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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 “칸에서 돌아가면 다시 연기 선생님과 공부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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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오 “칸에서 돌아가면 다시 연기 선생님과 공부해야죠”

입력
2018.05.18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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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영화 ‘레토’의 주연배우 유태오. 엣나인필름 제공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된 러시아 영화 ‘레토’의 주연배우 유태오. 엣나인필름 제공

올해 71회를 맞은 칸국제영화제에서 깜짝 스타가 탄생했다. 경쟁부문에 진출한 러시아 영화 ‘레토’(감독 키릴 세레브렌니코프)의 주역으로 당당히 레드카펫을 밟은 배우 유태오(37)다. 영화가 공개된 이후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인터뷰 요청이 쏟아져 체류 일정을 폐막까지 늦췄다. 최우수남자배우상 후보로까지 급부상했다.

‘레토’는 옛 소련 시절 저항의 상징이었던 한국계 록스타 빅토르 최의 데뷔 초창기 이야기를 그려 한국에서도 특별한 관심을 끌고 있다. 칸에 오기 전까지는 무명에 가까웠던 유태오도 새롭게 발견됐다. 지난 13일 칸에서 마주한 유태오는 “너무 꿈 같은 상황이라 신기하기만 하다”며 “진정성과 성실함은 어느 문화권에나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익히 알려진 대로 유태오는 ‘레토’에서 한국계 배우를 찾는다는 소식을 듣고 먼저 프로필 사진과 기타 연주 영상을 보내 빅토르 최 역할을 따냈다. 칸을 찾은 러시아 기자와 영화 관계자들은 유태오에게 먼저 다가와 “고맙다”고 인사했다. “러시아에서 전설 같은 존재를 연기한다는 것이 무섭기도 했는데 이제야 조금 마음이 놓여요.”

유태오는 촬영을 하러 러시아로 건너간 뒤에야 러시아어로 연기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시나리오를 낱장으로 뜯어 호텔방 곳곳에 붙여놓고 3주간 집중 연습했다. “외국인이 한국에 와서 판소리로 인정받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 상황이잖아요. 혼란스럽기도 했어요. 하지만 배우는 악기라고 생각해요. 지휘자가 원하는 소리를 잘 내주는 게 제 역할이죠.”

파독 광부와 간호사 사이에서 태어나 스무 살까지 독일에서 자란 유태오는 빅토르 최의 정서를 누구보다 깊이 받아들였다. 유럽 백인 문화권에서 성장하고 활동한 한국인 예술가라는 공통점을 공유했다. 유태오는 “성장 환경에서 비롯된 정체성 혼란과 나만의 멜랑콜리한 감성을 빅토르 최에게서도 느꼈다”고 말했다. 옛 소련의 억눌린 사회 분위기는 보편성 측면에서 접근해 이해했다. “압력밥솥도 계속 가열하기만 한다면 견디지 못할 거예요. 창작의 자유와 열정으로 세상과 소통하고 싶은 열망은 아무리 억압해도 어떻게든 새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믿어요.”

영화 ‘레토’의 주연배우 유태오. 씨제스엔터테언민트 제공
영화 ‘레토’의 주연배우 유태오. 씨제스엔터테언민트 제공

유태오는 미국 뉴욕과 영국 런던에서 연기를 공부했다. 독일과 미국, 영국, 한국을 넘나드는 경험은 고스란히 연기 자양분이 됐다. 할리우드 영화 ‘이퀄스’(2015)와 중국 영화 ‘몽실발리’(2016), 베트남 영화 ‘비트코인을 잡아라’(2016), 태국 영화 ‘더 모멘트’(2017) 등 출연한 작품들도 국경을 가로지른다. “동남아에서 한류가 인기잖아요. 한국인이면서 연기 경험이 있고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이 현실적인 도움이 됐어요. 낭만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다양한 경험으로 감성이 풍부해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싱겁다’는 단어가 영어와 독일어에는 없지만 저는 그 의미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으니까, 저에겐 감성이 하나 더 생긴 셈이죠. 회색 지대 혹은 경계선에 선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감성이라고 생각해요.”

유태오는 자신의 연기 무대로 독일이나 미국이 아닌 한국을 택했다. 어쩌면 더 험난할지도 모르는 그 길에 들어선 건 “한국적 정체성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었다. “저는 연기로 먹고 사는 사람이에요. 연기가 가장 중요해요. 그리고 연기엔 배우의 정체성이 담길 수밖에 없어요. 저 자신을 찾고 싶다는 것이 배우로서 욕심이었어요.”

2009년 영화 ‘여배우들’로 데뷔해 한국 활동 10년이 가까워졌다. 이름을 알리지 못해 힘든 적도 있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다행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제가 20대에 유명해졌다면 아마 오만한 배우가 됐을 거예요. 정말 끔찍해요. 여기에 오기까지 저에겐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결혼생활 11년째인데 아내(사진작가 겸 영화감독 니키 리)가 늘 옆에서 ‘맵게’ 이야기해줘요. 덕분에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칸에서 받은 스포트라이트가 그에게 큰 격려가 될 듯하다. 하지만 그는 다시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음주 스피치 선생님과 연기 수업 일정부터 잡아야죠. 오디션도 열심히 보러 다녀야 하고요. 운동선수가 올림픽에서 금메달 한번 땄다고 다음 올림픽에 감독 없이 출전하는 건 아니잖아요. 칸영화제에서 얻은 관심이 금방 사라질 거란 사실도 잘 알아요. 김칫국물 많이 마셔봤거든요(웃음). 일상에 성실한 것이 저에겐 가장 중요해요.”

칸=김표향 기자 suzak@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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