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1회 칸국제영화제 초청된 ‘버닝’으로 8년만에 스크린 복귀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영화 ‘버닝’에 대해 이창동 감독은 “미스터리 스릴러 로 즐겨달라”고 말했다. CGV아트하우스 제공

이창동(64) 감독은 영화 ‘버닝’의 주인공들을 ‘청춘’이 아닌 ‘젊은이’라 불렀다. 청춘이든 젊은이든 지칭하는 대상은 같으니, 어떤 단어를 썼느냐는 그렇게 중요한 문제가 아닐 수 있다. 그러나 그 미묘한 차이를 안다면 ‘버닝’에 조금 더 깊이 들어갈 수 있다. “‘청춘예찬’이라는 수필이 있어요. 제목 탓인지 청춘은 예찬돼야 하는 존재처럼 느껴져요. 청춘의 춘(春)이 봄이란 뜻인데 요즘 젊은이들 중에 ‘봄’을 사는 사람은 많지 않죠.”

이 감독 말대로 ‘버닝’은 봄을 빼앗긴 ‘젊은이’들이 가슴에 품은 분노를 들여다보는 영화다. ‘시’(2010) 이후 8년 만에 돌아온 이 감독이 새로 꺼내든 화두에 세계 영화계가 주목했다. 제71회 칸국제영화제(칸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버닝’은 16일 공식 상영 이후 칸영화제 공식 일일 소식지 스크린 데일리에서 4점 만점에 3.8점을 얻으며 역대 최고 평점을 기록했다. 19일(현지시간) 폐막을 앞두고 황금종려상(최고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18일 칸에서 마주한 이 감독은 “젊을 때는 젊음을 인지하지 못했지만 나이가 드니 젊음의 문제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며 “이 세상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는 지금 젊은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와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버닝’은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소설 ‘헛간을 태우다’에서 뼈대를 빌렸다. 소설가를 꿈꾸며 택배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잇는 청년 종수(유아인)가 어린 시절 친구인 해미(전종서)에게서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렸다. ‘위대한 개츠비’처럼 특별한 직업 없이도 부유한 벤과, 그에게서 모멸감과 부러움을 느끼는 종수를 대비시키며, 이 감독은 무력감의 또 다른 이름은 ‘분노’라고 말한다.

“취재 과정에서 많은 젊은이를 만났어요. 비정규직이란 말 자체도 호사스럽게 느껴질 만큼, 직업 아닌 직업을 가진 이들도 많았습니다. 젊은이들은 공정하지 않은 세상에 분노하지만, 그 분노의 원인을 알 수 없어 무력감을 느끼고 있죠.”

그렇다면 젊은 세대에 분노를 안긴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이 영화가 취한 ‘미스터리’ 구조 자체가 곧 이에 대한 ‘질문’이다. 그래서 이 감독은 종수가 작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고 했다. “작가는 눈앞에 보이는 현실과 세계에 질문하는 사람입니다. 질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 작가의 운명이자 비극이죠. 종수가 어떤 소설을 쓸지, 이 영화를 관객들이 어떻게 소비할지, 영화라는 매체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 모든 것이 미스터리라고 봅니다.”

영화엔 용산참사 같은 사회문제를 담은 그림을 전시한 갤러리 식당에서 벤이 가족과 식사를 하고 종수가 그 모습을 훔쳐보는 장면이 등장한다. 열린 해석을 강조하던 이 감독은 “의도적인 설정이었다”며 “현실을 고발하는 그림조차 문화적으로 소비되는 것이 바로 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말했다. 벤은 곧 이 세계를 표상한다. “이 영화는 벤이 어떤 사람인가라는 미스터리를 따라 왔지만, 결국엔 종수는 누구이며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가로 귀결되는 이야기입니다. 종수는 괴물일 수도, 평범한 우리 자신일 수도 있죠. 영화적 이미지와 감각으로 관객들이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해미가 노을 속에서 삶의 의미를 갈구하는 춤을 추는 장면과 종수가 이른 새벽 안개 속을 달리는 장면 등은 미학적으로 다가온다. 하늘을 날아가는 철새까지도 연기를 하는 듯 느껴질 정도로 자연을 그대로 품어낸 영상미가 특별한 감흥을 선사한다. 유아인과 스티븐 연, 신예 전종서는 인물 그 자체인 듯 보인다. “모든 게 운입니다. 영화는 운으로 찍는 거예요. 자신이 무언가 해보겠다고 의도하는 순간 영화가 이상해집니다. 그게 영화의 속성이에요. 인물의 감정도, 배우의 연기도, 다 마찬가지죠. 이번엔 정말 편안하게 찍었습니다.”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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