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몇 배 속도로 빠르게 늙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보살피고,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버겁다. 픽사베이

책 계약을 하러 제주에 사는 저자를 만나러 가야 하는데 계속 미루게 됐다. 올 겨울은 이상 한파로 집의 노묘와 돌보는 길고양이들이 혹시나 잘못될까 한시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어서 미뤘다. 봄이 왔는데 이번에는 길고양이 한 녀석이 무서운 질병인 구내염을 앓는 바람에 또 미뤘다. 그런데 그 사이 작가의 노견이 떠나고 말았다. 내 컴퓨터에 저장된 작가의 폴더명이 ‘제주고양이넷노견하나’였다. 그 ‘노견 하나’가 떠났다. 동물 책 만드는 길로 나를 밀어 넣은 첫 반려견 찡이와 같은 견종인 아이라서 만나서 인사를 나누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고 말았다. 나이든 아이들과의 약속은 미루는 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찡이가 17살 때 노견에 관한 다큐멘터리에 출연했었는데 그때 담당 피디에게 사람들은 “개도 늙어요?”라고 물었단다. 그게 벌써 10년 전이다. 개를 움직이는 장난감으로 생각해서 늙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사이 많이 줄었지만 함께 사는 사람들은 여전히 반려동물의 노화를 받아들이기 힘들다. 인간의 몇 배 속도로 빠르게 늙어가는 아이들을 지켜보고, 보살피고, 이별을 준비하는 일은 버겁다.

이별의 순간은 늘 벼락처럼 오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답이다. 픽사베이

나이든 아이들과 사는 사람들이 제일 듣기 무서워하는 말 중 하나가 “마음의 준비를 하세요!”다. 준비라니, 의미 없다. 이별의 순간은 늘 벼락처럼 오고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것만이 답이다. 최근 주변 지인의 아이들이 많이 아팠다. 건강하던 어린 녀석이 급성 질환으로 사경을 헤매더니, 다른 한 노견에게는 한꺼번에 질환이 찾아와 노견은 물론 반려인까지 크게 지쳤다. 지극한 엄마아빠와 세상 행복하고 유쾌하던 또 다른 한 노견은 하루아침에 찾아온 신경계 질환으로 절망했다가 몇 달이 지난 지금 다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이든 아이들과 사는 건 이별을 품고 사는 일이다. 그날은 반드시 오고, 언젠가 이별이 온다는 것은 바뀌지 않은 사실이다. 그렇다고 이별만 생각하고 살 수는 없다. 그만큼 아이들과 함께 하는 순간이 소중하기에. 이별 후 사람들은 빠짐없이 후회와 미안함을 이야기한다. 그걸 줄이는 게 나이든 아이들과 잘 사는 방법이리라. 나이든 동물과 사는 걸 안쓰럽게 보는 사람이 많지만 사실 노견, 노묘와 사는 일은 기회를 얻는 일이다. 사고로, 병으로 갑자기 아이를 떠나 보낸 사람에게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할 기회마저 없었으니까.

노견인 찡이는 안방 문 옆에 물그릇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벽을 끼고 돌아서 정확히 그 자리에서 물을 먹는다.

나이든 아이들과 산다는 건 배움과 놀라움의 연속이다. 찡이는 나이 들어 눈이 안 보이고 걷기도 힘들어 해서 도와주려고 하면 뿌리치고 스스로 했다. 안방 문 옆에 물그릇이 있다는 걸 기억하고 벽을 끼고 돌아서 정확히 그 자리에서 물을 먹었다. 반면 도움이 필요할 때는 기꺼이 도움을 청할 줄 알았다. 늙고 약해 보이는 게 싫어서 도움을 뿌리치고 혼자 하겠다고 고집부리는 못난 인간보다 훨씬 더 지혜로웠다.

퓰리처 상을 두 번 수상한 저널리스트인 진 웨인가튼은 자신의 묘비명을 ‘개를 사랑했던 유머 작가 진 웨인가튼’으로 정해 놓을 정도로 개를 사랑하는 작가다. 그는 책 <노견 만세>에서 노견의 긴 생애를 유쾌하고 뭉클하게 묘사했는데 반려견이 나이 먹는 것을 지켜보는 일은 자신의 삶의 축소판을 지켜보는 일과 같다고 말한다. “개는 나이가 들면서 쇠약해지고, 변덕스러워지고, 상처받기 쉬워진다.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분명히 맞이하게 될, 그날은 온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슬퍼함은 곧 우리 자신을 위한 슬픔이다.”

찡이가 18살 때쯤 장가 간 동생이 회사에 휴가를 내고 오더니 부모님, 찡이랑 바다로 나들이를 가자고 했다. 마감이라 바빴지만 고민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찡이가 나이 들면서 내 삶의 기준은 바뀌었다. 미루지 말자. 시간도, 사랑하는 존재도 언제나 기다려주지 않으니까. 지금 그날의 사진을 보면서 웃는다. 찡이가 뭐라고 했길래 내가 저렇게 웃고 있을까? 소중한 이의 곁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을 미루지 말자. 훗날 ‘곁에 조금 더 있어줄 걸.’ 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글ㆍ사진 김보경 책공장 더불어 대표

참고한 책: <노견 만세>, 진 웨인가튼, 마이클 윌리엄슨, 책공장더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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