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개장식에서 구본준 LG 부회장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고영권 기자

국민이 선출한 일국의 대통령이란 자리는 시쳇말로 어마무시합니다. 행정의 수반이자 외교적으로는 국가를 대표하는 얼굴이고 대부분 군 통수권까지 갖고 있습니다.

막강한 권한만큼 국민적 관심도 집중됩니다. 사소한 말 한마디와 행동은 물론 옷차림과 먹는 음식, 심지어 순식간에 스쳐 가는 표정에도 의미가 담깁니다. 설사 그런 의도가 전혀 없더라도 누군가는 거기서 ‘맥락’을 뽑아내기 위해 열심이죠.

문재인 대통령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청와대의 수많은 수석과 비서관 등이 국정철학을 극대화하고 효과적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골몰합니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중요한 회담들이 눈앞인 데다 댓글 조작을 일으킨 드루킹 특검법과 추가경정예산안을 두고 여야가 격돌하는 요즘 같을 때는 더욱 그럴 겁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조그만 논란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대통령의 동선 또한 더욱 치밀해질 텐데 채 한 달도 안 돼 문 대통령이 두 번이나 발길을 한 곳이 있습니다. LG가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조성한 융복합 연구개발(R&D) 단지 LG사이언스파크입니다.

첫 방문은 지난달 20일입니다. 2014년 첫 삽을 뜬 LG사이언스파크는 3년 6개월 만에 완성됐고 이날 개장식이 열렸습니다. 구본준 LG 부회장과 허창수 GS 회장 등이 문 대통령을 맞이했습니다. 문 대통령은 LG디스플레이가 개발한 두루마리형 디스플레이, LG전자의 인공지능 로봇과 미래형 계기판이 적용된 자동차 모형 등을 직접 체험했습니다. LG로서는 엄청난 홍보 효과를 얻었습니다.

대기업과는 썩 친하지 않은(?) 문 대통령도 일찌감치 지주회사 체재를 완성한 LG는 좀 달랐던 것 같습니다. 문 대통령은 축사 중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상생협력하고 창업이 활발히 이뤄질 수 있도록 동반성장의 모범이 돼달라”고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LG가 4조원을 투자해 서울 강서구 마곡동에 축구장 24개 크기로 조성한 LG사이언스파크 전경. 지난달 가동에 들어간 이곳은 LG전자ㆍ화학ㆍ디스플레이ㆍ유플러스ㆍCNS 등의 계열사가 입주한 국내 최대 규모 연구개발단지다. LG 제공

LG사이언스파크 두 번째 방문은 지난 17일입니다. 날짜로 따지면 27일 만인데, 그새 상황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검찰이 지난 9일 100억원대 양도소득세 탈루 혐의로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의 LG 본사를 전격 압수수색 했습니다. 아직 수사가 진행 중이지만 ‘LG=착한 기업’이란 등식에 흠이 생겼습니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달 27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정상회담을 가져 남북관계도 급진전했습니다. 남북문제의 분수령에 서 있는 문 대통령이 한 달도 채 안 돼 같은 장소를, 게다가 기업의 R&D 단지를 방문한 것은 이례적입니다. 게다가 이번 주 문 대통령의 외부 공식 일정은 달랑 이거 하나였습니다. 18일 광주에서 열린 제35주년 5ㆍ18 민주화운동기념식에도 이낙연 국무총리를 보내고 불참했습니다. 22일(현지시간) 미국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 다음 달 12일 싱가포르에서 예정된 북미정상회담 준비에 전념하기 위해서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런데도 굳이 LG사이언스파크에 간 이유는 ‘2018년 대한민국 혁신성장 보고대회’에 답이 있을 것 같습니다. 이날은 지난해 연말 확정한 성장동력의 성과를 점검하고 세부 추진계획을 공유하는 자리였습니다. 관계부처들이 논의를 거쳐 경기 성남시 판교테크노밸리와 LG사이언스파크 등 복수의 후보지를 추천했다고 알려졌습니다. 장소를 확정한 것은 청와대일 겁니다. 청와대 측은 출입기자들의 질문에 “실내에서 드론을 작동한 만한 장소로 적합했을 뿐, 다른 의미는 없다”고 설명했다고 합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동 LG사이언스파크에서 열린 혁신성장 보고대회에서 SK텔레콤의 5G 스마트 미디어월을 체험하고 있다. 고영권 기자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양대 축은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입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소득주도성장은 불과 1년 만에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혁신성장은 더디기만 합니다. 국민이 체감하는 수준도 그렇고 혁신성장이 성공적이라고 평가하는 경제 전문가도 보이지 않습니다. 문 대통령은 이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속도이고 국민이 성과를 체감해야 혁신성장 붐이 인다”고 강조했습니다.

재계에서는 일말의 기대감이 감지됩니다.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앞뒀지만 “먹고 사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는 대통령의 메시지로 해석되니까요. 분배로 기울었던 경제의 무게중심이 성장 쪽으로 조금은 이동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면 뇌피셜(뇌+오피셜, 자기 머릿속 생각이란 의미의 신조어)일까요.

김창훈 기자 chkim@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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