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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새로운 핵 불확실성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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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석학칼럼] 새로운 핵 불확실성의 시대

입력
2018.05.20 18:03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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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JCPOA’(포괄적 공동행동계획) 탈퇴를 결정, 주요 국제기구와의 합의를 파괴하려는 결심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었다. 이 결정은 2015년 체결된 이란 핵협상에 큰 타격을 주고 전 세계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다. 수년에 걸친 어려운 협상의 결과물인 JCPOA는 7개국과 유럽연합(EU)이 합의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만장일치로 승인한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는 최고 수준의 경제제재를 이란과 이란 핵무기 추구에 도움이 되는 모든 국가에 일방적으로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JCPOA의 약속대로 행동한 국가의 기업과 은행이 이란과의 합법적 사업활동 때문에 오히려 심각한 시련을 겪게 됐다. 약속을 어는 나라들이 약속을 지키는 나라들에게 벌을 주기로 결정한 셈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JCPOA는 여전히 지켜질 수 있다. 협약의 다른 모든 당사자들은 이미 그 합의에 대한 그들의 의지를 재확인했다. 특히 EU는 JCPOA가 존속할 수 있도록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대서양을 가로지르는 관계(미국과 EU의 관계)에 최우선순위를 둘 경우 무분별하고 부당한 공격으로부터 핵무기 해결을 위한 다자간 공동정책과 모든 성과물을 방어해야 한다. 이러한 공격이 ‘미국 우선’이 아닌, ‘트럼프 우선’을 목표로 할 때 더욱 그럴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JCPOA 탈퇴는 국제관계가 특별히 민감한 순간에 이루어졌다. 우선, 핵확산 문제가 한반도 의제 최상위에 올라있다. 최근 들어 몇 가지 긍정적 조치가 취해졌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일관성 없는 정책 접근 방식으로 이 기회를 허비할지도 모른다. 문재인 대통령은 최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 6ㆍ25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한 공식 평화협정을 논의했다. 문과 김의 만남은 6월12일 트럼프와 김정은과의 특별 정상회담의 전주곡이다.

북한 지도부와 미국 대통령과의 사상 첫 만남은 불과 몇 달 사이의 공간에서 이뤄진 것으로, 중요한 진전이다.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2018년은 김정은과 트럼프가 수 차례 위협을 교환하고, 트럼프가 그의 ‘핵 버튼’ 크기를 자랑하면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후 미국은 북한 핵 위협에 맞부딪히기보다는 외교적 접근법에 의지하면서 최근의 진전을 가능하게 했다. 이후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부 장관이 김정은을 만나기 위해 북한으로 두 번이나 날아간 반면 트럼프는 이란에 관해서는 적대적 대응 방식으로 선회했다. 김정은과의 협상은 특히 북한이 이란과 달리 이미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극도로 도전적인 일이다. 트럼프가 JCPOA를 위반해 미국의 외교적 신뢰가 훼손된 상태를 감안하면, 협상은 더욱 어려워 질 것이다.

트럼프는 국가이익, 주권, 군대역량 및 경제적 우위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이란과의 관계설정만큼은 현실 정치와 거의 관계가 없어 보인다. 오히려 그의 전임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관련한 모든 정책을 체계적으로 거부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 JCPOA 탈퇴는 그가 중동에서 가장 좋아하는 두 동맹국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을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된 뒤 이들 나라부터 방문했다. 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 모하메드 빈 살만이 3월 백악관을 방문했을 때 트럼프는 예멘의 후티 반군에 대한 이란의 지원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예멘 전쟁과 관련한 민감한 질문을 피해버렸다.

트럼프 행정부는 예멘 전쟁을 끝내고 안정을 회복하기 위해 외교적 노력을 기울이기는커녕, 말할 수 없는 고통을 유발하고 이 지역을 황폐시키는 사우디-이란 간 대리전쟁의 불길에 계속 부채질을 했다. 미국은 또 텔아비브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스라엘 대사관을 옮겼다. 지난해 12월 트럼프의 대사관 이전 발표 이후부터 이슬람 세계는 큰 불안감을 갖고 있다.

물론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의 미국과의 동맹관계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전 행정부와 달리 온건한 접근 방식을 포기하고 중동의 판도라 상자를 여는 위험을 떠안았다. 벤야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JCPOA의 신뢰를 망가뜨리려는 기괴한 시도에서 입증된 것처럼 양국에서 강경파들이 점점 세력을 얻고 있다. 이란도 마찬가지다. 트럼프의 JCPOA 탈퇴 문제가 강경파의 손아귀로 직접 들어가버렸다.

이 같은 환경은 열강들의 이해관계가 얽힌 시리아 상황에 좋지 않은 징조다. 이스라엘과 이란 군대는 이미 시리아 남부에서 충돌했으며, 네타냐후 정부는 러시아가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에게 S-300 대공미사일을 공급할 것이라는 보도에 대응해 추가 조치를 취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트럼프가 JCPOA를 폐지하면 중동지역의 대결 상황이 더 절망적이고 멈출 수 없게 될 것이며 한반도 문제도 한층 복잡해질 것이다. 트럼프의 결정은 이미 뒷걸음질 치고 있는 세계적 핵 비확산 노력에 광범위하게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향후 몇 주일이나 몇 달이 가장 위험한 시간이다.

하비에르 솔라나 전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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