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신다 아던 뉴질랜드 총리와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 아던 총리는 ‘뉴질랜드의 힐러리 클린턴’으로 불렸다. AP=연합뉴스

다음달이면 그녀가 출산한다.

지난해 9년 만에 보수정권을 교체하면서 혜성처럼 등장한 재신다 아던(38) 뉴질랜드 총리 얘기다. 여성 정치인의 임신 혹은 출산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현직 총리의 출산은 고(故) 베나지르 부토(1953~2007) 전 파키스탄 총리에 이어 두 번째다.

아던 총리는 일찍부터 양성평등을 표방한 여성주의 정치인이다. 야당 의원 시절인 지난 해 1월 여성 비하를 일삼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에 항의하는 ‘여성들의 행진’에도 참여했고, 지난해 총선 TV토론 때는 “육아와 경력 중 어떤 것을 선택할 것이냐”라는 질문을 받자 “그런 질문은 옳지 않다. 언제 아기를 갖느냐는 여성의 선택이고 그게 여성 일자리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반박했을 정도로 신념이 확고하다. 그래서일까. 임부복을 입은 ‘예비 워킹맘’ 아던 총리가 예산안 통과를 위해 수도 웰링턴의 의회에서 야당을 설득하는 모습은 상징적이고 강렬하다. “슈퍼우먼으로 비춰지기는 싫다. 나와 내 남자친구는 여성들이 슈퍼우먼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 내 DNA에는 정의가 흐른다”고 당차게 선언하는 그녀에게 뉴질랜드 여성들이 손수 뜨개질한 아기용품을 보내는 행동으로 지지와 연대를 표시한 건 자연스럽다. 총리에게는 출산 휴가가 필요 없다는 야당의 공세에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후 다음날 업무에 복귀해야 했던 부토 전 총리와 달리 아던 총리는 6주 동안 출산 휴가를 다녀 온 뒤 업무에 복귀할 것이라고 한다. 그 시점부터 아이의 전일(全日) 양육자는 유명한 낚시 TV 진행자이기도 한 남자친구가 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어쨌든 보기 드문 여성 총리의 임신ㆍ출산뉴스는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시간전쟁을 벌이고 있는 많은 한국 여성들의 현실에 자연스럽게 눈을 돌리게 한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육아와 가사의 방관자, 나아졌다고 해도 조력자에 머무르는 나를 포함한 남성 다수에 대한 자기반성으로 이어진다. 남성의 육아휴직 증가(2017년 1만2,043명)와 같은 정량지표나, 아빠의 달 도입(2014년)과 육아휴직 급여 확대 등 제도개선 사례를 제시하면서 어떤 이는 “예전보다 훨씬 나아지지 않았느냐, 일ㆍ가족 양립과 경력단절 문제가 한국 여성만의 문제냐”라는 볼멘소리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멀었다.‘사람들이 나보고 맘충이래’처럼 자기체념적 수사가 책 표지에 쓰여진 ‘82년생 김지영’ 같은 소설이 사회현상이 되는 반 여성적 분위기ㆍ육아 적대적 환경은 여전하기 때문이다. 동시에 한국 여성들이 슈퍼우먼이 되기를 원하는 무언의 압력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서울 지역 중간계급 유자녀 취업여성의 직장생활과 가족관계를 집중 분석해 온 여성학자 조주은의 표현을 빌리자면 워킹맘 대다수는 “정글 같은 생존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일터에서 전에보다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고 동시에 가족과 많은 시간을 보내주기를 바라는 가족 구성원들의 요구에 늘 직면하는 상황”(‘기획된 가족’ㆍ2013)에 놓여 있다.

분석에 따르면 여성의 경력단절을 상징하는 이른바 M자 커브의 기울기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국가 중 한국이 유난히 가파르다. 이는 가족주의ㆍ가부장적 성격이 강한 남유럽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도 보이지 않는 현상(정이환 ‘한국고용체제론’ㆍ2013)이라고 한다. 육아와 출산 부담으로 30대 초중반 여성들의 경제활동 참여율이 한국에서 현저하게 낮다는 얘기다. 물론 아던 총리에 대한 여성들의 열광적 지지가 역설적으로 보여주듯 ‘워킹맘의 천국’이란 아직까지 세계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태(理想態)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제 우리 사회는 워킹맘의 지옥에서라도 좀 벗어나야 할 때 아닐까. 가사ㆍ보살핌 노동의 남성화를 꾸준히 추동할 수 있는 세심한 정책과 사회 분위기 조성의 필요성은 되풀이 강조할 필요도 없을 터다.

이왕구 국제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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