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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ㆍ디스플레이 등 승승장구… 반도체 중도 포기는 평생 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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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차전지ㆍ디스플레이 등 승승장구… 반도체 중도 포기는 평생 恨으로

입력
2018.05.20 16:40
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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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직후 “글로벌 기업 성장” 천명

화학ㆍ전자ㆍ통신서비스에 역량 집중

난관엔 “길게 보고 가자” 정면 돌파

불모지 배터리ㆍOLED 시장 개척

‘럭키금성’서 ‘LG’로 CI 변경도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2011년 11월 구 회장이 LG화학 유리기판공장에서 생산제품을 점검하는 모습.연합뉴스
20일 LG그룹 구본무 회장이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3세. 사진은 2011년 11월 구 회장이 LG화학 유리기판공장에서 생산제품을 점검하는 모습.연합뉴스

“제가 꿈꾸는 LG는 세계 초우량을 추구하는 회사입니다. 남이 하지 않는 것에 과감히 도전해서 최고를 성취해야 하겠습니다.” (1995년 회장 취임사)

20일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은 지난 23년간 그룹 총수로서 쉼 없이 달리며 LG를 글로벌 기업으로 키웠다. 취임 초부터 LG그룹의 성장을 주도해나갈 3대 핵심사업을 ‘전자, 화학, 통신서비스’로 정하고, 핵심ㆍ원천기술 개발과 해외시장 개척에 그룹의 모든 역량을 집중했다. 구 회장은 이 과정에서 실패에 굴하지 않는 뚝심을 보여주면서 ‘집념의 승부사’로 불렸다.

구 회장은 90년대 초반 당시 국내에서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이차전지 사업에 과감히 뛰어들었다. 1992년 당시 부회장이었던 구 회장은 영국 원자력연구원(AEA)에서 충전해서 반복 사용이 가능한 이차전지를 처음 접하고, 미래의 새로운 성장사업이 될 것으로 확신했다고 한다. 2005년 이차전지 사업에서 2,000억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 주위에서 “사업을 접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지만 구 회장은 “길게 보고 투자해야 한다”며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LG화학은 국내 최초로 리튬이온배터리를 개발, 올해부터 2020년까지 2년간 전기차배터리 등 전지 부문에서만 매출 5조원을 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구 회장은 전자 분야에선 1998년 LCD 전문기업인 ‘LG LCD’를 설립, 이후 2008년 단독법인인 ‘LG디스플레이’를 출범시키며 글로벌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선두자리를 굳혔다. 특히 구 회장은 2009년 당시 글로벌 전자업체들이 양산 어려움 때문에 포기했던 OLED TV 패널 개발에 도전, 수조원에 이르는 연구개발 투자를 승인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구 회장은 2013년 7월 임원세미나에서 “한번 결정한 것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기필코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며 “그 과정에서 나타난 의미 있는 실패에 대해서는 격려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구 회장은 1996년 6월 LG텔레콤(현 LG유플러스)을 출범하고, 2000년 유선통신사업체인 데이콤을 인수하며 통신사업을 강화했다. 1998년 매출 약 1조원을 기록한 LG텔레콤은 지난해 매출 12조원대로 성장했다. 특히 기존 3G보다 5배 빠른 4G LTE 시대가 다가오자 구 회장은 LG유플러스 경영진에게 “단기 경영실적에 연연하지 말고 네트워크 구축 초기 단계에서부터 과감히 투자할 것”을 독려, LG유플러스는 당초 3년 계획이었던 LTE 전국망 구축을 단 9개월 만에 끝냈다. 구 회장은 회장 취임 직전 “분산돼 있던 그룹 명칭과 이미지를 통합해 세계 시장에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며 ‘럭키금성’에서 ‘LG’로 CI를 변경, LG그룹을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켰다.

다만 한 시대를 풍미한 구 회장에게도 평생의 ‘한’(恨)이 있었다. 굳은 의지로 시작한 반도체 사업에서 날개를 펴지 못하고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구 회장은 1989년 5월 금성일렉트론을 설립하면서 반도체 사업을 시작했다. LG반도체는 이후 ‘국내 최초’ ‘세계 최초’라는 수식어가 달린 D램 등 메모리 반도체를 개발하며 성장했다. 하지만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사태 직후인 1998년 정부가 '재벌 빅딜'에 나서면서, 결국 1999년 7월 LG반도체를 현대그룹에 넘겨야 했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회장은 라이벌 삼성그룹이 이후 반도체 사업을 발판 삼아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는 것을 지켜보며 아쉬워했다”고 전했다.

김현우기자 777hyunw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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