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5월 이맘때는 올해보다 더웠다. 나는 그 때의 날씨를 온도계 위의 숫자가 아닌 길 위에서 느낀 감각으로 기억한다. 그 길은 서울 강남의 한복판, 강남역 10번 출구에서 신논현역으로 향하는 직선의 거리다. 그 출구 앞에 친구들과 함께 검은 옷을 챙겨 입고 몇 번을 갔다. 지하에서 올라와 출구로 나오든 버스에서 내려 출구로 향하든, 그 근처에만 가도 짙은 국화 향이 코끝을 떠돌았다. 수천 장 메모지에 적힌 문구들을 하나씩 읽다가, 조용히 구석에 앉아있곤 했다. 때 이른 더위를 견디며 대한민국의 여성들은 함께 장례를 치렀다. 우리는 우연히 살아남았으나 언제든 네가 될 수 있었을 나로서 거기 있었다.

지난해 5월 17일에도 나는 거기 있었다. ‘우리의 두려움은 용기가 되어 돌아왔다’는 피켓과 국화를 들고 신논현역에서 사건의 현장이었던 노래방을 지나, 강남역까지 거꾸로 행진했다. 조용했지만 단단하게 뭉쳐진 여성의 힘을 느꼈다. 일 년 동안 같이 싸우며 행진해 온 한국 여성들의 용기였다. 여성이 차별 없이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노력하는, 분노와 슬픔에 무력해지지 않고 싸우는 여성들로 인해 세상이 바뀌고 있고, 바뀔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하지만 다시 일 년이 지난 지금, 2018년 5월의 우리가 어디에 있는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지난 한 해 동안에도 용기 있는 여성들은 계속 싸워나갔다. 성폭력이 만연한 사회를 향한 용기 있는 ‘미투’ 고발이 이어졌고, 일상 속에서 페미니즘을 말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여성들은 분명히 바뀌었다. 하지만 사회는 그만큼 바뀌었는가?

믿기지 않지만 2018년 대한민국에서는 페미니즘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유로, 여성의 현실을 다룬 소설을 읽었다는 이유로 공격을 받고 심지어는 일자리를 위협받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여성에 대한 강력범죄는 2016년에 비해 2017년에 오히려 10% 이상 증가했다. 2년 전, 경찰과 대다수 언론은 강남역 여성 살인사건의 가해자가 피해자에 앞서 화장실을 사용한 6인의 남성은 그냥 보내주었을 뿐 아니라 “여성에게 자꾸 무시당해” 범죄를 저지르게 되었다고 밝혔음에도 이 범죄의 원인이 여성 혐오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2018년 5월 경찰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홍대 누드모델 사진 유출 사건을 수사하고 포토 라인에 유출 가해자를 세웠다. 2차 가해 수사까지 신속하게 이루어졌음은 물론이다. 계속되고 있는 가정 폭력, 데이트 폭력 고발과 여성들의 기나긴 ‘몰래카메라’와의 싸움에 경찰이 제대로 된 대응을 했었다면, 이번의 빠른 수사와 처벌이 이토록 분노를 유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거기에 언론은 마치 2년 전 일은 기억조차 못 한다는 듯이 이 사건에 ‘남성 혐오’ 딱지를 붙였다. 성범죄 피해자들의 고발에 자극적인 제목과 표현으로 조회수를 높이고 있는 바로 그 언론이다. 페미니즘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져갈수록 이 사회가 합심해 거꾸로 가려고 노력하는 것 같지 않은가. 이게 바로 이미 바뀐 여성들을 향한 바뀌지 않은 이 사회의 ‘백래시’, 반격이다.

올해 5월 17일에는 비가 내렸다. 올해의 강남역에도 어김없이 여성들이 우비를 입고 모였다. “미투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구호는 그저 해시태그 운동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의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 구호는 짧게는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사건 이전, 멀리는 여성에 대한 착취로 가정과 사회가 굴러가던 시절로 결코 돌아가지 않겠다는 여성들의 의지다. 아무리 반격이 몰아쳐와도, 반격에는 다시 반격으로. 내년 5월에는 이 반격의 한 해를 어떻게 돌아보게 될까. 아무것도 예상하지 않고 이번에는 빨간 옷을 입고 ‘동일범죄 동일처벌’을 외치는 시위에 나서려 한다. 이게 나의 5월, 촛불이다.

윤이나 프리랜서 마감 노동자

인기 기사

web_cdn 저작권자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치 최신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