돌아보면 7월4일, 28일 화성14형 미사일을 쏘았고 9월3일 6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나는 북한의 이 숨 가쁜 일정이 올해의 대반전을 겨냥한 자기 나름의 몸부림 아니었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최고지도자의 이 일정을 맞추기 위해 북한의 과학기술자들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을까? 대량살상무기를 만들어야 평화를 얻을 수 있다는 지금의 현실은 또 얼마나 역설적인가? 모르긴 몰라도 미국이 오크리지에서 구리 대신 은을 감아 전자석을 만들었던 사연이 북한에게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 풍계리를 이제 완전히 폐기한다고 하니 어쨌든 북한의 용단에 박수를 보낸다. 앞으로는 북한의 그 훌륭한 과학기술이 더 이상 무기가 아닌 평화를 만드는 데에 쓰이길 바란다.

이종필 건국대 상허교양대학 교수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