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회장의 일생

1995년 50세에 ‘3세 경영’ 시작
IMF 이후 경영시스템ㆍ사업 재편
허씨 가문 등과 잡음없이 계열분리
임원보단 직원들과 격의없는 소통
장례 ‘비공개 가족상’ 치르기로
文 대통령 “재계 큰 별 떠나 안타까워”
1999년 8월 구본무(오른쪽) 회장이 부친 구자경(왼쪽) 명예회장 머물던 강원 평창군 진부면 농장을 찾아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다. LG 제공

구씨 집안과 허씨 집안의 동업에 뿌리를 둔 LG그룹은 여러 사람이 서로 화합한다는 ‘인화(人和) 경영’의 토대 위에서 성장했다. 20일 별세한 구본무 LG그룹 회장 역시 “한번 사귀면 헤어지지 말고 부득이 헤어지더라도 적이 되지 말라”고 강조한 할아버지 고(故) 구인회 창업주의 창업 정신을 깊이 새긴 거목이었다.

포목상을 운영했던 구인회와 만석꾼 허만정이 1947년 창립한 락희화학공업사(현 LG화학)이 LG그룹의 모체다. 구 창업주는 허 전 명예회장과 그의 형제들도 경영에 합류시켰으며, 구씨가(家)와 허씨가의 동업은 구 창업주의 장남 구자경 명예회장과 허 창업주의 셋째 아들 허준구 전 LG건설 명예회장으로 이어졌다.

1995년 2월 22일 LG 회장 이취임식에서 구본무 신임 회장이 LG 깃발을 흔들고 있다. LG 제공

구본무 회장은 1995년 50세 나이로 회장직을 물려받아 3세 경영 시대를 열었다. 외환위기를 겪은 구 회장은 경영 시스템을 강화하기로 결심한 뒤 사업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1999년 구인회 창업주의 동생 구철회 사장의 자손들이 LG화재(현 LIG)를 독립시켜 그룹을 떠난 것을 시작으로 계열분리가 본격화했다. 2000년엔 구자경 명예회장의 두 형제가 각각 LG벤처투자(구자두)와 아워홈(구자학)을 분리해 나갔고, 2003년엔 구인회 창업주의 형제들(태회ㆍ평회ㆍ두회) 일가가 경영하던 LS그룹이 분리됐다. 2005년엔 허씨 일가의 GS그룹, 2007년엔 LG상사 최대주주였던 구자승 사장의 LG패션(현 LF)이 차례로 독립했다.

특히 구 회장이 2005년 허씨가와의 오랜 동업에 마침표를 찍은 과정은 ‘아름다운 이별’로 표현된다. 통상의 그룹 계열 분리 과정에서 불거졌던 잡음이 범LG가에선 단 한번도 새나오지 않았다. 화합과 신뢰를 바탕으로 60년 가까이 유지한 성공적 동업 관계와 계열 분리 과정을 두고 국내 경영학계는 ‘연구 대상’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계열분리 전까지 구 회장은 주요 사안을 항상 허창수 GS 회장과 같이 논의하는 등 허 회장에 대한 예우에 소홀함이 없었다. GS그룹 출범식에 참석한 구 회장은 “지난 반세기 동안 LG와 GS는 한 가족으로 지내며 수많은 역경과 고난을 함께 이겨냈다”며 “지금까지 쌓아온 긴밀한 유대관계를 더욱 발전시켜 일등 기업을 향한 동반자가 되어 달라”고 말하기도 했다.

회사 안에서도 구 회장은 임원보다 직원들과의 소통에 힘썼고 연구개발성과보고회 등 이제 막 LG에 입사한 사회초년생들과 만남을 즐겼다. 출장 지역 공항에 주재원이 나오는 것을 싫어했고 저녁 자리가 길어지면 운전기사를 먼저 보내고 택시로 귀가하는 경우도 많았다.

구 회장이 구축한 LG의 소통과 배려, 인화의 경영문화는 장남 구광모 LG전자 상무가 이어가게 된다. 이로써 LG는 4대에 걸쳐 장자승계 원칙을 지킨 유일한 그룹이 됐다. 구 회장은 지난 2004년 동생 구본능 회장의 아들 구 상무를 양자로 맞았다.

구 회장의 장례는 고인의 유지에 따라 비공개 가족장으로 간소하게 치러진다. 이날 저녁 빈소를 찾아 20여분간 조문한 장하성 청와대 정책실장은 “정말 존경 받는 재계의 큰 별이 갑자기 떠나신 데 대해 문재인 대통령도 안타까워하셨다”고 밝혔다.

맹하경 기자 hkm07@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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